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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살인 계획
야가미 지음, 천감재 옮김 / 반타 / 2025년 8월
평점 :
어려서부터 미스터리 소설에 탐닉한 것은 물론 흉악한 사건을 분석하기를 즐기던 다치바나는 미스터리 소설 편집자가 되어 승승장구하지만, 어느 날 갑자기 좌천되며 씁쓸한 시간들을 보내게 됩니다. 그러던 중 “당신을 살해하겠다”는 살인예고장이나 다름없는 익명의 미스터리 원고가 날아들자 다치바나는 묘하게 흥분하며 미스터리 편집자로서의 감각이 되살아나는 듯한 쾌감에 사로잡힙니다. 한편으론 살인예고자의 공격에 대비하면서도 다치바나는 그와의 대결에서 반드시 승리하겠다는 위험천만한 계획을 세웁니다. 하지만 상황은 뜻밖의 방향으로 흘러가고, 다치바나는 계획 자체를 전면 수정해야만 하는 위기에 처합니다.

‘대형 공포 채널을 운영하는 유튜브 크리에이터’의 작품이라는 카피를 보고 절대 평범한 미스터리는 아닐 거라고 짐작했지만, ‘나의 살인 계획’은 인물, 사건, 내용, 형식 등 모든 면에서 그 짐작을 한참 뛰어넘을 정도로 독특한 작품입니다. 또 ‘서스펜스, 심리전, 완전범죄라는 장르적 매력을 정교하게 구현한’ 것은 물론 ‘독자의 시선을 교란하는 치밀한 심리 스릴러’라는 출판사 소개글은 팩트에 가깝긴 하지만, 역으로 생각하면 그만큼 독자에게 두통을 안길 여지가 많다는 뜻이기도 한데, 실제로 300페이지에 불과한 분량임에도 어지간히 집중하지 않으면 먼저 읽은 페이지들을 여러 번 뒤적거리는 수고를 감수해야 합니다.
이야기의 몸통은 좌천된 편집자 다치바나가 자신을 살해하겠다고 예고한 일명 X와의 대결을 계획하다가 뜻밖의 사태에 직면하곤 아무에게도 들키지 않을 완전범죄를 실행에 옮기는 과정입니다. 언뜻 보면 평범한 줄거리에 이야기를 끌고 가는 인물도 몇 안 되는 심플한 구조지만, 작가는 챕터마다 또는 한 챕터 속에서도 수시로 ‘1인칭 화자’를 바꾸는 것은 물론 그 ‘1인칭 화자’가 누구인지조차 헷갈리게 만들며 독자의 호기심을 자극합니다. 다만 이런 의도적인 혼선은 후반부의 반전을 위한 필수불가결한 ‘터닦기’이긴 하지만, 독자에게 흥미를 품게 만들 수도, 짜증만 내게 할 수도 있는 양가적인 설정이란 생각입니다.
거기에다 메인 사건과는 전혀 연관 없어 보이는 인물의 이야기가 꽤 긴 분량을 차지하기도 하고, 간혹 느닷없는 도덕과 윤리와 올바름에 관한 강론이 튀어나오기도 해서 과연 이 대목들이 다치바나의 이야기와 어떻게 연결될지 궁금하게 만들곤 합니다.
신의 도움으로 완전범죄를 이룬 살인, 즉흥적인 충동에 의해 저지르는 우발적 살인, 손끝 하나 대지 않은 상태로 사회적 죽음을 유도하는 정신적 살인 등 숱한 종류의 살인이 등장하지만, 이 작품 속 ‘살인자’가 삶의 최고 희열이자 이상으로 여기는 방식은 ‘완벽하게 설계된 트릭을 통해 누구에게도 들키지 않을 완전범죄로서의 살인’입니다. 작가는 ‘살인자’가 어떻게 트릭을 설계하고 어떤 방식으로 그것을 실행에 옮기는지를 집요할 정도로 디테일하게 그립니다. 또한 위기를 타개하고 상황을 직시하기 위해 벌이는 추리의 과정 역시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는 듯 세세하게 묘사합니다. 그래선지 다 읽은 뒤에 어쩌면 이 작품의 미덕은 스토리나 캐릭터 자체보다 이 ‘완전범죄에 집착하는 일그러진 심리’에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전형적인 미스터리와는 전혀 결이 다른, 색다른 간식을 맛본 듯한 특별한 책읽기였지만, 독자에 따라 꽤 다양하고 극단적인 반응이 나올 여지가 많아 보이는 작품입니다. 어느 분의 서평대로 이 작품만으론 야가미라는 유튜브 크리에이터 출신 작가의 진면목을 평가하기 어려워 보이는데, 두 번째 작품인 ‘臨終トーナメント(임종 토너먼트)’가 출간된다면 제 취향의 작가인지 여부를 확실히 판단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