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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이트 밀
요네자와 호노부 지음, 최고은 옮김 / 엘릭시르 / 2022년 9월
평점 :
대학생 유키 리쿠히코는 평균 시급의 100배에 달하는 엄청난 고액을 제시한 수상한 아르바이트 광고에 눈길이 끌립니다. 할 일이라곤 7일에 걸쳐 진행되는 ‘인문과학적 실험’의 피험자가 되어 24시간 내내 관찰당하는 게 전부. 의심스러우면서도 고액의 시급에 끌린 유키는 주최측의 안내에 따라 외진 숲속에 자리한 암귀관이라는 기괴한 지하 구조물에 발을 들입니다. 유키를 포함한 12명의 피험자는 주최측으로부터 각각 다른 흉기와 그에 관한 메모를 전달받곤 이 실험이 ‘살인’과 ‘인간행동’에 관한 것임을 알게 됩니다. 하지만 두려움보다는 고액 시급의 유혹이 더 컸고, 12명 모두 살인 같은 건 일어날 리 없다는 낙관론을 품습니다. 하지만 뜻밖의 첫 살인이 벌어지고 그때부터 암귀관은 잔혹한 데스 게임의 무대로 변합니다.

일본에서 2007년에 출간된 ‘인사이트 밀’은 2008년 한국에 처음 소개됐고(학산문화사), 이어 2022년 엘릭시르에서 개정판을 낸 요네자와 호노부의 본격 미스터리입니다. 클로즈드 서클과 데스 게임에 본격 미스터리까지 가미된 버라이어티한 서사에다 황금기 고전 미스터리에 대한 다양한 오마주까지 곁들여져서 비슷한 구조의 작품들과는 조금은 다른 매력을 품고 있습니다. 특히 어마어마한 고액 시급은 기본이고 살인자, 피살자, 탐정, 조수 등 암귀관에서 벌어지는 살인사건의 ‘주인공’이 될 경우 몇 배의 보너스를 받을 수 있다는 설정 때문에 12명의 피험자들은 단순히 살아남는 것 이상의 목표를 품게 되는데, 이 잔혹하면서도 자극적인 설정 때문에 단순히 ‘누가 범인인가?’를 밝히는 것보다 더 많은 궁금증과 기대감을 품게 만듭니다.
터무니없는 고액 시급에 끌려 위험천만한 아르바이트에 도전한 만큼 등장인물들의 캐릭터는 조금 별나고 독특하게 설정됐습니다. 리더를 자처하며 암귀관의 공포를 즐기는 자, 그런 리더의 곁에 빌붙어 목숨을 부지하려는 자, 위험한 분위기를 발산하며 언제라도 살인을 저지를 것 같은 자, 무슨 일이 벌어져도 상관없다는 듯 태연자약한 자 등 극과 극의 캐릭터들이 벌이는 갈등과 충돌은 살인사건 못잖게 흥미로운 요소입니다. 특히 각기 다른 방식으로 살해된 시신들이 연이어 발견되는 가운데 범인 자체도 오리무중이지만 범행에 이용된 살해 도구가 ‘누구의 것’인지, 즉 주최측으로부터 그 도구를 제공받은 자가 누구인지 알 수 없어 피험자들의 혼란과 불신은 더욱 가중됩니다.
“이 다음부터는 부조리하고 비윤리적인 일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그래도 상관없으신 분만, 계속 앞으로 나아가십시오. 그렇지 않으신 분은 이곳에서 떠나시기를 권합니다. 하지만 그 위험에 걸맞은 대가는 준비되어 있습니다.” (p47~48)
재미있는 건 살해당하고 싶지 않다는 두려움도, 범인을 밝혀내고 싶다는 정의감도 하나같이 ‘고액의 시급’과 ‘몇 배의 보너스’라는 물질적인 동기에 의해 움직인다는 점입니다. 그리고 앞서 언급한대로 이 물질적인 동기는 ‘인사이트 밀’을 여느 클로즈드 서클 미스터리나 데스 게임 스릴러와도 차별화시키는 가장 중요한 요소로 작동합니다. ‘부조리하고 비윤리적인 일’을 감수하고라도 ‘위험에 걸맞은 대가’를 손에 넣으려는 욕망이 암귀관의 공포를 더욱 생생하고 잔인하게 만든다고 할까요?
이 작품이 한국에 처음 출간된 2008년에 읽었다면 새로운 스타일의 ‘클로즈드 서클 데스 게임 미스터리’에 좀더 환호했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그 사이에 유사한 서사의 작품을 많이 접해온 터라 새로움과 신선함을 느낄 여지가 많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요네자와 호노부가 그려낸 차별화된 이야기는 충분히 재미와 긴장감을 만끽할 수 있었습니다. 유일한 아쉬움이라면 소재와 스토리에 비해 다소 과해 보인 분량 정도였는데, 속도감도 꽤 빠르고 인물들의 캐릭터도 매력적이라 지루함을 느낄 틈은 없었습니다.
마지막 에필로그에 후속편을 암시하는 메시지를 실어놓고도 요네자와 호노부가 지금까지 ‘인사이트 밀 2편’을 출간하지 않은 건 이 작품을 읽은 모든 독자라면 누구나 서운하게 느끼는 바일 텐데, 어쩌면 출간 20주년을 기념하여 후속편이 나올 지도 모르니 나름 기대해봐도 괜찮겠다는 생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