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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리바이의 해부학
애슐리 엘스턴 지음, 엄일녀 옮김 / 문학동네 / 2026년 8월
평점 :
변호사 남편 벤저민과 이혼하고 싶은 캐밀은 그의 가방에서 오브리라는 여자의 신상이 적힌 메모를 보곤 뷸륜을 의심하며 그녀를 찾아갑니다. 하지만 캐밀의 예상은 빗나갔고, 그 메모엔 벤저민이 은폐하려는 어떤 비밀이 담겨있음을 깨닫습니다. 한편 오브리는 캐밀과의 대화 도중 그녀의 남편 벤저민이 10년 전 부모를 죽게 만든 교통사고와 어떤 식으로든 연루돼있다고 믿게 됐고, 결국 두 사람은 ‘남편의 비밀’과 ‘부모의 죽음의 진상’을 알아내기 위해 손을 잡기로 합니다. 캐밀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는 벤저민의 눈길을 피하기 위해 12시간 동안 신분을 바꾼 두 사람. 하지만 그 사이에 벤저민이 살해당하면서 사태는 뜻밖의 방향으로 흘러갑니다.

‘알리바이의 해부학’은 도메스틱, 서스펜스, 스파이 등 다채로운 장르가 혼재된 스릴러 ‘첫 번째 거짓말이 중요하다’로 한국 독자와 처음 만났던 애슐리 엘스턴의 신작으로, 10년 전 교통사고의 진실을 추적하는 미스터리이자 살해당한 변호사 벤저민이 품고 있던 거대한 비밀을 파헤치는 스릴러 서사가 잘 배합돼있습니다. 특히 등장인물들의 알리바이를 미스터리의 핵심 고리로 내세운 정교한 설계가 돋보이는 작품입니다.
원한이나 치정에 기인한 사건으로 보이던 벤저민의 죽음은 실은 부와 권력을 거머쥔 한 가문의 부정과 부패에서 비롯된 비극이고, 오브리의 부모를 죽음으로 몰고 간 10년 전의 교통사고 역시 진실이 은폐됐다는 사실이 초반부터 공개되는데, 뒤늦게 이를 알게 된 캐밀과 오브리는 ‘신분 바꾸기’라는 알리바이 작전이 오히려 자신들을 옭아맬 덫이 되고 말았음을 깨닫습니다. 두 사람 모두 알리바이를 입증하려면 왜 ‘신분 바꾸기’를 공모했는지를 밝혀야 되는데, 그럴 경우 유력한 용의자로 몰릴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캐밀과 오브리 외에 경찰의 의심을 받는 인물은 얼마 전 벤저민으로부터 계약 해지를 통보받은 파트너 변호사 행크입니다. 벤저민의 죽음으로 현실적인 이익을 가장 많이 얻게 될 그에겐 알리바이라곤 전혀 없었기에 누구보다 앞장서서 진상을 알아내려 분투합니다.
이들 외에도 독자는 벤저민과 연관 있는 모든 인물을 의심할 수밖에 없게 되는데, 이야기가 전개될수록 벤저민은 말 그대로 ‘모두가 죽기를 바란 자’로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탄탄하게 구축된 미스터리 스릴러의 구조라든가 인물들의 심리와 사건 정황을 매끄럽게 묘사한 문장들은 전작 못잖게 눈길을 끌었지만, 사실 이 작품의 가장 큰 아쉬움은 몰입감을 수시로 끊어버리게 만든 ‘이야기의 구성 방식’입니다. 네 명의 화자(캐밀, 오브리, 행크, 벤저민)가 번갈아 1인칭 시점으로 이야기를 끌고 가는데다, 벤저민이 살해된 날과 그 앞뒤의 날들, 그리고 10년 전 교통사고가 난 날까지 과거와 현재가 짧은 템포로 뒤죽박죽에 가깝게 배치된 탓에 좀처럼 집중하기가 어려웠다는 뜻입니다. 대체로 이런 구성을 채택하는 이유는 긴장감을 고조시키고 반전의 강도를 높이기 위함인데, 이 작품의 경우 그런 장점보다는 부작용, 특히 각각의 등장인물이 어떤 정보를 어디까지 알고 있는지가 독자에게 선명하게 전달되지 않아서 몇몇 결정적 장면들 외에는 시간의 흐름대로 구성하는 것이 더 효과적이었을 거란 생각을 거듭 들게 만들었습니다.
‘벤저민의 비밀’과 ‘10년 전 교통사고의 진상’은 뜻밖의 반전과 함께 진상 및 진범이 폭로되면서 마무리됩니다. 작가가 설계한 미스터리와 스릴러 구조는 군더더기 없이 깔끔하게 완성됐고, 클라이맥스와 엔딩에선 앞서 품었던 불만을 충분히 상쇄할 만한 쾌감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이야기의 구성이 조금만 더 친절하게 설정됐더라면 별 5개도 충분했을 작품인데, 그래선지 아쉬움이 더 크게 남은 게 사실입니다. 이 작품으로 애슐리 엘스턴을 처음 만난 독자라면, 그래서 100% 만족은 못 해도 관심이 생긴 독자라면 한국에 처음 소개된 그녀의 명품 ‘첫 번째 거짓말이 중요하다’를 읽어볼 것을 추천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