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착의 사각 - 201호실의 여자 오리하라 이치 도착 시리즈 2
오리하라 이치 지음, 권일영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09년 11월
평점 :
절판


큰어머니의 단독주택 2층에 얹혀살며 번역 일을 하는 요시오는 오래전부터 관음증에 중독된 남자입니다. 하지만 자주 엿보곤 했던 맞은편 연립주택 201호의 여자가 살해당한 걸 목격한 뒤로 큰 충격에 빠져 알코올중독자가 되고 맙니다. 3개월의 치료를 마치고 귀가한 요시오는 201호에 새로운 여자가 입주한 걸 보곤 놀랍니다. 알코올중독 재발이 두려워 엿보기를 자제하려 했지만 201호의 여자는 마치 도발하듯 부주의하게 사생활을 노출합니다. 한편 알코올중독 병원에서 요시오에게 원한을 품었던 절도범 소네는 복수를 위해 그를 미행하던 중 201호의 여자를 알게 됩니다. 201호에 침입한 소네는 여자가 쓴 일기에 묘사된 요시오의 비열한 관음증을 파악하곤 그를 파멸시키기로 결심합니다.

 


도착의 론도에 이은 도착 3부작의 두 번째 작품입니다. ‘도착 3부작은 일본 미스터리 가운데 서술트릭의 대표적 작품으로 언급되곤 하는 시리즈인데, 그래선지 이번에도 작가에 대한 도전심이 충만한 상태로 첫 페이지를 펼쳤습니다.

도착의 론도를 읽은지도 너무 오래됐고, 당시 남겨놓은 서평에도 줄거리를 적어놓지 않아 기억이 정확하진 않지만 전체적인 인상부터 말하자면, ‘도착의 론도가 다소 어려우면서도 신선한 서술트릭의 맛을 느낄 수 있었다면 도착의 사각은 쉽고 선명한 이야기 전개 덕분에 빠른 속도로 페이지를 넘길 수 있었지만 서술트릭의 쾌감은 전작에 비해 평이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관음증 중독자이자 201호를 엿보곤 하는 번역가 요시오, 201호에 입주한 새내기 회사원으로 요시오의 불결한 시선에 치를 떨곤 하는 마유미, 요시오에게 복수하고자 마유미의 일기장을 훔쳐보는 소네 등 세 사람의 관점에서 이야기가 전개되는 가운데 마유미의 어머니인 미사코의 편지가 막간극처럼 등장하곤 합니다.

요시오와 마유미가 1인칭 시점의 일기를 통해 자신들이 겪는 불안과 초조와 분노를 직설적으로 드러낸다면, 소네는 요시오에 대한 복수심과 마유미의 일기장을 훔쳐보는 야릇한 흥분을 3인칭 시점으로 서술하면서 이야기 전체를 중계하는 듯한 설명역을 맡습니다.

세 사람 사이의 미묘한 긴장감을 극대화시키는 건 마유미의 불륜남입니다. 요시오는 마유미와 불륜남의 행위를 엿보며 격한 흥분과 분노를 동시에 느끼고, 소네는 요시오뿐 아니라 불륜남에 대한 증오심까지 품게 됩니다. 그리고 이 불온한 감정들은 어느 날 밤 충격적인 사건과 함께 대충돌을 벌이며 예상치 못한 진상을 드러냅니다.

 

사실 도착의 사각은 서술트릭을 사용하지 않았더라도 충분히 흥미로울 수 있는 작품입니다. 관음증, 살인, 시신유기, 불륜, 절도, 알코올중독 등 서스펜스 스릴러에 잘 어울리는 소재들이 가득한데다 하나같이 일그러진 캐릭터들이 벌이는 상식 밖의 행위들이 그로테스크하게 그려져서 오히려 서술트릭이 없었다면 독자의 눈길을 더 사로잡았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여러 번 들었기 때문입니다.

물론 오리하라 이치의 서술트릭이 독자를 완전히 배신한 건 아닙니다. 막판에 밝혀진 진상과 서술트릭의 실체는 비록 전작만큼은 아니어도 충분히 충격적이었고, 크든 작든 위화감을 느꼈던 대목들이 실은 전부 작가가 깔아놓은 복선임을 깨닫게 되는 짜릿한 쾌감도 만끽할 수 있습니다. 다만 기대치가 너무 높았던 탓에 충격과 쾌감의 강도가 상대적으로 아쉽게 느껴진 것만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도착 3부작의 마지막 작품은 도착의 귀결입니다. 출판사 소개글을 살짝 예습해보니 앞선 두 작품에 비해 분량도 방대한데다 두 개의 소설이 독립적으로 전개되는 특이한 구조를 지니고 있다고 합니다. 시리즈 첫 편인 도착의 론도이후 10여년 만에 2편을 읽은 탓에 감흥이 많이 떨어졌는데 이번에는 공백 없이 곧바로 도착의 귀결을 읽을 생각입니다. 시리즈 마지막 작품인 만큼 서술트릭의 짜릿함을 제대로 만끽할 수 있기를 기대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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