D의 복합 세이초 월드
마쓰모토 세이초 지음, 김경남 옮김 / 모비딕 / 2012년 2월
평점 :
품절


무명작가 이세 다다타카는 구사마쿠라라는 처음 듣는 잡지의 편집차장 하마타카로부터 전설을 찾아가는 벽지 여행이라는 타이틀로 연재물 집필을 의뢰받곤 오지를 돌아다니며 그곳에 전해지는 전설이나 설화를 기행문 형식으로 연재하기 시작합니다. 첫 편이 호응을 얻은 덕분에 이세는 박학다식한 수다쟁이 편집자 하마타카와 호흡을 맞추며 오지 여행을 계속합니다. 하지만 여행이 거듭될수록 이세와 하마타카 주위에서 기이한 일이 벌어집니다. 매장된 사체를 수색하는 지역 경찰과 마주치기도 하고, 어딘가 4차원 같은 열혈 독자의 방문을 받기도 합니다. 그러던 어느 날 면식이 있던 사람들이 연이어 살해당하는 사건이 벌어집니다. 두 사람은 직접 조사에 나서고 점차 사건의 퍼즐 조각들을 하나씩 손에 넣습니다. 그리고 그동안 주위에서 벌어진 사건이나 자신이 만났던 인물들이 결코 우연이 아니었음을 깨닫습니다.

 

마쓰모토 세이초의 작품은 읽을 때마다 느끼는 바지만, 뭐랄까, 바른 자세를 하고 읽어야 할 것 같은 엄격함이 있습니다. 인간에 대한 깊은 성찰이나 혀를 내두르게 만드는 치밀한 자료조사 때문이기도 하지만, 등장인물들이 지닌 한없이 깊은 사연들 덕분에 사건의 무게 역시 부담스러울 정도로 무겁기 때문입니다. ‘모래그릇때도 그랬고, ‘짐승의 길에서도 그랬고, 이번에 읽은 ‘D의 복합역시 예외 없이 한나절을 바른 자세로 열심히 읽었습니다.

 

본문 앞에 두 페이지에 걸쳐 일본의 중서부 지도가 실려 있습니다. 보통 미스터리에 실린 지도나 그림, 평면도 등은 봐도 별 도움이 안 되는 경우가 많은데, ‘D의 복합은 이 지도가 없으면 여러 가지로 불편한 점이 참 많습니다. 더구나 일본의 전설과 설화를 설명하는 과정에서 꽤 많은 고대 인명과 지명이 등장하는 바람에, 초반 100페이지 정도에 이르기까지 머리에 쥐가 날 정도로 애를 먹었습니다.

하지만, 거꾸로 이만한 자료조사를 위해 작가가 얼마나 많은 발품을 팔았으며, 얼마나 많은 자료조사를 했을까, 생각하면 새삼 마쓰모토 세이초의 집요함에 혀를 내두르게 됩니다. 이 작품이 연재된 시기가 1965~1968년이라고 하니, 말 그대로 모든 것을 수동식으로 진행했어야 할 텐데, 인터넷 검색에 익숙해진 요즘의 작가나 독자에겐 엄두도 못낼 일입니다.

 

‘D의 복합은 세련되고 스피디한 현대의 장르물에 익숙한 독자들에게는 좋게 얘기하면 고전적인, 나쁘게 얘기하면 나이브하고 설명적인 인상을 줄 수 있는 작품입니다. 아무래도 작가와 편집자라는 비전문가들이 사건을 조사하겠다고 뛰어다니다보니 전문성도 떨어지고, 막판에 여러 페이지가 할애된 사건의 전말을 읽다보면 결과에 짜맞추기 위한 무리한 설정들이 많았다는 느낌을 피하기 어려웠습니다. 특히 1960년대라는 시대적 배경을 감안하더라도 초능력자가 아니면 실천하기 어려운 난해한 범행 설정은 사실감을 떨어뜨렸는데, 훌륭하고 매력적인 재료들을 갖췄지만 적정량보다 지나치게 많이 투입된 탓에 오히려 역효과가 났다고 할까요?

 

마쓰모토 세이초의 작품은 보통의 책읽기보다 두 배 이상의 에너지를 소모시킵니다. 읽는 내내 유지해야 하는 바른 자세 때문이기도 하고, 읽고 난 후의 음울하고 묵직한 여운 때문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그동안 계속 피하다가 읽게 된 것이 ‘D의 복합인데, 아무래도 다음 작품은 넉넉히 시간을 두고 올 겨울쯤에나 다시 한 번 고민해봐야 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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