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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흑 동화
오츠이치 지음, 김수현 옮김 / 황매(푸른바람) / 2008년 5월
평점 :
품절
‘암흑 동화’는 크게 세 갈래의 이야기로 구성돼있습니다.
① 메인 스토리
사고로 인해 왼쪽 눈과 기억을 잃어버린 여고생 나미는 이식수술을 받은 후 원래 눈의 주인이던 가즈야가 목격했던 일들을 볼 수 있게 되는데, 가즈야가 마지막으로 본 건 한 여고생의 유괴 및 참혹한 살인사건이었습니다. 그로 인해 나미는 연쇄살인사건 속으로 휘말리고 맙니다.
② 막간극 또는 간주
‘다른 인간의 눈을 뽑아 눈 먼 소녀에게 선물해주는 까마귀’를 그린 이야기가 막간극 또는 간주처럼 중간중간에 끼어듭니다. 잔혹한 동화, 그 자체입니다.
③ 연쇄살인범의 사연
잔혹함의 끝을 보여주는 연쇄살인범의 이야기가 눈길을 끄는데, 이 자만큼 세기말적 또는 파괴적 동기를 지닌 연쇄살인범을 본 적이 없습니다. (스포일러는 아니지만 워낙 놀라운 설정이라 서평에서는 언급하지 않겠습니다)
요약된 내용을 보면 끔찍하기 짝이 없는 호러물 같지만 제목에서 눈치 챌 수 있듯 이 작품이 남기는 여운은 어딘가 동화 같은 뉘앙스에 가깝습니다. 잔인한 이야기지만 무서움보다는 안쓰러움이나 애틋함이 더 강하게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가즈야의 눈을 통해 연쇄살인범을 쫓는 나미도, 까마귀에게 타인의 눈을 선물 받은 소녀도, 심지어 연쇄살인범마저 동화 속 인물처럼 보이게 만드는 오츠이치의 특별한 능력 덕분입니다.
오츠이치의 작품에 관심을 갖거나 처음 접하게 되는 계기는 대부분 ‘잔혹함’이라는 코드가 지닌 거부하기 힘든 유혹 때문일 것입니다. 저 역시 마찬가지였고 그런 이유로 읽게 된 ‘GOTH’와 ‘ZOO’를 통해 그의 팬이 되었습니다. ‘암흑 동화’와 마찬가지로 두 작품 모두 주로 청소년들이 주인공으로 설정돼있는데, 그런 탓인지 그의 작품에선 묘하게 뒤섞인 잔혹함과 순수함을 동시에 맛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 기묘한 조합 때문에 오츠이치가 극과 극의 평가를 받는 것 역시 사실입니다. 악평의 대부분은 “서사보다는 잔혹함이라는 말초적 호기심에 의존하는 작가”라는 내용인데, ‘암흑 동화’ 역시 이와 비슷한 이유로 야박한 평점을 많이 받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어쩌면 성인조차 패닉에 빠질만한 극한의 상황 속에 내몰린 청소년 주인공들을 지켜보며 안 그래도 역겨운 심사가 몇 배는 더 뒤틀렸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어쨌든 저는 그의 이야기가 재미있기 때문에 계속 관심을 가져왔고, ‘잔혹함’ 역시 캐릭터나 모티브와 잘 결합돼있어서 역겹거나 자극적이라기보다는 “존재 가능한 특이한 현상에 대한 오츠이치만의 개성 있는 묘사”라고 받아들였습니다.
아직 못 읽은 그의 작품 중 하나가 17세에 쓴 데뷔작 ‘여름과 불꽃과 나의 사체’입니다. 제목만으로도 충분히 끌리는 작품이지만, 자신이 창조한 주인공들과 비슷한 나이였던 오츠이치가 과연 무슨 이야기를, 얼마만큼의 잔혹함을 담아 풀어냈을지가 더 궁금하기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