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시체를 찾아주세요
호시즈키 와타루 지음, 최수영 옮김 / 반타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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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종양에 걸려 자살을 결심한 베스트셀러 작가 모리바야시 아사미가 블로그에 내 시체를 찾아주세요.”라는, 독자에게 보내는 마지막 미스터리를 남긴 채 실종됩니다. 아사미와 다툰 뒤 호숫가 별장에 와있던 남편 마사타카는 담당 편집자 사오리를 통해 아사미의 소식을 듣곤 큰 충격에 빠집니다. 출판계와 독자들이 패닉에 빠진 가운데 며칠 후 아사미의 블로그에 마사타카마저 깜짝 놀랄 만한 비밀 폭로글이 새로 올라오자 그녀의 생사를 놓고 격렬한 논쟁이 벌어집니다. 이어 14년 전 벌어진 여고생 집단자살사건, 일명 하얀 새장 사건의 진상을 다룬 미공개 원고가 블로그에 올라오고 아사미가 사건 당사자 중 한 명이란 사실이 공개되자 세간은 아사미의 의도가 무엇인지, 그녀의 시체는 어디에 있는 것인지 촉각을 곤두세우게 됩니다.

 


오랜만에 마지막 한 줄까지 온 신경을 집중할 수 있었던 수작을 만났습니다. 280페이지에 불과한 분량이지만 단 한 줄도 허투루 읽어 넘길 문장이 없어서 마치 5~600페이지가 넘는 벽돌책을 읽은 듯 몸과 마음이 소진된 느낌이었습니다.

 

뇌종양으로 인해 자살을 결심한 베스트셀러 작가가 독자에게 남긴 마지막 미스터리는 자신의 시체를 찾아달라는 엽기적인 내용을 담고 있고, 이미 사망한 작가의 블로그에 미리 예약해둔 듯한 폭로성 글이 연이어 올라오는가 하면, 14년 전 작가 본인이 연루된 집단자살사건을 논픽션 형식으로 집필한 미공개 원고마저 차례로 공개되는 등 독자는 초반부터 여러 개의 미스터리 폭탄을 동시에 맞게 됩니다.

 

남편 마사타카와 편집자 사오리가 한 챕터씩 번갈아 화자를 맡고 중간중간 연일 갱신되는 아사미의 블로그 내용이 삽입됩니다. 말하자면 아사미의 생사 및 시체의 행방에 마사타카와 사오리를 제외한 엉뚱한 제3자가 끼어들 여지가 전혀 없다는 뜻입니다.

나르시시즘에 빠진 채 기생충처럼 아사미에게 얹혀 살아온 마사타카도, 아사미에게 집착에 가까운 동경심을 품은 탓에 넘어선 안 될 선을 넘었던 사오리도 독자의 의심을 받기에 충분한 인물들이지만, 작가는 마지막까지 아사미가 살아있는 건지 죽은 건지, 죽었다면 예고대로 자살한 건지 혹은 살해당한 건지, 살해당했다면 누가 죽인건지 좀처럼 가늠할 수 없게 만들어서 호기심과 궁금증을 극대화시킵니다.

거기에다 네 차례에 걸쳐 조금씩 공개되는 14년 전 사건의 진상이 과연 현재 아사미에게 벌어진 사태와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 건지도 긴장감을 높이는 중요한 요소인데, 막판에 밝혀지는 이 연결은 뜻밖의 안타까움과 분노를 자아내면서 아사미의 삶을 엉망으로 일그러뜨린 가혹한 운명을 원망하게 만들기도 합니다.

 

복수란 누군가를 죽이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에게) 끝까지 잊히지 않는 존재가 되는 것이라는 출판사 소개글대로 내 시체를 찾아주세요는 제목이 풍기는 뉘앙스와는 달리 거대하고도 집요한 복수를 그린 스릴러이자 두 개의 사건(작가 아사미의 생사 및 여고생 아사미가 겪은 집단자살사건)의 진상을 추적하는 미스터리입니다. 장르물로서 완성도 높은 설계와 정교한 구성도 돋보였지만 작가는 등장인물들의 요동치는 심리와 감정 묘사에도 공을 들였고, 덕분에 단순히 진실 찾기를 넘어 묵직한 여운까지 맛보게 해줬습니다.

 

일본에서는 2024년 드라마로 제작됐을 만큼 화제를 모았다고 하는데, 원작을 워낙 재미있게 읽어서 그만큼의 감흥을 드라마에서 맛볼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한국에 처음 소개된 호시즈키 와타루의 다음 행보가 무척 궁금해지는데, 이 작품이 호응을 얻어 조만간 한국 독자들이 그의 다른 작품들도 읽을 수 있게 되기를 기대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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