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킬 유어 달링
피터 스완슨 지음, 노진선 옮김 / 푸른숲 / 2025년 12월
평점 :
결혼한 지 28년이 된 웬디는 어느 날 저녁, 남편 톰을 죽이기로 결심합니다. 과도한 음주와 지독한 우울증도 문제였지만, 31년 전에 함께 저질렀던 살인에 대한 죄책감을 지우지 못한 톰이 추리소설을 쓰는 중이라며 그 안에 살인사건이 등장한다고 밝혔기 때문입니다. 소설 속 살인사건은 영원히 비밀로 묻어두기로 했던 두 사람의 죄를 모티브로 삼고 있었고, 만약 소설이 공개된다면 파멸을 피할 길은 없습니다. 몸과 마음이 점점 무너져가는 톰을 지켜보며 웬디는 그를 죽이는 것만이 해결책이라고 확신합니다. 그리고 그와의 마지막 여행을 준비합니다.

이 작품의 원제 ‘Kill your darlings’를 어떻게 해석해야 되나, 궁금했는데, 서평을 쓰기 전에 인터넷서점의 소개글을 읽어보니 “가장 사랑하는 문장을 지워야 좋은 글이 된다.”라는 뜻의, 글 쓰는 이들을 위한 유명한 문학 격언이었습니다. 이 격언을 비틀어 이 작품을 한 줄로 요약하면 “가장 사랑하는 톰을 죽여야 웬디의 삶이 완벽해진다.”가 됩니다.
“처음 남편을 죽이려고 했던 건 디너파티가 열린 밤이었다.”라는 웬디의 고백으로 시작된 첫 챕터가 2023년 두 사람의 마지막 여행을 그리고, 이어지는 챕터에선 5년 전인 2018년의 이야기를 다룹니다. 이후 톰과 웬디가 용서받지 못할 죄를 저질렀던 1992년을 거쳐 14살이던 두 사람이 처음 만나 사랑을 싹틔운 1982년까지 거슬러 올라갑니다.
아주 오래 전, “나 다시 돌아갈래!”라는 설경구의 명대사와 함께 영화 ‘박하사탕’의 마지막 장면이 암전된 뒤 몹시 울컥해지며 영화의 첫 장면을 허겁지겁 되새겼던 기억이 있습니다. 아마 이 영화를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같은 경험을 했을 텐데, 만일 ‘박하사탕’이 시간의 순서대로 구성됐더라면 그 감흥은 10분의 1도 채 되지 않았을 것입니다. ‘시간 역순 스릴러’인 ‘킬 유어 달링’ 역시 똑같은 느낌을 선사했는데, 마지막 장면, 그러니까 모든 것이 서투르고 풋풋하지만 그래서 순수함 덩어리 그 자체였던 1982년 14살의 톰과 웬디의 첫 키스 장면을 읽는 순간 2023년, 남편 톰을 죽이기로 결심한 50대 중반의 웬디와 그저 무기력하게 무너져가고 있던 톰의 모습이 떠오르며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착잡함에 사로잡혔습니다. 곧바로 앞으로 돌아가 첫 번째 챕터를 다시 읽었는데, 그제야 이 작품의 진가를 만끽할 수 있었습니다.
고백하자면, 중반부쯤 중도포기를 고민했던 게 사실입니다. 사건 위주의 스릴러가 아니라 지독한 심리 서스펜스물이라는 건 첫 챕터에서 진작 눈치 챘지만, 지루할 정도로 집요한 심리묘사와 (두 사람의 과거의 죄와는 무관한) 느슨한 에피소드들이 반복되면서 “계속 읽어야 되나?”라고 고민했던 겁니다. 그러다가 31년 전에 벌어진 살인사건에 관한 이야기들이 공개되면서 다시 집중할 수 있었고, 다행히도 이 작품의 미덕이 응축된 마지막 장까지 달릴 수 있었습니다. 중반부의 지루함 때문에 별 4개에 그치고 말았지만, 한때 중도포기 또는 잘 해야 별 3개라고 실망했던 걸 감안하면 그만큼 마지막 장의 충격과 여운이 대단했다는 뜻입니다.
냉소적이고 현실적이며 이성주의자인 웬디와 예민한 낭만주의자에 매사 감정적이고 여린 톰은 애초부터 ‘영원한 비밀을 약속한 살인 공범’이 되기엔 부적절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웬디가 지난 31년 동안 조금의 흔들림도 없이 살아왔다면, 톰은 웬디와 결혼한 지 얼마 뒤부터 균열을 일으키기 시작했고 ‘죄를 짓고도 처벌받지 않은 자의 딜레마’에 빠진 채 조금씩 무너져왔습니다. 과도한 음주와 지독한 우울증, 그리고 노화에 따른 육체적 쇠락까지 겹치면서 톰은 소설을 통해서라도 자신들의 죄를 드러내려 했던 건데, 그건 남은 삶을 망가뜨릴 생각이 조금도 없는 웬디에겐 결코 용납될 수 없는 일이었고, 가장 사랑하는 문장을 지워서라도 좋은 글을 얻어내겠다는 냉정한 결단을 내리게 만듭니다.
이야기가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는 동안 소소하긴 해도 몇 가지 반전이 독자의 눈길을 끕니다. 톰과 웬디가 저지른 살인 외에도 뜻밖의 살인이 등장하기도 하고, 초반에 등장한 인물 가운데 그 정체가 막판에 드러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런 설정들 덕분에 흐트러졌던 집중력을 회복할 수 있었지만, 어쨌든 중반부의 지루함이 이 작품의 가장 아쉬운 지점이자 동시에 없어서는 안 될 ‘필요한 지루함’인 것도 사실입니다. 부디 이 지루함을 잘 넘겨서 ‘킬 유어 달링’의 진가를 꼭 맛보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