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식기
아사이 료 지음, 민경욱 옮김 / 리드비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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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사이 료의 ‘정욕’(正欲, 한국 출간 2024년)은 ‘과연 욕망에도 바른 것이 있고 바르지 않은 것이 있는가?’라는 묵직하고도 정답 없는 주제를 다룬 파격적인 작품이었습니다. 생식에 관한 기록이라는 뜻을 지닌 ‘생식기’(生殖記)는 좀더 직설적인 서사를 통해 ‘공동체를 떠받치는 정상성’에 대해 날카로운 의문을 제기하는 작품입니다. 동성애자인 다쓰야 쇼세이가 자신의 정체성을 자각한 이후 32살에 이르기까지 어떻게 ‘정상성’에 대처하며 살아왔는지, 그리고 그 ‘정상성’이라는 것이 얼마나 폭력적이고 오만한지를 평생 쇼세이를 지켜봐온 ‘나’라는 화자를 통해 그립니다. 흔하진 않아도 다소 익숙해 보이는 주제지만, 이 작품의 가장 큰 특징은 생식이라는 개념을 도입한 데 있습니다. 또한 생식의 기록(生殖記)이면서 동시에 생식기(生殖器)에 관한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어린 쇼세이의 삶을 짓밟았던 건 “공동체의 균형, 유지, 확대, 발전, 성장에 공헌하려는 마음, 즉 공동체 감각”입니다. 그 감각은 쇼세이와 같은 사람들에게 숨죽인 채 살아가라는 압박과 함께 이상하고, 더럽고, 악한 것이라는 딱지를 붙였습니다. 부모에게 의존해야 했던 학창시절까지만 해도 자신의 정체성을 감추고 공동체의 일원인 것처럼 위장하는 것만이 가정과 학교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지만, 취업 후, 그러니까 경제적으로 자립하게 된 시점부터 쇼세이의 생존법은 달라집니다. 정상성과 공동체와 자본주의가 한 패라는 걸 명확하게 깨달은 쇼세이는 은폐와 위장 대신 좀더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방식으로 자신의 삶을 꾸리기로 결심한 것입니다. 그리고 공동체에 반하는 사람들을 노리는 ‘감시카메라’를 교묘하게 회피할 방법을 하나둘씩 터득하기 시작합니다.


“자기 마음을 아무도 눈치 채지 못하게 하고 판단, 결단, 선택, 선도를 담당하는 위치에 서지 않으며 그저 걷는 것. 손을 얹기는 하나 절대 힘을 주지 않는다.” (p77)


세상이 많이 바뀐 뒤로 이른바 ‘다양성’이니 ‘연대’니 하는 인식들이 확산됐지만, 그조차도 ‘공동체 감각의 거만한 아량’이라고 여기는 쇼세이는 조금도 자신의 생존법을 바꿀 생각이 없습니다. 그렇게 사회인으로 10년을 살아오는 동안 쇼세이의 세상은 평온하고 안정적이었지만, 같은 독신 기숙사에 사는 이성애자 커플의 고민, 이직을 선언한 후배의 놀라운 고백, 그리고 도서관에서 빌린 책 속에 담긴 (조만간 실현될 게 확실한) 새로운 ‘생식법’을 접하면서 새로운 국면을 맞이합니다. 


“나, 어릴 때 커서 성기 모양을 고를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 몸의 성장이 어느 정도 끝난 스무 살쯤일까? 내가 어떤 기질의 사람인지 알 때쯤 성기를 고르는 거야.” (p153)


‘태어나면서 부여된 생식기의 모양’에 대한 동료 여성의 고민은 쇼세이에게 낯선 화두를 던집니다. 이분법적으로만 세상을 바라봤던 쇼세이의 세계관을 뒤흔들었기 때문입니다. 아울러 ‘새로운 생식법’이 몰고 올 혁명에 가까운 변화 역시 쇼세이에게 큰 충격을 남깁니다. 그리고 이런 이야기들이 펼쳐지는 중반쯤부터 아사이 료의 진짜 작의가 드러나기 시작합니다. 특히 기존의 생존법과는 조금은 다른 길을 모색할 가능성이 엿보이는 쇼세이의 변화가 독자의 눈길을 끕니다. 

물론 아사이 료는 마지막까지 “이것이 내 주장이자 정답이다.”라고 강요하지 않습니다. ‘정욕’과 마찬가지로 “세상엔 이런 면도 있고 이렇게 살아가는 사람도 있답니다. 당신은 어떻게 생각하는지요?”라는 어려운 질문을 남긴 채 이야기를 마무리합니다.


‘정욕’과 ‘생식기’ 모두 편하게 읽히는 작품은 아닙니다. 어쩌면 저 자체가 ‘공동체 감각’에 사로잡혀 있기 때문일 수도 있고, ‘거만한 아량’을 베푸는 위선자이기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생식기’를 찾아 읽은 건 ‘정욕’과 마찬가지로 불편하긴 해도 생각할 여지를 많이 남길 거라는 기대 때문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기대는 충분히 충족되긴 했는데, 솔직히 고백하자면 아사이 료가 또다시 비슷한 주제를 들고 나온다면 그때는 좀 고민이 될 것 같은 게 사실입니다. 우선은 서점대상 1위에 오른 ‘인 더 메가 처치’를 읽으면서 ‘생식기’의 여운과 후유증을 좀 달래야 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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