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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 손님들 ㅣ 마티니클럽 2
테스 게리첸 지음, 박지민 옮김 / 미래지향 / 2025년 7월
평점 :
메이든 호수의 고급 여름별장에서 15세 소녀 조이가 실종됩니다. 퓨리티의 경찰서장 대행 조 티보듀는 MIT교수 출신의 농부 루터를 유력한 용의자로 지목하지만, 그의 이웃인 매기 버드를 비롯한 마티니 클럽 멤버들은 나름의 조사를 통해 루터의 무죄를 입증합니다. 이어 매기는 조 티보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클럽 멤버들과 함께 진범 찾기에 나서지만, 일관성 없는 장소들에서 단서가 발견되는가 하면 호수에서 발견된 의문의 유골 때문에 조사가 혼선을 일으키자 난감한 상황에 처하고 맙니다. 그러던 중 50여년 전 퓨리티에서 벌어졌던 대량 살인사건이 소녀 실종사건과 연관 있다고 확신한 매기는 누구도 예상치 못한 인물을 유력한 용의자로 지목합니다.

“젊은 시절, 정글을 헤쳐 가던 때가 떠올랐다. 매기는 예전의 그 아드레날린이 솟구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이 낡은 몸은 아직 그 유령을 포기할 준비가 되어있지 않았다.” (p267)
마티니 클럽은 메인주(州)의 작은 휴양도시 퓨리티에 모여 사는 다섯 명의 은퇴한 CIA 요원들이 꾸린 독서모임입니다. 대도시를 떠나 철저히 신분을 감춘 채 은둔생활을 즐기면서도 그들은 60~70대가 된 지금도 평생 갈고 닦은 기술을 잊지 못합니다. 또한 스파이로 암약하면서 수도 없이 생사의 경계를 넘나들었던 과거를 그리운 추억으로 소중히 품은 채 살아가는 중입니다. 몸과 마음에 깊이 새겨진 ‘아드레날린’과 ‘유령’을 포기할 마음이 없는 클럽 멤버들이 퓨리티에서 벌어지는 크고 작은 사건에 개입하는 건 너무나도 당연한 일인 것입니다.
시리즈 첫 편인 ‘스파이 코스트’에서 클럽 멤버들은 오랜만에 스파이로서의 재능과 기술을 선보이며 조금도 녹슬지 않은 활약을 펼쳤는데, 두 번째 작품인 ‘여름 손님들’에선 한 소녀의 실종사건에 말려든 뒤 복잡한 미스터리를 풀어가는 명탐정으로서의 기량을 발휘합니다. 처음엔 이웃에 사는 농부 루터의 무고함을 입증하는 게 주된 목표였지만, 매기와 클럽 멤버들은 자신들이 찾아낸 작은 단서와 갖가지 정보를 통해 진범을 찾아내기로 결심합니다.
마티니 클럽의 가장 큰 ‘적’은 퓨리티의 경찰서장 대행 조 티보듀입니다. 30대 초반인 그녀가 볼 때 매기와 클럽 멤버들은 그저 자극적인 사건에 과도한 관심을 기울이는 평범한 노인들일 뿐입니다. 전작인 ‘스파이 코스트’에서 멤버들의 범상치 않은 능력을 직접 목격하곤 그들의 정체에 의문을 품긴 했어도 여전히 ‘오지랖과 호기심에 사로잡힌 노인들’이란 편견은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그런 탓에 소녀 실종사건 수사과정에서도 사사건건 부딪히는데, 재미있는 건 조 티보듀가 클럽 멤버들의 도움과 조언에 나름 신경을 쓰고 귀 기울이기도 한다는 점입니다. 사실상 마티니 클럽의 객원멤버나 다름없는 캐릭터인 셈인데, 덕분에 그녀와 클럽 멤버들의 케미는 사건 못잖게 독자의 눈길을 끕니다.
“이 사건은 여러 개의 움직이는 부품들로 이뤄진 하나의 큰 기계였어요.” (p417)
‘여름 손님들’은 소녀 실종사건으로 시작되지만 50여년 전의 대량 살인사건 및 미제 실종사건 등 여러 사건들이 뒤엉키는데다 고급별장을 소유한 코노보 일가 내부의 갈등은 물론 부자 외지인들과 퓨리티의 가난한 토착민과의 충돌까지 섞여있어서 400여 페이지의 분량에도 불구하고 거의 벽돌책에 버금가는 서사를 품고 있습니다. 이 모든 재료들은 아무런 연관성도 없는 별개의 것처럼 보였지만 매기와 클럽 멤버들은 그 안에서 거대한 하나의 줄기를 찾아내고 끝내 누구도 짐작하지 못한 사건의 진상을 밝혀냅니다. 다 읽은 뒤에 찬찬히 복기를 해보면 ‘거대한 하나의 줄기’를 정교하게 엮어낸 테스 게리첸의 설계와 필력은 물론 ‘아드레날린’과 ‘유령’을 포기하지 않은 채 전력을 다해 진상을 밝혀낸 매기와 클럽 멤버들의 열의에 감탄할 수밖에 없게 됩니다.
올해로 만 72세가 된 테스 게리첸은 “이 시리즈는 나이가 들어가는 것에 대한 제 감정을 반영했기 때문에 개인적인 이야기를 쓰는 것 같았다.”라는 소회를 밝힌 바 있는데, 그래선지 ‘마티니 클럽 시리즈’가 아주 오랫동안 이어지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이 들기도 했습니다. 매기와 클럽 멤버들의 평온한 일상이 깨지는 건 안타깝지만 그들의 ‘아드레날린’과 ‘유령’이 다시 한 번 활약하는 모습을 기대하게 되는 건 팬으로서 당연한 바람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