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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키 지방의 어느 장소에 대하여
세스지 지음, 전선영 옮김 / 반타 / 2025년 4월
평점 :
중년의 오컬트 호러 작가 세스지는 새내기 편집자 오자와의 부탁을 받고 함께 괴담 특집기사를 준비합니다. 오자와는 수십 년에 걸쳐 의문의 자살과 실종이 벌어진 것은 물론 갖가지 으스스한 괴담을 양산한 긴키 지방의 어느 장소 ●●●●●에 주목하곤 그곳에 관한 과거의 자료들을 모아 세스지와 의견을 나눕니다. 하지만 직접 ●●●●●을 찾아가 조사를 하겠다던 오자와는 이내 행방불명이 되고 맙니다. 세스지는 인터넷에 “제 친구가 소식이 끊기고 말았습니다. 이 일과 관련해 정보를 구하고 있습니다”라는 메시지를 올리곤 ●●●●●와 관련된 각종 기사와 르포 등을 공개하며 오자와의 목격 정보를 간절하게 요청합니다.

호러물 마니아까지는 아니어도 나름 많이 알려진 작품들은 꽤 읽었다고 자부해왔지만, ‘긴키 지방의 어느 장소에 대하여’는 지금껏 읽은 어느 호러물과도 비슷한 구석이 전혀 없는 독특한 형식과 서사를 지닌 작품입니다. 작가 세스지와 편집자 오자와가 ●●●●● 일대에서 벌어진 숱한 사건과 괴담의 진상을 파헤치는 르포 스타일의 호러물이긴 하지만, 기승전결도 없고, 딱히 세스지와 오자와를 주인공으로 보기도 어려우며, 이야기의 대부분은 여러 매체에서 발췌한 ●●●●●에 관한 기사와 르포, 인터넷의 익명 글, 독자 편지, 인터뷰 녹취 등으로 채워져 있기 때문입니다. 독자 입장에선 소설을 읽는다기보다 숏폼 스타일의 괴담 다큐멘터리를 보는 듯한 착각에 빠질 수밖에 없는데, 이는 이 작품이 취한 모큐멘터리 기법, 즉 허구의 상황을 실제처럼 보이도록 만드는 페이크 다큐멘터리 형식에 기인합니다.
세스지가 인터넷에 올린 ●●●●● 관련 자료들은 짧게는 한 페이지, 길어도 20페이지를 넘지 않을 정도로 단편적이지만, 하나같이 동기를 알 수 없는 자살, 경위를 짐작할 수 없는 실종, 합리적인 설명이 불가능한 집단히스테리, 유령의 소행이라고밖에 볼 수 없는 으스스한 괴담들인데다 일상 속에서 벌어진 일들을 ‘팩트’처럼 설명하고 있어서 독자로 하여금 “이건 진짜다!”라는 현실적인 공포감에 사로잡히게 만듭니다.
유일하게 픽션처럼 읽히는 대목은 세스지와 오자와가 자료를 놓고 의견을 나누며 “왜 이 모든 일들이 ●●●●●에서 벌어졌는가?”를 추론하는 장면들인데, 실은 이 장면들마저도 ‘팩트 체크’ 같은 분위기를 발산해서 오히려 그들 앞에 놓인 자료들의 현실감을 더욱 부각시키곤 합니다.
페이지를 넘길수록 “도대체 이 이야기를 어떻게 마무리하려는 걸까?”라는 궁금증이 증폭됩니다. 미스터리 호러물처럼 합리적이고 논리적인 엔딩이 나올 가능성은 전혀 없어 보이고, 그렇다고 해서 사건과 괴담만 나열하다가 “설명되지 않는 것은 억지로 설명할 필요도, 설명할 수도 없다”라며 황당하게 이야기를 마무리할 것 같지도 않아 보였기 때문입니다.
이런 우려는 마지막 다섯 페이지에서 깨끗이 불식되는데, 작가는 독자의 뒤통수를 후려치며 그 어느 호러물에서도 맛볼 수 없었던 ‘전혀 다른 질감의 공포’를 선사하며 막을 내립니다. 처음엔 “이게 뭐지?” 싶었지만, 그 다섯 페이지를 다시 한 번 읽는 동안 발끝에서부터 아주 천천히 냉기가 올라오는 느낌에 사로잡히고 말았습니다. 동시에 “작가가 날 손바닥 위에 올려놓고 희롱과 저주를 번갈아 퍼부어왔구나...”라는 기기묘묘한 기분이 들기도 했는데, 그래선지 앞서 읽어온 사건과 괴담의 오싹함이 수십 배는 더 강렬하게 머릿속에서 되새김질되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이런 스타일의 호러물입니다”라고 비교할 만한 작품이 없어서 알맞은 추천의 말이 떠오르진 않지만, ‘밤에 읽기 무서운 호러물’을 찾는 독자라면 ‘긴키 지방의 어느 장소에 대하여’는 충분히 괜찮은 선택이 돼줄 것입니다. 마지막 다섯 페이지에 대해선 다소 의견이 갈릴 수도 있지만 개인적으론 호러물 마니아라 자부하는 독자라도 신선한 충격과 오싹함을 만끽할 수 있을 거란 생각입니다.
- 사족이지만 노파심에 한마디만 한다면 대형 스포일러와 마주칠 가능성이 있으니 가급적 다른 독자들의 서평은 책을 다 읽은 뒤에 찾아보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