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토리안 사이코
버지니아 페이토 지음, 배지은 옮김 / 현대문학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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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토리아 시대, 그림월즈에 자리한 파운즈 가문의 저택에 새 가정교사 위니프레드 노티가 도착합니다. 불화와 신경질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파운즈 부부, 망나니나 다름없는 13살 드루실라와 8살 앤드루가 노티가 상대할 가족입니다. 하지만 노티가 저택을 찾은 진짜 이유는 따로 있습니다. 도착하던 날, 황무지 너머 저택을 바라보며 노티는 예언하듯 다짐합니다. “세 달 안에 이 집 안 사람들은 모두 죽을 것이다.” 얼마 후부터 저택의 다락방에선 은밀한 피비린내가 진동하기 시작하고, 이후 세 달이 흘러 크리스마스를 맞이한 노티는 자신의 다짐대로 무자비한 살육극을 벌입니다.

 


빅토리안 사이코라는 제목 자체가 눈길을 끄는 작품입니다. 부조리한 근대성을 상징하는 빅토리아 시대(1837~1901)와 사이코패스의 결합은 장르물 독자라면 누구나 솔깃한 소재이기 때문입니다. 첫 페이지 저택의 삽화 밑에 쓰인 세 달 안에 이 집 안 사람들은 모두 죽을 것이다.”라는 충격적인 문장으로 이야기를 시작한 작가는 이어 황무지에 둘러싸인 음울한 저택, 어둡고 묵직한 색채의 벽과 가구들, 식기장 위에 걸린 가죽이 벗겨진 소의 그림, 음산한 표정의 초상화 등을 통해 독자의 마음을 더욱 불길하게 만듭니다.

 

출판사 소개글을 보면 작가를 고딕 블랙코미디의 마녀’, 또 이 작품을 어느 가정교사의 잔혹하고도 유쾌한 복수극이라고 묘사했는데, 대략 절반쯤만 맞다고 생각하면 됩니다. 오로지 살인에만 골몰하느라 캐릭터가 희박해지는 여느 사이코패스와 달리 노티는 분명 블랙코미디 스타일의 개성을 갖고 있긴 하지만 그녀의 행각이 결코 유쾌하다고 볼 순 없기 때문입니다. 잔인하지만 가볍고 웃긴 사이코패스 이야기를 기대한 독자라면 꽤 높은 수위에 놀랄 수도 있는데, 다만 피와 살이 난무하는 끔찍한 상황마저 요리조리 비틀어 묘사하여 결국은 독자를 웃게 만드는 영국식 블랙코미디의 미덕을 확실히 맛볼 수 있는 작품인 건 사실입니다.

 


노티의 현재와 과거, 그녀의 현실과 망상이 불쑥불쑥 교차되며 그려지는 가운데 은밀한 심리묘사까지 곁들여져서 276쪽에 불과한 분량임에도 읽는 데 꽤 시간이 걸립니다. 특히 독자는 페이지를 넘길수록 오히려 더 궁금증만 일으키는 노티의 비밀에 집중해야 되는데, 일반 장르물처럼 그저 사건의 흐름에만 주목하다 보면 이 작품의 핵심을 놓칠 수도 있습니다.

 

우선 노티의 동기가 가장 궁금합니다. 사이코패스에게 논리적이고 이해 가능한 범행 동기를 묻는다는 건 어불성설입니다. 남녀노소와 지위고하를 불문하고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흉기를 거침없이 휘두르며 살의를 내뿜는 노티에겐 더더욱 ?’를 물을 수 없습니다. 소설가 조예은의 평대로 그녀는 영원히 길들여지지 않을 잔혹한 사이코패스라는 뜻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라는 궁금증이 들 수밖에 없는데, 실은 노티가 저택의 가정교사가 된 건 결코 우연한 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노티는 처음부터 파운즈 씨는 내가 꼭 풀기로 마음먹은 수수께끼다.”라고 밝히는데, 이 미스터리 덕분에 노티의 무차별 살육극 이면의 비밀에 내내 궁금증이 들게 됩니다. 이 궁금증의 힌트는 노티의 과거 속에 숨어있지만, 막판에 그 누구도 눈치 채기 어려운 놀라운 반전을 통해 밝혀집니다.

 

두 번째는 노티의 사이코패스 기질은 타고난 것인가, 키워진 것인가?’입니다. 초반만 해도 타고난 살인마로 노티를 그리던 작가는 조금씩 빅토리아 시대가 키워낸 후천적 사이코패스로서의 노티를 보여줍니다. 어려서부터 밥 먹듯 살인을 저질렀지만, 죄책감을 느낀 적도, 딱히 쾌감을 만끽한 적도 없는 순도 100%의 사이코패스이자 동시에 귀족 사회의 위선, 사회 불평등, 약자에 대한 혐오 등 빅토리아 시대의 부조리가 키워낸 사회파 사이코패스의 기질이 노티 안에 공존한다는 뜻입니다. 작가는 이 두 가지 요소를 절묘하게 결합함으로써 독자로 하여금 희대의 사이코패스 노티에게 빠져들게 만듭니다.

 


이 작품을 원작으로 한 동명의 영화가 2026년 칸 영화제 주목할 만한 시선부문 상영작으로 선정됐다고 합니다. 개인적으론 쿠엔틴 타란티노와 코엔 형제의 분위기가 미묘하게 뒤섞인 영화가 아닐까, 추측되는데 올해 한국에서도 개봉된다고 하니 과연 원작의 독특한 분위기가 어떻게 영상으로 만들어졌을지 꼭 확인해보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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