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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괴이 너는 괴물
시라이 도모유키 지음, 구수영 옮김 / 내친구의서재 / 2025년 10월
평점 :
*출판사에서 제공받은 도서입니다.
2020년 ‘그리고 아무도 죽지 않았다’를 시작으로 ‘인간의 얼굴은 먹기 힘들다’, ‘명탐정의 창자’, ‘엘리펀트 헤드’까지 그동안 읽은 시라이 도모유키의 작품은 모두 장편이었는데, ‘나는 괴이 너는 괴물’은 그의 갖가지 특수설정과 기발한 아이디어가 다양한 장르의 단편 미스터리 속에 제대로 녹아있어서 무척 특별한 책읽기를 경험할 수 있었습니다.

명탐정을 꿈꾸는 초등학생이 동급생 피습사건을 조사하다가 겪게 되는 예상 밖의 결말(‘최초의 사건’), 외계인의 침공으로 인류 절멸의 위기가 도래한 가운데 희대의 범죄자를 이용하여 마지막 역습을 시도하는 이야기(‘큰 손의 악마’), 죽기 전 마지막으로 유곽에 갔다가 기괴한 진실 찾기에 휩싸인 남자와, 그 남자를 상대하다가 갑자기 탐정 역할을 떠맡은 한 유녀의 이야기(‘나나코 안에서 죽은 남자’), 3만 년 전 멸종된 모틸리언의 화석을 찾아 금단의 섬에 들어간 일당이 손목뼈만 따로 버려진 한 모틸리언의 사연을 추리하는 이야기(‘모틸리언의 손목’), 프릭쇼 공연단에서 일어난 밀실살인사건을 놓고 벌어지는 다중추리의 향연(‘천사와 괴물’) 등 “역시 시라이 도모유키답네!”라는 말이 저절로 나올 정도로 독특한 본격 미스터리 서사들이 수록돼있습니다.
1920년대부터 3만 년 후에 이르는 다양한 시대적 배경도 흥미롭지만, 정통추리, 밀실트릭, 다중추리, 유령, 독살, 예언 등 여러 가지 장르와 소재를 한꺼번에 맛볼 수 있었던 점이 가장 매력적이었습니다. 특히 기발한 SF 설정이 본격 미스터리와 어우러진 작품들이 많아서 눈길을 끌었는데, 한 독재자가 개발한 전대미문의 무기가 일으킨 전 지구적 괴현상, 무자비하게 인류를 공격하지만 일면 신사적인 매너와 소심함까지 갖춘 특이한 외계인, 자신들이 캐낸 화석의 사연을 추리하며 공방을 벌이는 이상한 캐릭터의 일당 등 평범한 SF와는 거리가 먼, 그야말로 시라이 도모유키다운 설정들이 이야기를 더욱 풍성하게 만들어줍니다.
또한 진실과 범인을 밝히는 단순한 미스터리를 넘어 서스펜스와 스릴러의 영역까지 건드린 수록작도 있어서 앞서 읽은 네 편의 장편들과는 사뭇 다른 여운을 만끽할 수 있습니다.
개인적으론 SF와 스릴러와 복수극이 잘 어우러진 ‘큰 손의 악마’와 시대극의 풍미와 함께 연이은 반전까지 즐길 수 있었던 블랙코미디 스타일의 미스터리 ‘나나코 안에서 죽은 남자’가 가장 인상적이었고, 다중추리의 매력과 비극 서사가 잘 녹아든 ‘천사와 괴물’도 기억에 남는 작품이었습니다.
앞서 출간된 장편들을 통해 시라이 도모유키의 예측불허의 특수설정과 ‘그로테스크한 세계관’에 이미 익숙한 독자라도 단편만의 특별한 성찬을 맛볼 수 있는 작품이니 (제목대로) 괴이와 괴물이 난무하는 흥미진진한 무대에 궁금증이 생긴 독자라면 한번쯤 관심을 가져볼 것을 권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