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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각의 정원
아야세 마루 지음, 이소담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6년 3월
평점 :
아야세 마루는 2021년에 한국에 출간된 단편집 ‘치자나무’로 처음 만난 작가입니다. 저의 非미스터리 최애작 목록에 들어있는 ‘한심한 나는 하늘을 보았다’의 구보 미스미와 ‘화소도중’의 미야기 아야코와 마찬가지로 ‘여성에 의한 여성을 위한 R-18 문학상’ 수상작가라 일단 관심이 갔었고, 인터넷서점의 소개글을 살펴보니 평범한 사랑 이야기가 아니라서 더 눈길이 끌렸습니다. ‘치자나무’ 서평의 일부를 소개하면...
“모티브는 ‘사랑’입니다. 하지만 이 작품 속 일곱 개의 ‘사랑’은 (대부분) 너무나도 기괴한 외피를 뒤집어쓰고 있는 탓에 마치 외계나 이계의 생명체에게 어울리는 낯선 감정처럼 와 닿습니다. 그로테스크. 아마, 이 작품을 단어 하나로 설명해달라고 하면, 더없이 진부하고 게으른 답이지만, 이보다 더 적확한 답은 없을 거란 생각입니다.”

‘감각의 정원’은 2010년 ‘여성에 의한 여성을 위한 R-18 문학상’ 수상작인 ‘꽃에 눈이 멀다’(花に眩む)를 포함하여 모두 여섯 편의 단편이 수록된 작품입니다. 전체적인 인상은 ‘치자나무’와 거의 비슷해서 기괴하고 그로테스크하지만 동시에 아름답고 애틋한 비극적인 사랑 이야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몸의 어딘가에 틈새를 지니고 있으며, 과거의 기억을 담은 유리구슬을 그 안에 담고 살아간다는 설정(‘마이, 마이마이’), 사랑하는 마음이 발동하면 몸 안에 돌이 생기는데 그 마음이 폭주하면 돌이 몸을 집어삼킬 수도 있다는 이야기(‘떨리다’), 인간은 태어난 곳과 환경에 따라 제각기 다른 꽃을 피부에서 피워내는데 그 꽃의 뿌리가 심장에 닿으면 죽음과 함께 흙으로 돌아간다는 설정(‘꽃에 눈이 멀다’) 등 수록작 대부분은 ‘치자나무’ 못잖게 기괴한 판타지와 탐미적인 서사를 품고 있습니다. 비극적인 파국을 맞이하는 사랑도 있고, 현실을 받아들이며 담담하게 마음을 정리하는 안쓰러운 사랑도 있습니다. 평범한 설정과 서사라면 그리 기억에 남을 일이 없는 사랑 이야기들이지만, 아야세 마루 특유의 상상력과 문장 덕분에 매 수록작마다 마지막 한 줄을 읽고 나면 몸과 마음을 살짝 떨리게 만드는 여운을 느끼게 됩니다.
첫 두 수록작 ‘매끈하게 움푹한 곳’과 ‘230밀리미터의 축복’의 경우 판타지적 설정이라곤 전혀 없는 비교적 평범한 사랑 이야기지만, 다 읽고 곱씹어보면 미묘한 분위기 속에 서늘함과 애틋함이 공존하는 이야기란 걸 새삼 깨달을 수 있습니다.
‘치자나무’와 마찬가지로 이 작품 역시 독자에 따라 호불호가 강하게 갈릴 수 있습니다. 애초 비현실적인 기괴함에 거부감이 있는 독자라면 “무슨 이런 설정이 다 있어?”라며 불쾌할 수도 있겠지만, 관음증에 가까운 호기심으로 그로테스크한 사랑 이야기를 엿보고 싶은 독자라면 그 어느 작가에게서도 맛보기 힘든 특별한 흥분과 여운을 만끽할 수 있을 것입니다. 첫 두 수록작만 읽으면 “평범한 사랑 이야기네.”라고 오해할 수도 있는데, 일종의 애피타이저에 가까운 그 작품들을 지나면 진짜배기 아야세 마루의 이야기가 펼쳐지니 미리 포기하는 일이 없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