혈안 - 일본 최고의 미스터리 작가 9인의 단편집
미야베 미유키 외 지음, 한성례 옮김 / 프라하 / 2012년 12월
평점 :
절판


미야베 미유키, 요코야마 히데오, 아야츠지 유키토, 시마다 소지 등 쟁쟁한 9명의 작가가 ‘50’이라는 키워드로 엮은 일종의 앤솔로지입니다. 작가 개개인에 대한 호불호를 떠나 이만한 작가들이 한 자리에 모였다는 것 자체가 놀라운데, 아마도 구매욕을 자극하기에 이만큼 완벽한 기획은 찾아보기 힘들 것 같다는 생각입니다.

속사정을 알 수는 없지만, 아마 9명의 작가 모두 적잖은 부담감을 느꼈을 것 같습니다. 하나의 키워드 아래 쓰인 작품들이다 보니 독자들에게 비교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고, 자신의 색깔을 제대로 드러내는 것은 물론 역시~”라는 감탄사까지 끌어내야 하니 말하자면 작가 입장에선 잘 해야 본전이란 생각이 들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당연히 별 다섯 개는 기본이겠다는 생각도 했었지만 어지간한 완성도가 아니면 좀처럼 단편집에 만족하지 못하는 취향이라 반신반의 하는 마음으로 첫 장을 열게 됐습니다.

 

우선, 9명의 작가가 ‘50’이라는 키워드를 어떻게 활용했는지 간단히 정리해보면...

- 미야베 미유키 : 요괴 혈안에 매달린 50개의 눈.

- 아야츠지 유키토 : 50번의 칼질로 50토막이 난 피살체.

- 시마다 소지 : IQ 50의 역도선수가 감당해야 하는 50파운드의 무게.

- 미치오 슈스케 : 필름 감도를 나타내는 ISO 50.

- 모리무라 세이치 : 50엔짜리 우표.

- 아리스가와 아리스 : 결혼 50주년에 일어난 살인사건.

- 오사와 아리마사 : 호텔 50층에 머무는 전설의 인물.

- 다나카 요시키 : 가문의 50대 손에게 내려진 저주.

- 요코야마 히데오 : 나이 50.

 

나름대로 자신의 개성을 드러낸 작품들 속에 ‘50’이라는 키워드를 녹여냈습니다. 그중 미야베 미유키는 미야베 월드 2막 시리즈의 연장선상에서 에도시대 귀신이야기를 통해, , 요코야마 히데오는 종신검시관의 주인공 구라이시를 암 환자로 설정한 에피소드를 통해 일종의 스핀오프 단편을 내놓았습니다. 오사와 아리마사 역시 신주쿠 상어를 연상시키는 분위기를 자아냈고, 아리스가와 아리스는 동명의 주인공 아리스가와 아리스를 명탐정으로 등장시킵니다.

 

9명의 국대급작가들의 단편들을 한 작품집에서 만난 건 분명 반갑고 즐거운 일이었지만. 작품집 자체의 만족도만 놓고 보면 높은 점수를 주긴 어려웠습니다. 뭐랄까... 작가들이 느꼈으리라 예상했던 적잖은 부담감은 전혀 찾아볼 수 없었고, 오히려 이런 기획에 겨우 이런 수준의 작품을 냈다니?”라는 것이 솔직한 제 느낌입니다. 전부 그런 건 아니지만 대다수 작품에서 기대 이상의 실망을 느낀 게 사실이고, 어쩌면 유명세만큼 성실할 것이란 건 진짜 환상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 없다라는 속담이 생각난 건 아마 저만의 일은 아닐 것 같습니다. 기획은 훌륭했지만 왠지 낚였다라는 느낌을 피할 수 없었는데, 적어도 자신만의 영역과 스타일을 확보한 대작가들이라면 오히려 단편 하나하나에 대해 훨씬 더 큰 부담감과 책임감을 느껴야 하는 게 아닌지, , 기획자나 출판사 역시 같은 태도를 가져야 하는 게 아닌지 묻고 싶어진 작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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