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숨을 팝니다
미시마 유키오 지음, 최혜수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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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에서 제공받은 도서입니다.


광고회사 카피라이터인 하니오는 어느 날 갑자기 삶에 염증을 느끼고 모든 것이 무의미해지자 자살을 시도하지만 병원에서 의식을 되찾습니다. 이후 그는 자살이 아닌 방법으로 죽음에 이르기 위해 황당한 신문광고를 게재합니다. 바로 자신의 목숨을 팔겠다는 것입니다. 하니오를 찾아온 고객들은 소년부터 노인에 이르기까지 다양했고, 그들의 의뢰는 어떤 식으로든 하니오가 죽어야만 완수할 수 있는 기괴한 것들이었습니다. 하니오는 조금도 동요하지 않고 그 의뢰들을 수행하지만 엉뚱하게도 그는 매번 죽음의 문턱에서 살아나곤 합니다. 그러던 어느 날 뜻밖의 인물을 만난 뒤 예기치 못한 사건에 휩쓸리면서 목숨을 판다는 것은 무책임하면서도 멋진 방법이었다.”라던 하니오의 신념은 뿌리부터 뒤흔들리기 시작합니다.

 


노벨문학상 후보에 여러 차례 오른 데다 대표작 금각사를 비롯하여 한국에 소개된 소설과 에세이만 20여 편에 달하는 미시마 유키오지만 작품을 통해 만난 건 목숨을 팝니다가 처음입니다. 일본의 탐미주의 소설에 관심이 많긴 했지만 천황제를 주장하다 할복자살한 그의 극우적 사상과 태도가 아무래도 큰 걸림돌이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자살에 실패한 주인공이 목숨을 판다는 광고를 내면서 벌어지는 기묘한 소동을 유쾌하게 그려낸 엔터테인먼트 소설이라는 출판사 소개글에 눈길이 끌렸고, 솔직히 반신반의하면서도 일단 한 번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표면적으로는 출판사 소개글대로 목숨을 팔겠다고 선언한 주인공이 겪는 웃지 못 할 소동극이 맞긴 합니다. 범죄조직 보스의 첩이 된 수십 년 연하 아내를 유혹한 뒤 둘이 함께 보스에게 살해당하라는 노인, 독극물의 생체실험 대상이 되어 죽어달라고 부탁하는 여자, 엄마에게 행복을 되찾게 해준 뒤 죽어달라는 소년 등 하니오를 찾아온 고객들의 면면이나 의뢰 내용도 기괴하지만, 하니오가 그 미션을 수행하는 과정이라든가 정작 본인은 죽음의 문턱에서 매번 되살아나곤 하는 장면들은 말 그대로 블랙 코미디 그 자체이기 때문입니다. “‘내 인생은 이제 끝나간다.’라고 생각하자 가슴이 박하처럼 후련했다.”라고 기뻐하던 그가 매번 죽음에 외면당하는 상황들은 웃을 수도, 안타까워 할 수도 없는 묘한 분위기를 자아내곤 합니다.

 

하지만 미시마 유키오가 하고 싶었던 진짜 이야기는 중반부쯤 하니오가 레이코라는 통제 불능의 부잣집 딸을 만나면서 시작됩니다. 레이코와의 동거 중 자신이 죽음을 갈망한 진짜 이유를 깨달은 하니오는 혼란에 빠지는데, 거기다가 정체불명의 인물들에게 쫓기는 신세까지 되자 지금껏 한 번도 겪어본 적 없는 불안과 공포에 빠지고 맙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미시마 유키오는 이 작품이 출간된 1968, 그러니까 패전의 여파와 자본주의의 범람과 젊은 세대들의 자유분방하고 극단적인 가치관 등 여러 면에서 혼란에 빠진 일본 사회에 대한 비판적인 시각을 들이댑니다. “사회가 욕망하고 강요하는 통념에서 별다른 의미를 찾지 못하는 사람이 의미 있는 삶을 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라는 옮긴이의 말속 한 줄은 이 작품을 통해 미시마 유키오가 하고 싶었던 이야기를 잘 함축하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목숨을 팝니다는 단지 스토리만으로는 그 진의와 진가를 알아보기 힘든 작품입니다. 출간 당시 일본의 시대상에 대한 이해가 없다면 목숨을 팔아서라도 죽음을 손에 넣으려 했던 한 허무주의자의 해프닝으로만 읽힐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 점에서 본편을 다 읽은 뒤 이 작품의 배경에 대해 상세히 소개한 옮긴이의 말’(소부제 : 1968년 일본의 가족행복’)을 정독할 것을 권하고 싶습니다. 그런 뒤 다시 한 번 본편을 읽는다면 하니오의 생각과 행동이 전혀 다른 느낌으로 다가올 수 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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