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흉가 - 개정판 ㅣ 스토리콜렉터 40
미쓰다 신조 지음, 현정수 옮김 / 북로드 / 2025년 4월
평점 :
아버지의 전근으로 도쿄에서 나라(奈良)의 나가하시 마을로 이사한 초등학교 4학년 쇼타는 산중턱에 자리한 2층 주택에서 불길한 느낌을 받습니다. 집 뒤편의 웅크린 뱀 모양을 한 도도산(山)과 그 정상부의 어두운 숲길은 보는 것만으로도 공포를 자아냈고, 다른 가족들 눈에는 안 보이는 기이한 형체들이 쇼타 앞에 수시로 나타났기 때문입니다. 더구나 여동생 모모미가 요괴임에 분명한 존재들을 봤다고 말하자 쇼타의 두려움은 극에 달합니다. 최근 3년 동안 여러 가족이 이 주택을 거쳐 간 사실을 알게 된 쇼타는 분명 그들에게 일어난 어떤 사건이 괴현상의 원인이라 여기곤 유일하게 사귄 친구 코헤이와 함께 나가하시 마을에 대해 조사합니다.

일본 기준으로 미쓰다 신조의 ‘집 시리즈’는 ‘화가’(禍家,2007) - ‘흉가’(凶宅,2008) - ‘마가’(魔邸,2017) 순으로 출간됐는데, 등장인물이나 스토리에 연관성은 전혀 없지만 ‘어린 주인공이 낯선 곳에 살게 된 뒤 괴이 현상을 겪는 이야기’라는 공통점을 지니고 있습니다. 부모가 교통사고로 사망한 뒤 할머니와 함께 도교 외곽에 살게 된 코타로가 괴물체를 비롯한 기괴한 일들을 겪는 이야기(‘화가’), 삼촌과 함께 숲속 별장에 살게 된 유마가 숲과 별장에서 불길한 기운을 느끼다가 끔찍한 일에 휘말리는 이야기(‘마가’)에 이어 ‘흉가’ 역시 이제 10살이 된 쇼타가 도도산(山) 중턱의 2층 주택에서 도저히 현실의 일이라 믿을 수 없는 괴이 현상을 목격하는 이야기를 다루고 있기 때문입니다.
세 작품의 또 하나의 공통점은 집 근처의 산과 숲입니다. 사람을 홀리는 듯한 음습한 기운을 발산하는가 하면 카미카쿠시(사람이 갑자기 행방불명되는 일)를 일으켰다는 무시무시한 소문의 근원지이기도 한 산과 숲은 호러의 주 무대이자 마치 살아있는 캐릭터처럼 이야기의 한 축을 담당합니다. 특히 ‘흉가’에 등장하는 도도산은 미쓰다 신조의 ‘작가 시리즈’의 대미를 장식한 ‘사관장’과 ‘백사당’에도 등장했던 곳으로, 뱀의 기운이 진하게 서려있는 마의 공간이라고 할 수 있는데, 그래선지 ‘사관장’과 ‘백사당’을 읽은 독자라면 ‘흉가’의 공포를 더욱 농밀하게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주인공 쇼타의 눈에만 보이는 시커먼 사람의 형체, 여동생 모모미를 찾아오곤 하는 복수의 요괴들, 쇼타의 2층 주택을 제외하곤 제각각의 이유로 공사가 중단된 채 폐허로 남은 주택지, 도도산이 내뿜는 사악한 냉기와 그 일대에 거주하는 수상하고 기괴한 인물들, 그리고 쇼타 가족보다 앞서 2층 주택에 살다가 무슨 이유에선지 금세 떠나고 말았던 한 가족의 비밀 등 ‘흉가’는 다양한 호러와 미스터리 코드를 품고 있어서 같은 시리즈인 ‘화가’와 ‘마가’에 비해 훨씬 더 흥미롭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공간과 캐릭터 등 비주얼 요소도 뛰어나서 영상으로 만든다면 무척 매력적인 호러물이 되지 않았을까 싶은데, 특히 막판에 ‘사람의 형체를 닮은 그것’과 ‘요괴’의 정체가 밝혀지는 장면은 어느 정도 예상됐음에도 불구하고 소름 돋는 반전의 맛과 함께 영상으로 보고 싶다는 생각이 저절로 들게 만들었습니다.
‘화가’의 서평에도 썼지만 ‘집 시리즈’는 미쓰다 신조의 다른 호러물에 비하면 단편영화 혹은 단막극 정도의 사이즈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물론 호러의 농도나 깊이는 여전하지만 주인공이 모두 어린 소년들이다 보니 서사 자체가 어느 정도는 제한됐다는 느낌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요즘처럼 무덥고 습한 날씨가 이어질 때 부담 없이 읽을 수 있는 호러물 한 편을 고른다면 미쓰다 신조의 작품이 제격일 것 같은데, ‘집 시리즈’에 관심 있는 독자라면 ‘흉가’나 ‘화가’를 선택해도 괜찮겠다는 생각입니다. (개인적인 만족도로 따지면 ‘흉가’ > ‘화가’ > ‘마가’ 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