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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프네를 죽여줘
플로랑스 멘데즈 지음, 임명주 옮김 / 반타 / 2025년 12월
평점 :
가정폭력의 트라우마와 만성 우울증에 시달리던 25살 다프네 플로레스는 두 차례의 자살 시도에 실패하자 다크웹의 청부살인 커뮤니티를 찾습니다. 그녀의 의뢰를 받아들인 건 아직까지 한 번도 사람을 죽인 적이 없는 초보 킬러 마르탱 마르텔. 그런데 마르탱은 어처구니없게도 엉뚱한 사람을 죽이는 실수를 저질렀고, 그 현장을 목격한 다프네는 자살에 대한 확신이 흔들립니다. 더구나 열흘 안에 의뢰가 완수되지 못하면 다른 킬러가 두 사람을 모두 살해할 거라는 마르탱의 말에 다프네는 패닉에 빠집니다. 다프네는 자신이 정말 죽고 싶은 건지 전문가와 상담하고 싶어졌고 인터넷에서 심리치료사 모나 샴스를 찾아냅니다. 하지만 모나는 사이코패스와의 부적절한 관계 때문에 정신과 전문의 자격을 박탈당한 인물이었습니다.

가정폭력, 트라우마, 우울증, 자살, 청부살인 등 암울하고 어두운 소재들로 뒤범벅된 이야기지만 마치 속사포 같은 만담을 들으며 초고속 롤러코스터에 올라탄 듯한 아찔한 쾌감과 프랑스 문학 특유의 냉소적이면서도 노골적인 선정성과 범죄스릴러의 긴장감까지 한꺼번에 만끽할 수 있는 독특한 작품입니다. “폭력적이면서 유머러스하고, 거칠면서 동시에 감동적이다.”라는 한 줄 평이나 “광기와 유머가 동시에 번뜩이는 사이코 범죄스릴러”라는 출판사의 소개글은 이 작품의 분위기를 잘 대변하고 있는데, 아마도 자폐스펙트럼과 우울증을 극복하고 유명 코미디언이 된 작가의 이력이 제대로 녹아있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청부자살까지 결심한 다프네와 그 청부를 받아들인 마르탱은 사실 무척이나 닮은꼴입니다. 유년기부터 정신적, 육체적 폭력에 시달렸고, 성장하면서 왜곡된 가치관에 사로잡혔으며, 지독한 자기혐오와 우울증에 시달리다가 끝내 스스로에게 사회부적응자라는 낙인을 찍은 사람들입니다. 그런 두 사람이 ‘죽고 싶은 자’와 ‘죽여야 하는 자’로 만났지만, 뜻밖의 사태로 인해 ‘죽고 싶은 건지 고민되는 자’와 ‘죽이고 싶지 않은 자’로 생각을 바꾸면서 예상치 못한 열흘의 동행을 벌이게 됩니다.
그리고 거기에 사이코패스인 환자와의 부적절한 관계 때문에 의사 자격을 박탈당한 심리치료사 모나가 끼어들면서 세 사람은 묘한 연대의 길을 걷기 시작합니다. 문제는 설령 다프네가 살겠다고 마음을 바꾸더라도 또 다른 킬러가 찾아올 거란 사실입니다. 더구나 마르탱이 실수로 엉뚱한 여자를 죽인 사건이 경찰에 포착되면서 다프네와 마르탱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궁지에 몰리고 맙니다.
인물들의 캐릭터나 설정된 사건들만 보면 이야기가 절대 해피엔딩으로 끝나지 않을 거란 건 쉽게 짐작할 수 있습니다. 다프네가 갑자기 마음을 고쳐먹고 삶에 대한 의지를 되찾을 것 같지도 않고, “그날 이후 마르탱과 행복하게 잘 살았습니다.”라는 엔딩은 더더구나 아닐 것 같기 때문입니다. 또 청부살인조직과 경찰의 추격을 받게 된 이상 분명 피비린내가 진동하는 장면이 불가피해보였고, 사회적으로 매장당한 심리치료사 모나 역시 ‘선한 중재자’로만 머물지는 않을 것 같아서 과연 어떤 파격적인 엔딩이 기다리고 있을지 무척 궁금했습니다.
다만 표지를 넘기자마자 나오는 ‘경고장’에서 작가가 “인생은 가끔 우리를 골탕 먹이기도 하지만 그래도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다운 것.”이라고 언급한 점을 머릿속에 담아둔 덕분에 이 작품이 그저 지독한 씁쓸함과 불편한 여운만 남기지는 않을 거란 걸 예상할 수 있었고, 여러 차례의 반전 끝에 도달한 마무리에선 새삼 작가의 ‘경고장’의 의미를 곱씹을 수 있었습니다.
264쪽에 불과한 짧은 분량이지만, 폭력적이고 선정적이면서도 냉소와 실소를 번갈아 경험하게 만들다가 마지막엔 안타까움과 안도감까지 느끼게 만드는 롤러코스터 같은 다프네의 이야기에 관심 있는 독자라면 다른 분들의 서평도 꼭 참고해보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