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니시에이션 러브
이누이 구루미 지음, 서수지 옮김 / 북스피어 / 2009년 1월
평점 :
절판


표지에 LP판을 등장시킨 것처럼, 책 내용은 크게 Side ASide B로 나뉘어져 있습니다. 전개 양상은 좀 다르지만 고전영화 젊은이의 양지를 연상시키는 멜로 관계가 펼쳐집니다. 20대 초반에 만난 첫사랑과 애틋한 원거리 연애를 하던 도쿄의 한 남자가 어느 날 갑자기 자기 앞에 나타난 예쁘고, 돈 많고, 고학력인 완벽녀 때문에 갈등합니다. 그런데 때마침 첫사랑이 임신했다는 소식을 전해오자 남자는 낙태가 됐든 이별이 됐든 어떻게 해서라도 그녀를 배신하고 싶은 마음을 싹틔웁니다.

 

이 작품의 기본 틀은 연애소설입니다. 읽는 내내 뒷표지의 카피 연애소설과 미스터리의 완벽한 조화를 기대했는데, 미스터리는 실종된 채 결국 마지막 장을 덮을 땐 연애소설 그 자체로 끝난 줄 알았습니다. 뒷부분에 실린 해설을 보기 전까지는 말입니다. 말하자면, 찾을 범인도 없고, 특별한 미스터리도 없고, 그래서 별 생각 없이 다 읽었는데 해설을 보고서야 이 작품이 서술트릭 미스터리였다는 걸 알게 됐다는 얘깁니다. (출판사도 서술트릭이라고 대놓고 홍보하고 있으니 스포일러라고 여기진 말아주시기 바랍니다)

그제야 복기해보면, “그래, 그때 뭔가 좀 위화감이 느껴졌지.”라는 대목들이 분명 있습니다. 작가가 독자들의 뒤통수를 후려치기 위해 얼마나 꼼꼼히 준비했는지도 알게 됩니다. 하지만, 어지간한 서술트릭이 아니면 좀처럼 반하지 않는 취향이다 보니 해설을 봐야 파악할 수 있는 허술한 서술트릭의 정체에 감탄보다는 한숨이 먼저 나왔습니다.

 

미스터리를 탐독하기 시작한 초기에는 일부 서술트릭 작품에 매료된 적도 있었습니다. 작가가 작정하고 독자에게 도전장을 내미는 경우 정말 눈에 불을 켜고 숨겨진 트릭을 찾아내려고도 해봤습니다. 다만, 우타노 쇼고의 벚꽃지는 계절에 그대를 그리워하네와 고이즈미 기미코의 변호 측 증인처럼 많은 독자들이 최고의 서술트릭으로 손꼽는 작품에 아무런 감흥이 없던 적도 있었고, 반대로 대부분 시큰둥한 반응을 보인 작품 가운데 매력적으로 읽은 작품도 있었습니다. 말하자면 서술트릭 자체가 싫은 건 아닌데 작품에 따라 만족도의 편차가 컸던 셈입니다. ‘이니시에이션 러브는 처음부터 서술트릭이란 걸 모르고 읽은 탓도 있지만, 다 읽고도 서술트릭 자체를 인지 못한 것은 저의 오독 때문이라기보다는 작가의 전략과 전술이 그만큼 허술했기 때문이라는 생각입니다.

 

서술트릭이란 걸 공개하는 것 자체가 스포일러가 되는 경우가 많지만, 이 작품은 오히려 미리 공개해야 그나마 독자가 배신감(?)을 덜 느끼게 될 것 같습니다. 그래야 평범해 보이는 연애소설 속에서 트릭을 찾는 재미라도 만끽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출판사가 서술트릭임을 공개하고 홍보한 건 그런 이유 때문인지도 모를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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