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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실 황금시대의 살인 - 눈의 저택과 여섯 개의 트릭
가모사키 단로 지음, 김예진 옮김 / 리드비 / 2025년 5월
평점 :
미스터리 마니아인 17세 고교생 구즈시로 가스미는 과거 전설적인 미스터리 작가의 저택이었지만 지금은 호텔로 운영 중인 설백관을 찾습니다. 무엇보다 10년 전 미스터리 작가가 출판 관계자들을 상대로 냈지만 아무도 풀지 못한 채 미제로 남아있는 밀실트릭의 현장이 고스란히 보존돼있다는 게 구즈시로의 호기심을 자극한 것입니다. 그런데 구즈시로가 설백관에 도착한 직후 전화가 끊기고, 계곡 다리가 불타는가 하면, 갑작스런 눈이 호텔 주위에 쌓입니다. 그리고 다음날부터 연이어 밀실살인사건이 벌어지기 시작합니다. 자칭 명탐정이란 자가 수사에 나서고 구즈시로는 조수 역할을 맡지만 견고한 밀실트릭은 조금도 깨질 틈을 보이지 않습니다.

더 이상 새로운 밀실트릭이란 게 있을까, 싶지만 일본에선 신예와 베테랑을 불문하고 이 고전적이면서도 ‘잘해야 본전’에 가까운 어려운 소재에 끊임없이 도전하는 것 같습니다. 제20회 ‘〈이 미스터리가 대단하다!〉 대상’ 문고 그랑프리 수상작인 ‘밀실 황금시대의 살인’은 배경 설정, 등장인물의 캐릭터, 거듭된 반전 등 여러 면에서 기존의 익숙한 밀실트릭 미스터리와는 차별화된 신선하고 특이한 작품으로, 아직도 밀실트릭의 세계에는 새롭게 캐낼 영역이 무한히 남아있음을 제대로 실감하게 만들었습니다.
일단 발상부터 독특합니다. 3년 전 일본에서 벌어진 최초의 밀실살인사건에서 범인이 무죄를 선고받은 초유의 일이 발생했습니다. 재판부의 판결은 “풀 수 없는 밀실을 만들면 살인도 무죄가 되는 세상”을 선포한 셈입니다. 이후 일본에선 무죄를 노린 밀실살인이 급증했고, 경찰엔 ‘밀실과’가 신설됐으며 밀실전문탐정, 밀실감식자 등 새로운 직업은 물론 밀실대행업자, 즉 밀실트릭을 제공하거나 밀실살인을 청부받는 신종 범죄자까지 출현했습니다. 그야말로 ‘밀실의 황금시대’가 열린 것입니다.
이런 배경 하에 ‘눈의 저택과 여섯 개의 트릭’이라는 부제대로 마니아들로부터 ‘밀실의 성지’로 불리는 설백관에서 여러 건의 밀실살인이 벌어지고 주인공 구즈시로를 비롯한 ‘탐정들’이 진상 파악에 도전하는 이야기가 실려 있습니다.
구즈시로가 화자이자 주인공을 맡고 있지만 실질적인 명탐정 역할은 17세 여고생 미쓰무라 시쓰리의 몫입니다. 10년 동안 미제로 남아있던 설백관의 밀실트릭을 깨뜨리는 것은 물론 연쇄 밀실살인까지 모조리 해결하는 미쓰무라는 “(현장의) 힌트들을 조합하면 자연스럽게 어떤 트릭이 사용되었는지가 떠오르는 구조죠.”라는 태연한 말과 함께 불가해한 여러 밀실의 진상을 손쉽게 밝혀냅니다. 반면 구즈시로는 미쓰무라를 보좌하는 왓슨 역할이자 밀실의 함정에서 허우적대는 독자를 대변하는 인물이라고 할 수 있는데, 만담 커플 같은 17세 탐정 듀오의 캐릭터는 이 작품을 기존의 무겁고 복잡한 밀실 미스터리와 차별화시켜주는 가장 큰 포인트라고 할 수 있습니다.
밀실트릭, 즉 하우더닛이 중심인 미스터리지만 ‘밀실 황금시대의 살인’은 후더닛과 와이더닛이 적절하게 믹스돼있어서 마지막까지 독자로 하여금 여러 궁금증을 동시에 품게 만듭니다. 불가해한 밀실트릭을 해결하는 과정도 흥미롭지만 뜻밖의 범인과 특이한 범행동기가 밝혀지는 순간의 재미 역시 만만치 않습니다. 또한 무죄를 선고받아 밀실의 황금시대를 초래했던 3년 전 사건이 두 주인공의 최종 미션으로 설정돼서 과연 어떤 식으로 대미가 장식될지 마지막까지 긴장과 기대 속에 페이지를 넘길 수 있습니다.
다만, 일부 트릭에서 “과연 저런 발상이 가능할까?” 싶을 정도로 다소 작위적이고 결과론적인 장치들이 등장한 건 아쉬웠습니다. 어쩌면 밀실트릭의 ‘태생적인 한계’, 즉 명백히 물리적이고 합리적인 장치들로 밀실을 완성하려다 보니 비현실적인 느낌마저 드는 무리수를 둘 수밖에 없는 게 사실인데, 이 작품의 경우 나름 기발한 발상과 친절한 설명으로 독자를 설득하곤 있지만 태생적인 한계가지 모두 극복하진 못했다는 생각입니다.
이 작품 이후 일본에선 ‘밀실 광란시대의 살인’, ‘밀실 편애시대의 살인’ 등 두 편의 후속작이 나왔습니다. 구즈시로와 미쓰무라가 계속 탐정 역할을 맡는지는 알 수 없지만, 밀실트릭을 좋아하는 독자라면 후속작들의 출간을 고대하게 될 것 같습니다. 더는 새로운 영역이 없을 것만 같은 밀실트릭의 세계에서 작가가 또 어떤 기발한 트릭을 발굴해서 독자에게 도전장을 내밀지 무척 기대가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