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번째 카드 - 판타스틱 픽션 블랙 BLACK 2-6 링컨 라임 시리즈 6
제프리 디버 지음, 유소영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10년 4월
평점 :
품절


뉴욕 할렘 흑인박물관에서 자신의 조상에 관한 오래된 자료를 조사하던 16세 소녀 제네바가 한 남자의 습격을 받습니다. 당초 강간범으로 추정됐지만 남자는 제네바가 보던 오래된 자료를 탈취하여 종적을 감춘 것은 물론 그 뒤로도 제네바를 살해하려는 시도를 멈추지 않습니다. 전신마비 법과학자 링컨 라임과 이제 갓 형사로 승진한 아멜리아 색스는 범인이 남긴 몇 안 되는 단서를 통해 범행동기를 추리하지만 좀처럼 결과를 얻어내지 못합니다. 그러던 중 범인의 안전가옥을 발견하고 정체까지 알아낸 라임과 색스는 위험천만한 위기를 넘기며 사건을 해결한 듯 보였지만, 그 후로도 제네바를 향한 살해 시도가 계속 이어지자 이 끔찍한 범행의 최종 배후가 누구인지, 진짜 목적은 무엇인지 철저히 파헤치기로 결심합니다.

 


링컨 라임 시리즈의 여섯 번째 작품인 ‘12번째 카드는 전작들과는 사뭇 결이 다른 소재와 서사를 품고 있습니다. 법과학자 라임과 열혈경찰 색스가 잔혹하고 무자비한 연쇄살인마를 추적하는 액션 스릴러가 지금까지의 공통된 경향이었다면, ‘12번째 카드는 단 하나의 목적, 16세 소녀 제네바를 살해하려는 냉혹한 청부살인업자를 쫓는, 비교적 단선적인 구도를 지니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제프리 디버는 사건 못잖게 풍성한 이야기와 다양한 서사를 담아냄으로써 오히려 전작들보다 훨씬 더 볼륨감이 느껴지는 매력적인 작품을 탄생시켰습니다. 지나치게 심플해 보이던 사건 역시 시간이 흐를수록 반전을 거듭하며 독자를 점점 더 미궁 속으로 몰아넣습니다.

 

‘12번째 카드에서 가장 인상적인 대목은 무려 140여 년 전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를 배경으로 한 흑인할렘에 관한 서사입니다. 두 서사 모두 청부살인업자의 표적인 16세 소녀 제네바가 이끄는데, 제네바는 140년 전, 해방 노예로서 당대 거물 정치인들과 함께 흑인 인권운동을 벌이다가 갑작스레 절도범으로 몰려 전 재산을 몰수당하고 유죄판결을 받았던 까마득한 조상 찰스 싱글턴의 진실을 알고 싶어 오래된 자료를 검색하는 등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강한 자부심을 갖고 있으면서도, 동시에 범죄와 마약과 혼란에 찌든 흑인들의 상징할렘을 탈출하기 위해 오로지 공부에만 매진하는 반항적인 모범생이기도 합니다. 말하자면 조상에 대한 자부심과 인종적 열패감을 함께 지닌 미묘한 캐릭터라고 할까요? 라임과 색스 역시 청부살인업자의 표적인 제네바를 보호하면서도 어떻게든 저주와도 같은 숙명을 벗어던지고 자신만의 세상을 구축하려는 그녀를 지켜보며 여러 가지 복잡한 감정을 겪게 됩니다.

 

‘16세 소녀 제네바 죽이기엔 주범인 청부살인업자 외에도 공범, 무기제공범, 사주범 등 꽤나 호화롭고(?) 요란한 범죄자들이 동원됩니다. 곤봉부터 독가스에 이르기까지 살해도구도 다채롭게 등장하는데, 너무 쉬운 표적에 비해 악당들을 과대포장한 게 아닌가 싶기도 했지만, 제프리 디버는 특유의 반전과 미스디렉션을 통해 단순해 보이던 사건을 흥미진진하게 발전시킵니다. 특히 마지막 페이지를 덮기 전엔 절대 끝나도 끝난 게 아니다!”라는, 제프리 디버의 트레이드마크는 이번에도 여지없이 독자를 희롱하곤 하는데, 양파껍질마냥 벗길 때마다 새롭게 드러나는 진실은 지금까지의 그 어떤 연속 반전보다도 재미와 흥분을 선사해줬습니다.

 

제네바의 캐릭터가 워낙 눈길을 끌어서인지 상대적으로 라임과 색스의 활약은 미미해 보인 게 사실입니다. 물론 라임은 미세증거를 통해 결정적인 단서를 확보했고, 색스는 몸을 아끼지 않는 열혈형사의 면모를 유감없이 보여줬지만 전작들에 비하면 다소 아쉽게 읽힐 수밖에 없던 게 사실입니다. 하지만 개인적으론 앞선 다섯 편의 작품에서 두 사람의 수사 방식이 살짝 반복된다는 인상과 함께 약간의 피로감마저 느꼈던 터라 오히려 ‘12번째 카드에서 보여준 라임과 색스의 인간적인 모습이 더 신선하게 읽혔습니다. 특히 라임은 평소 그답지 않게 범행동기에 꽤나 신경을 쓰는 것은 물론 제네바를 통해 크고 작은 깨달음과 성찰을 얻기도 합니다. 말하자면 시리즈 여섯 편째에 이르러 작은 변곡점이 마련된 듯한 느낌이라고 할까요?

 

서평이 길어져서 제대로 언급하지 못했지만, 지금껏 본 적 없는 청부살인업자의 독특한 캐릭터라든가 라임의 오랜 동료인 론 셀리토를 엄습한 위기, 또 제네바가 새롭게 알게 되는 할렘의 역사와 존재 의미 등 독자의 관심을 끌 만한 설정이 가득한 작품입니다. 저처럼 시리즈에 피로감을 느낀 독자라도 색다른 재미를 만끽할 수 있는 작품이니 나름 기대해도 괜찮을 거란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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