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센의 대여 서점 ㅣ 시대물이 이렇게 재미있을 리가 없어! 2
다카세 노이치 지음, 이규원 옮김 / 북스피어 / 2026년 1월
평점 :
에도 시대에는 돈을 받고 책을 빌려주는 ‘세책점’이 많았다. 세책업은 무거운 책궤를 짊어지고 다니며 책을 빌려주는 장사였기 때문에 주로 남자들의 일이었다. 필마단기로 세책업에 뛰어든 센은 남자들과 경쟁하며 책을 구하기 위해서라면 천릿길도 마다하지 않았다. 당시는 성적인 표현이 노골적이거나 정권을 비판하는 책을 엄히 단속하던 시절이었는데, 인쇄 판목을 새기는 조각사였던 센의 아버지는 막부에 비판적인 책을 조각했다는 혐의로 형벌을 받고 실의에 빠져 자살했다. 이로 인해 혈혈단신이 된 센을 지탱한 것은 ‘책을 단속하는 세상’에 대한 의문과, 그럼에도 잃지 않았던 책에 대한 믿음이었다. (출판사 소개글을 일부 수정 후 인용했습니다)

다섯 편의 단편으로 이뤄진 작품이라 줄거리를 어떻게 정리해야 되나 고민하다가 출판사의 소개글만큼 잘 쓸 자신이 없어서 거의 그대로 인용했습니다. 안 그래도 비블리오 미스터리, 즉 책이나 기록문서를 소재로 하는 추리소설을 좋아하는데, 거기에다 미야베 미유키 덕분에 지대한 관심을 갖게 된 에도시대가 배경인 작품이라 큰 기대를 갖게 됐습니다. (처음 접한 작가지만 북스피어가 펴내고 이규원이 번역한 작품이라 조금도 고민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나는 뒷골목을 누비며 반딧불이의 희미한 빛을 후세에 남기는 일을 하고 있는 거예요. 책만 빌려주고 다니는 게 아니에요. 책을 지키는 거예요.” (p66)
5년째 세책점 우메바치야를 운영하는 24살 센의 삶은 99%가 책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책에 실릴 삽화를 판목에 조각하던 아버지의 영향으로 어려서부터 책을 좋아했고, 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뒤엔 홀로 무거운 책궤를 들고 사방을 돌아다닙니다. 단순히 생계를 위한 세책이 아니라 센은 진심으로 책을 아끼고 지키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책이 얽힌 사건이라면 아무리 위험한 일이라도 일단 부딪히고 보는 성격입니다. 당차고 정의로운 반골이라고 할까요?
수록된 다섯 편엔 센의 과거와 현재를 소개하는 내용은 물론 절도, 방화, 살인 등 책과 관련된 크고 작은 사건들을 센이 직접 해결하거나 그에 버금가는 역할을 맡는 다양한 이야기들이 실려 있습니다. 지혜를 동원하여 진상을 밝혀내기도 하고, 위험을 무릅쓰고 사건 관련자를 만나거나 사건 현장을 직접 찾기도 합니다. 그 와중에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심지어 폭력배와 부딪히더라도 센은 조금도 물러서지 않습니다. 이 모든 건 어떤 상황에서도 책을 지키겠다는 신념 하나 때문에 가능한 일입니다. ‘편집자 후기’ 가운데 “센은 책에 관한 한 집념이라고 해도 좋을 마음을 품고 있습니다. 거기에는 억울하게 돌아가신 아버지에 대한 복수심과 출판을 통제하는 나라님들에 대한 반감도 있지요.”라는 설명은 센이 어떻게 세상을 대하는지, 어떤 마음가짐으로 살아가는지를 잘 보여줍니다.
엄청난 반전이 있는 것도 아니고, 독하고 센 이야기도 아니지만 때론 웃음을 자아내기도, 때론 행여나 다치기라도 할까 걱정하게 만들기도 하는 센의 진심어린 행동들을 읽다 보면 어느새 온힘을 다해 응원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센의 대여 서점’은 북스피어가 야심차게(?) 내놓은 ‘시대물이 이렇게 재미있을 리가 없어!’라는 특이한 이름의 시리즈 중 한 편으로, 이마무라 쇼고의 ‘새왕의 방패’에 이은 두 번째 작품입니다. 개인적으로 에도시대는 물론 근현대를 배경으로 한 일본소설을 무척 좋아하다 보니 이 시리즈가 북스피어 김사장님의 예고처럼 10편만 내고 끝나는 일이 없기를 간절히 바라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군가에게 자신 있게 추천하는 건 쉽지 않은 게 사실입니다. 바로 일본 시대소설의 가장 큰 장벽인 고유명사 때문입니다. ‘미야베 월드 2막’을 비롯하여 일본 시대소설을 꽤 읽은 저도 ‘센의 대여 서점’에서 처음 보는 고유명사들이 많아서 주석에 눈길이 많이 빼앗겼는데, 이제 막 입문하는 독자라면 꽤 난이도 높은 책읽기를 각오해야 됩니다. 하지만 이 장벽만 넘는다면 ‘시대물이 이렇게 재미있을 리가 없어!’라는 길고도 반어법적인 시리즈 이름에 100% 공감하는 것은 물론 저처럼 ‘에도시대 마니아’가 될 수도 있습니다.
일본에선 2025년에 센의 두 번째 이야기인 ‘往来絵巻 貸本屋おせん’가 출간됐습니다. 개인적으론 ‘시대물이 이렇게 재미있을 리가 없어!’의 세 번째 작품이 센의 두 번째 이야기가 됐으면 좋겠는데, ‘편집자 후기’를 보면 그럴 가능성도 꽤 있어 보입니다. 물론 1~2년에 한 편씩 센의 새 이야기를 읽을 수 있다면 더 바랄 나위가 없겠지만 말입니다. (작가 이력을 살펴보니 센의 이야기 외에도 시대소설을 많이 출간했던데, 그 작품들도 한국에 꼭 소개되기를 기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