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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만 보이는 살인
테라시마 요우 지음, 권하영 옮김 / 북플라자 / 2025년 5월
평점 :
오자키 사에코는 토사카 경찰서 형사과 소속이던 3년 전, 오토바이 사고로 약혼자를 잃고 자신도 큰 부상과 함께 오른쪽 시력을 잃으며 형사과에서 내쳐졌습니다. 그런데 사고 이후 3년 만에 처음으로 현장을 찾은 오자키는 충격적인 경험을 합니다. 실명된 오른쪽 눈을 통해 당시 사고의 전말이 생생하게 보였기 때문입니다. 불운한 사고가 아니라 명백한 살인임을 알게 된 오자키는 서장 코우키와 베테랑 형사 타쿠미에게 이 사실을 고백하고 자신이 목격한 범인의 정체를 폭로합니다. 처음엔 믿지 못하던 두 사람은 결국 오자키의 특별한 능력을 수긍하게 되는데, 서장 코우키는 사고를 재조사 하겠다면서도 의외의 조건을 내겁니다. 오자키가 곧 신설될 ‘미제사건 특별팀’에 들어와서 그 특별한 능력을 발휘해줄 것을 요구한 것입니다.

오자키 사에코에게 어느 날 갑자기 찾아든 특별한 능력엔 몇 가지 조건이 있습니다. 3년 전 시점의 상황만 볼 수 있다는 점, 뇌에 걸리는 부하 때문에 몇 시간 이상 지속할 수 없다는 점, 원하는 상황을 보려면 직접 그 장소에 가야 한다는 점 등이 그것입니다. 여러 가지 한계가 있긴 하지만 사이코메트리 못잖게 특별한 능력인 건 분명합니다.
사실 이런 능력자가 등장하는 판타지 장르를 별로 좋아하진 않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관심을 갖게 된 건 과연 그 특별한 능력이 살인사건을 다루는 경찰 미스터리와 어떻게 믹스됐을까, 라는 호기심 때문이었습니다.
오자키가 3년 전 사고의 진실을 알아낸 뒤 ‘미제사건 특별팀’에 들어갈 때만 해도 오른쪽 눈의 특별한 능력을 활용하여 사건을 해결하는 연작 단편일 거라고 짐작했는데, ‘나에게만 보이는 살인’은 영미권 스릴러에 등장할 법한 잔인무도한 사이코패스 연쇄살인범을 추적하는 장편 미스터리입니다. 특별한 능력자 오자키, 신임 경찰서장이지만 신참 때는 오자키와 함께 훈련받았던 금수저 출신 코우키, 그리고 불량배를 제압하다가 손을 다쳐 총도 쏘지 못하는 애물단지가 됐지만 여전히 베테랑의 품격을 발산하는 중년의 여형사 타쿠미로 이뤄진 ‘미제사건 특별팀’은 3년 전에 벌어진 일가족 살해사건을 수사하던 중 범인이 다른 여러 살인사건에도 연루된 점을 포착하곤 갖은 고난을 겪으며 진실 찾기에 나섭니다.
애초 호기심을 자극했던 ‘판타지 능력과 경찰 미스터리의 조합’은 기대 이상으로 흥미진진했고, 그 설계 역시 별 위화감을 느낄 수 없을 정도로 정교했습니다. 성별, 계급, 성격 모두 판이하게 다름에도 불구하고 의외의 케미를 뿜어낸 오자키-코우키-타쿠미 3인방의 캐릭터 플레이 역시 미스터리 못잖게 눈길을 끌었는데, 시리즈물의 주인공으로도 손색없어 보여서 이들이 이끄는 ‘미제사건 특별팀’의 활약을 그린 후속작에 대한 기대감도 품게 만들었습니다.
한 가지 유일하게 아쉬웠던 건 일가족 살해사건 수사를 시작한 이후 주인공들의 답답하고 지루한 탐문 과정입니다. 막상 ‘미제사건 특별팀’이 출범하긴 했지만 범인이 오리무중인 가운데 탐문은 아무 성과도 얻어내지 못하고 새로운 사건이 등장할 기미도 보이지 않은 탓에 마치 ‘기승승승전결’의 구도로 읽힐 정도로 고구마 같은 전개가 이어집니다. 뜻밖의 사건이 벌어지면서 이야기는 다시 속도감을 회복하고 단번에 클라이맥스로 치닫긴 하지만 중반부의 이 지루함을 견뎌내는 게 독자에겐 나름 고비가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입니다.
작가는 호기심을 자극하는 매력적인 떡밥을 남긴 채 이야기를 마무리합니다. 마지막 장까지 다 읽은 독자 입장에선 당연히 ‘미제사건 특별팀’의 두 번째 사건을 기대할 수밖에 없게 되는데, 이 작품이 일본에서 출간된 2023년 이후 아직 신간 소식은 없습니다. 1958년생 그래픽 디자이너로서 늦깎이 데뷔를 한 테라시마 요우가 언제쯤 ‘미제사건 특별팀’의 두 번째 이야기를 선보일지 사뭇 기대가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