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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리 빛이 우리를 비추면
사라 피어스 지음, 이경아 옮김 / 밝은세상 / 2025년 7월
평점 :
동생 아이작의 약혼파티에 초대받은 영국 데번 경찰서의 강력계 형사 엘린은 남자친구 윌과 함께 알프스 고지대에 위치한 르 소메 호텔을 방문합니다. 그런데 다음날 아이작의 약혼녀이자 호텔 부지배인인 로라가 실종됩니다. 안 그래도 객실직원 아델이 종적을 감춘 직후라 모두들 불안해하는데 공교롭게도 폭설과 함께 눈사태 예보가 발표되고 대피령이 내려지면서 호텔엔 미처 피신 못한 일부 직원과 투숙객만 남게 됩니다. 경찰은 물론 헬기의 접근마저 통제된 와중에 수 년 전 실종됐던 인물의 사체가 발견되고 또 다른 실종자가 발생하자 엘린은 현지 경찰과 검찰의 허가를 받아 단독 수사에 나섭니다.

알프스의 풍광을 조망할 수 있는 넓은 통유리와 극단적인 미니멀리즘을 구현한 인테리어로 유명한 5성급 호텔이 폭설과 눈사태로 고립된 뒤 끔찍한 연쇄살인의 현장으로 돌변한다는 설정은 곧장 애거서 크리스티의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를 떠올리게 합니다. 출판사 소개글은 알프레드 히치콕의 ‘싸이코’와 스티븐 킹의 ‘샤이닝’까지 소환했고, 해외에서의 성과와 실적도 꽤 뛰어났음을 강조합니다. 외형만 보면 구미가 당기지 않을 수 없는데, 520여 페이지의 분량에 미스터리와 서스펜스에 심리 스릴러 서사까지 골고루 버무려놓았지만 결론부터 말하면 기대 대비 아쉬움이 크게 남은 작품입니다.
작가는 사건의 무대인 르 소메 호텔과 주요 인물들의 ‘과거’와 ‘비극’에 큰 공을 들였습니다. 지금은 화려한 5성급 호텔로 탈바꿈했지만 과거 결핵 환자를 위한 요양원이었던 곳에서 엽기적인 연쇄살인이 벌어진다는 점은 초반부터 독자의 호기심을 사로잡습니다. 첫 챕터부터 호텔로 개축되기 전, 폐허나 다름없던 요양원에서 기괴한 인물이 벌이는 살인 장면이 호러물 스타일로 그려지는데, 덕분에 독자는 ‘호텔의 과거’에 주목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 작품의 원제 ‘The Sanatorium’은 요양원이란 뜻입니다)
또한 사방이 고립된 상황에서 단독수사에 나선 영국 형사 엘린을 비롯하여 주요 인물들 모두 유년기 혹은 청년기에 겪은 사건으로 인해 지금도 참혹한 악몽에 시달리는 것으로 설정됐는데, 그로 인해 “엽기적인 연쇄살인범은 누구?”라는 의문 못잖게 그들의 과거사에 시선이 쏠릴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과유불급이란 말이 여러 번 떠오를 정도로 작가는 무대와 인물들의 과거에 지나치게 집착하는데, 다 읽고 돌이켜보면 그럴 수밖에 없었다고 이해되는 대목이 일부 있긴 하지만, 대부분은 오히려 리얼리티를 떨어뜨리거나 책읽기를 지루하게 만들어서 역효과만 일으켰다는 생각입니다. 특히 20여 년 전, 8살에 세상을 떠난 막내동생의 죽음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엘린의 트라우마는 작가가 가장 공을 들인 설정임에도 불구하고 동어반복에다 공감하기도, 이입하기도 어려워서 내내 방해물처럼 여겨지기만 했습니다.
주요 인물들이 용의선상에 오르내리기를 반복하며 긴장감을 높이긴 하지만, 메인 사건 역시 물 흐르듯 이어진다기보다는 억지로 갖다 붙이거나 ‘뒷북 설명’식으로 전개되는 경우가 많았고, “범인이 굳이 그렇게 난해한 살인방식을 선택할 이유가 있었나?” 또는 “굳이 고립된 5성급 호텔이라는 공간이 필요했나?”라는 의문이 들기도 했습니다. 막판에 밝혀지는 범인의 동기 역시 작가가 독자를 설득하기 위해 부연설명을 여러 차례 ‘덧칠’한 느낌이 든 게 사실입니다.
엘린의 수사는 딱히 단서에 집중하는 것도 아니고 ‘형사의 감’에 의존하는 것도 아닌, 시종 모호한 태도를 취해서 마지막 순간에 범인을 특정하는 단계까지 좀처럼 따라가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또한 아마추어보다는 뛰어나지만 프로라고 하기엔 어딘가 어설퍼 보이는 캐릭터와 과도하게 강조된 막내동생에 관한 트라우마는 주인공으로서의 그녀의 매력을 감소시킨 주요 원인입니다.
내용에 관해선 거의 언급을 하지 못했는데, 인물과 사건 모두 꽤 복잡하게 설정된 데다 조금만 공개해도 스포일러가 될 대목들이 워낙 많기 때문입니다.
꽤 혹평에 가까운 서평이 되고 말았지만, 독자에 따라 높은 평점을 주는 경우도 적잖을 거란 생각입니다. 이 작품이 해외에서 거둔 성과와 실적이 괜한 것은 아닐 테니 관심 있는 독자라면 다른 분들의 서평도 꼭 참고해보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