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곡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8
누쿠이 도쿠로 지음, 이기웅 옮김 / 비채 / 2008년 9월
평점 :
품절


작가나 편집자는 물론 독자에게도 작품의 얼굴이나 마찬가지인 제목은 본 내용 못잖게 중요하고 고민되는 포인트입니다. 그런 점에서 통곡이란 제목은 뭔가 울림이 있는 것 같긴 하지만 확실하게 눈길을 잡아끄는 힘은 좀 부족해 보이는 게 사실입니다. 누쿠이 도쿠로의 팬이라면 어떤 제목이든 크게 구애받지 않겠지만, 그를 처음 만나는 독자라면 통곡은 살짝 주저하게 만드는 구석이 있는 제목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 작품을 다 읽고 난 후에 다시 한 번 표지를 들여다보고 있으면 그 어떤 길고 화려한 제목보다도 이 작품의 모든 것을 함축하고 있는, 너무나 잘 지어진 제목이라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연이은 여아 유괴사건을 수사하는 수사 1과장 사에키, 그리고 딸을 잃은 뒤로 가슴에 구멍이 뚫린 채 살아가는 마쓰모토 등 두 사람의 이야기가 한 챕터씩 번갈아 진행됩니다. 사에키의 경우 월요일마다 벌어지는 4~5세 여아들의 유괴사건이 미궁에 빠진 탓에 스트레스를 받는 모습과 함께 화려한 배경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그것 때문에 불행한 삶을 사는 개인사가 동시에 소개됩니다. 마스모토의 경우 딸을 잃은 상처 때문에 신흥종교에 빠진 뒤 주술의 힘에 의존해보지만 결국 더 이상 추락할 곳 없는 막장 그 자체의 삶을 살고 있어서 마음을 무겁게 만듭니다.

 


어찌 보면 전혀 다른 두 이야기를 엇갈려 편집해놓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사에키와 마쓰모토의 스토리는 내내 접점을 피하며 각자의 에너지를 발판 삼아 폭주합니다. 그리고 두 이야기가 만났을 때 독자는 생각지도 못한 결말에 잠시 멍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두 사람의 무거운 스토리와 함께 사람의 목숨까지 흥정하는 신흥종교의 폐단, 소위 캐리어 대 논캐리어로 잘 알려진 일본 경찰의 구조적 모순과 갈등, 그리고 매스컴의 병적인 취재 경쟁에 이르기까지 일본 사회가 안고 있는 여러 가지 윤리적 문제들이 적나라하게 묘사됩니다. 이른바 돌직구 같은 사회파 미스터리라고 할까요?

 

후회와 진실의 빛’, ‘우행록에서 맛봤던 누쿠이 도쿠로만의 묵직함은 여전했습니다. 저처럼 이런 서사를 좋아하는 독자라면 페이지를 정신없이 넘기게 되겠지만, 개인적으론 호불호가 갈릴 여지도 있는 작품이라는 생각입니다. 무엇보다 읽는 내내 마음 어딘가에 바윗돌 하나가 들어앉은 듯한 불편한 기분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것이 이 작품의 가장 큰 매력이니 충분히 도전해볼 가치가 있을 것입니다.

 

통곡의 홍보 포인트는 주로 막판 반전에 맞춰져 있는데, 솔직히 여기에만 신경 쓰다보면 정작 이 작품의 중요한 미덕을 놓칠 수도 있습니다. 그보다는 같은 듯 다른 듯 서로 미묘한 입장에 서있는 두 남자의 이야기에 몰입해야 합니다. 그래야만 어떻게든 발버둥 쳐보지만 결국 자신들을 가로막은 막다른 벽 앞에서 통곡 말곤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그들의 운명에 공감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또 그래야만 통곡이라는 제목이 주는, 결코 가볍게 넘길 수 없는 누쿠이 도쿠로의 메시지를 만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국내 출간작 중 난반사증후군 시리즈는 아직 읽지 못했습니다. 아무래도 전작들처럼 불편하고 먹먹해지는 느낌, 그리고 어김없는 후유증이 기다리고 있겠지만, 누쿠이 도쿠로의 돌직구는 아파도 일부러 찾아가서 맞고 싶어지는 중독성이 있기에 머잖아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찾아 읽게 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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