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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기도
야쿠마루 가쿠 지음, 남소현 옮김 / 북플라자 / 2025년 6월
평점 :
목사인 호사카 소스케는 치바 교도소에서 교정위원으로 자원봉사하며 젊은 날 저질렀던 돌이킬 수 없는 잘못을 속죄하며 살아가는 중입니다. 하지만 결혼을 코앞에 둔 딸 유아가 연쇄살인범에게 무참히 살해당하자 그의 삶과 신념은 완전히 붕괴되고 맙니다. 더구나 범인 이시하라 료헤이가 잘못을 뉘우치기는커녕 법정에서 비아냥과 희롱으로 일관하며 사형당해도 상관없다는 식으로 행동하자 호사카는 어떻게든 그에게 복수하고 싶다는 일념에 사로잡힙니다. 결국 호사카는 이시하라가 수감된 도쿄 구치소 교정위원으로 자리를 옮긴 뒤 아무도 상상할 수 없는 방법으로 딸 유아의 복수를 감행하기로 결심합니다.

일본에서 2023년에 출간된 ‘마지막 기도’는 사회파 미스터리의 거장 야쿠마루 가쿠가 사형제도를 정면으로 다룬 작품으로, 사형수, 교정위원, 교도관, 피해자 유족 등 사형제도에 직접적으로 연루된 다양한 인물들의 관점과 고뇌와 트라우마를 다큐멘터리 이상의 리얼리티를 통해 디테일하게 그리고 있습니다.
‘딸을 죽인 사형수와 그에게 복수하려는 아버지이자 교정위원 목사’란 설정은 극적이긴 해도 어떤 결말이 그려질지 어렵지 않게 예상할 수 있는 다소 밋밋한 구도로 보이는데, 야쿠마루 가쿠는 그의 전매특허인 ‘막판에 불꽃처럼 터지는 반전’ 대신 사형제도에 대한 정공법을 택함으로써 미스터리의 짜릿함과는 전혀 결이 다른 감동과 울림을 선사합니다.
일그러진 내면을 폭발시키기 위해 무고한 인명을 잔혹하게 살해한 사형수, 복수심에 사로잡힌 아버지지만 동시에 범죄자의 갱생과 구원을 소명으로 삼은 교정위원이란 딜레마에 빠진 남자, 사형집행에 참여한 뒤 “사람을 죽였다.”라는 자책감과 트라우마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교도관, 그리고 오로지 복수만이 피해자의 마음을 달랠 수 있다고 믿으며 신속한 사형집행을 요구하는 유족 등 극단적인 상황에 처한 여러 인물들이 보통 사람은 짐작조차 하기 어려운 사형제도의 이면을 적나라하게 표출합니다.
끔찍한 범죄 못잖게 사형제도 자체가 거기에 연루된 사람들의 마음을 얼마나 크고 거대한 격정과 분노와 고뇌에 빠뜨리는가? 진정한 용서와 구원이라는 것은 한없이 어렵고 지난한 일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이며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야쿠마루 가쿠는 이 어려운 질문들에 대한 나름의 대답을 사형수 이시하라와 교정위원이자 피해자 아버지인 호사카 사이의 만남과 충돌과 변화를 통해 독자에게 건넵니다. 물론 그 ‘대답’은 정답이라고 할 수도 없고, 독자들에게 극과 극의 반응을 불러일으키고도 남을 만큼 논쟁적인 게 사실입니다. 하지만 사형찬성파든 사형반대파든 ‘마지막 기도’를 읽은 독자라면 한번쯤 사형제도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 볼 시간을 갖게 될 텐데, 그것만으로도 이 작품의 의미는 충분하다는 생각입니다.
장르상 미스터리로 분류된 작품이지만 개인적으론 사회고발물이나 사형제도에 관한 다큐멘터리라 생각하고 읽기를 권하고 싶습니다. 그래야 스스로의 속죄와 딸의 복수와 사형수의 구원이라는, 이루 헤아릴 수 없는 복잡한 딜레마에 빠진 호사카의 메시지를 제대로 읽어낼 수 있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