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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비는 돌아오지 않는다
기리노 나쓰오 지음, 김혜영 옮김 / 해피북스투유 / 2026년 3월
평점 :
훗카이도 벽촌 마을 출신으로 도쿄에서 비정규직으로 일하는 29세 여성 오이시 리키는 생존의 문제를 고민할 정도로 절박한 상황에 몰려있습니다. 그러던 중 고액을 보장하는 난자 제공에 대해 들은 리키는 고민 끝에 클리닉을 찾는데, 뜻밖에도 대리출산 제안을 받자 혼란에 빠집니다. 모든 시도가 수포로 돌아간 뒤 대리출산을 결정한 구사오케 부부를 만난 리키는 자신이 요구한 터무니없는 금액까지 받아들여지자 결국 제안을 받아들입니다. 서른 살 미만까지만 가능한 난자 제공은 자신에게 주어진 마지막 기회라고 여겼기 때문입니다. 몇 차례의 실패 후 가까스로 임신에 성공하지만, 리키는 예기치 못한 상황에 맞닥뜨리면서 자신의 선택을 후회하는 것은 물론 극단적인 선택까지 고민하기에 이릅니다.

최근 1년 동안 장기 프로젝트 때문에 좋아하는 장르물을 읽지 못한 탓에 제 하반기 독서계획은 100여 권에 가까운 국내외 장르물로 가득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스터리나 스릴러 요소라곤 전혀 없는 대리모의 이야기를 먼저 읽기로 한 건 순전히 기리노 나쓰오의 작품이기 때문입니다. 막장 드라마의 단골 설정이기도 하고, 더 이상 새로운 이야기가 나올 것 같지 않은 소재를 갖고 과연 기리노 나쓰오는 어떻게 독자를 사로잡았을지 무척 궁금해진 것입니다. 또 선택지가 많지 않은 엔딩 가운데 기리노 나쓰오가 고른 카드가 무엇일지, 결코 해피엔딩이 될 수 없는 이 이야기가 어떻게 마무리될 지도 무척 궁금했습니다.
이야기의 큰 얼개는 특별히 새롭진 않습니다. 대리출산의 당사자들인 오이시 리키와 구사오케 모토이-유코 부부가 ‘제안과 수락, 인공수정 시도와 임신, 그리고 출산’이라는 지난한 과정을 거치는 동안 갈등과 고민, 관계의 변화, 파국의 위기를 겪는 이야기가 때론 담담하게, 때론 극적으로 흘러갑니다. 세 주인공은 상황이 바뀔 때마다 극도의 불안과 동요에 휩싸이고, 롤러코스터마냥 수차례 자신의 결정을 번복하거나 상대의 결정에 동의와 비난을 번갈아 퍼붓습니다.
자신의 유전자를 물려받은 2세를 갖고 싶은 열망에 휩싸인 남편 모토이, 순조롭게 아이가 태어나더라도 결국 방관자 또는 제3자로 머무를 수밖에 없다는 생각에 절망하는 아내 유코, 그리고 대리출산 자체를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 애써 자위하면서도 동시에 임신과 출산에 대한 공포, 그리고 태어난 아이에 대해 스스로 어떤 감정을 갖게 될지 알 수 없는 불안감에 휩싸인 리키 등 주인공들의 불안과 동요가 냉정하면서도 냉소적인 분위기 속에 독자의 눈길을 사로잡습니다.
기리노 나쓰오가 적재적소에 배치한 조연들의 각기 다른 입장도 세 주인공의 서사 못잖게 긴장감과 흥미를 유발합니다. 대리출산에 반대하는 인물들은 모토이-유코 부부가 “팔 게 없는 여자에게서 자궁과 인생을 착취하는 것”이라며 원색적인 비난과 함께 리키를 만류합니다. 반면, 리키를 ‘출산 기계’정도로만 여기는 인물은 돈으로 리키의 자궁을 산 걸로 모자라 출산 후 그녀의 ‘시한부 모성’까지 사들이려는 파렴치함을 감추지 않습니다. 또, 리키의 처지와 결정에 공감하는 인물들은 그저 그녀의 몸과 마음이 다치지 않기를 바라며 일련의 과정을 조심스레 지켜봅니다.
출판사의 소개글이나 메인 스토리만 보면 다소 뻔한 이야기처럼 보이기도 하고, 굳이 472쪽이나 되는 분량이 필요했을까, 라는 의문이 들 수도 있지만, 기리노 나쓰오는 단 한 시도 지루할 틈을 주지 않는 것은 물론 예상 밖의 전개로 독자를 깜짝깜짝 놀라게 만들곤 합니다. 때론 파격적인 행동과 결정을 주저하지 않는 리키의 행보라든가, 모토이-유코 부부의 느닷없는 변덕과 그로 인한 국면 전환, 그리고 럭비공처럼 어디로 튈지 모르는 조연들의 역할은 금세 그리고 단 한 번에 마지막 장에 이르게 만듭니다.
출판사는 “이건 모성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다”라고 홍보했는데, 실제로 여성, 빈곤, 불임, 가부장 등 사회적 서사와 개인의 심리가 복잡다단하게 설정된 작품이긴 해도 그 밑바탕에 깔린 가장 중요한 토대는 역시 ‘모성’이라는 생각입니다. 막장 드라마에서 애용되던 대리출산이라는 소재가 기리노 나쓰오의 손끝에서 진정성 있는 소설로 확장될 수 있었던 가장 큰 동력 역시 ‘모성’이라는 생각입니다.
-사족1. ‘제비는 돌아오지 않는다’는 원제(燕は戻ってこない)의 의미가 궁금했는데, 출판사 소개글 어디에도 그에 대한 설명이 없어서 아쉬웠습니다.
-사족2. p319에서 한 인물이 “그렇겠네. 유코 혼자만 낙동강 오리알이 됐으니.”라고 말하는데, 지문도 아닌 대사에 한국의 고유명사가 들어간 ‘낙동강 오리알’이란 번역은 좀 이상하지 않나요? 전에 한 일본 미스터리에서 화폐단위를 ‘엔’이 아니라 ‘원’으로 번역해놓은 것을 보고 어이가 없었는데, 그 정도까지는 아니지만, 원작대로 번역하고 각주를 달았어야 하지 않을까요?
-사족3. 올해(2026년) 초에 프리다 맥파든의 ‘대리모’가 한국에 출간됐습니다. 줄거리는 전혀 모르지만 과연 기리노 나쓰오와는 어떻게 다른 방식으로 접근했을지 무척 궁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