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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리엄
메이슨 코일 지음, 신선해 옮김 / 문학수첩 / 2025년 3월
평점 :
AI 로봇 윌리엄을 만드는데 모든 것을 쏟아 부은 로봇공학자 헨리는 아내 릴리와의 관계가 파국에 이르렀음을 감지합니다. 스스로가 지능은 뛰어나지만 사회성이 떨어지는 너드(nerd)이자 신경증과 광장공포증을 앓는 환자라는 걸 잘 아는 헨리는 릴리와의 관계 회복을 위해 애쓰면서도 완벽한 AI 로봇 윌리엄을 완성하는 일에 골몰합니다. 그러던 중 릴리의 옛 직장동료인 데이비스와 페이지가 식사 초대를 받아 찾아오고, 헨리는 아내와 데이비스에게서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느낍니다. 질투와 불안을 느낀 헨리는 갑자기 그들에게 윌리엄을 보여주기로 결심합니다. 하지만 윌리엄은 헨리의 기대와 달리 명백한 적의와 폭력을 휘두르며 완벽한 스마트 홈인 헨리의 집을 일순간에 지옥으로 만들어버립니다.

1980~90년대 SF 영상물의 고전인 ‘터미네이터’와 ‘블레이드 러너’는 볼거리 가득한 화려한 액션물이면서도 동시에 재앙과 공포로 뒤덮일지 모르는 머나먼 미래에 대한 막연한 경고를 담은 작품들입니다. 반면 ‘윌리엄’은 2025년을 살아가는 독자에게 곧 도래할 AI 시대의 암울하고도 끔찍한 가능성 한 조각을 너무나도 생생하게 보여주는, 그래서 100% SF라고 할 수 없는 현실적인 공포소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인간이 AI 로봇에 대해 공포를 느끼는 이유는 최악의 경우 통제 불가능한 악당이 될 수 있으며 종국에는 인간의 모든 것을 대체하는 존재가 될 수 있다는 점 때문입니다. 그런데 헨리가 자신의 집 다락방 연구실에서 재활용 부품들로 만들어낸 윌리엄은 이 두 가지 위험 요소를 모두 안고 있습니다. 아무리 과학이 발전하더라도 결코 등장해선 안 될, 실로 인류의 생존을 위협할 만한 AI 로봇입니다.
자신의 통제력을 과신한 한 야심가가 악마와의 계약에 응한 이야기를 그린 괴테의 ‘파우스트’를 가장 재미있게 읽었으며, 의식과 발상과 욕망까지 보유한 윌리엄은 말 그대로 “인간이 창조한, 인간이 아닌 생명”입니다. 탄생 이후 스스로 지적 성능을 개발한 윌리엄은 기계적 오류나 프로그래밍의 실수 때문이 아니라 순전히 자신의 의지로 파괴와 살인과 통제를 즐깁니다. ‘윌리엄’이 단순히 AI를 소재로 한 SF소설을 넘어 지독하게 현실적인 공포소설로 분류되는 건 바로 이런 이유들 때문입니다.
헨리는 창조자인 자신을 대체하려는 AI 로봇 윌리엄뿐 아니라 아내 릴리를 빼앗아가려는 데이비스의 공격에도 대처해야 하는 이중고에 시달립니다. 동시에 집밖으로 한 발짝도 내딛지 못할 정도의 광장공포증과 신경증 역시 헨리의 이성과 감성을 갉아먹으며 사태를 더욱 최악으로 몰아갑니다. 그리고 그런 분위기가 최고조에 이른 막판에 이르러 작가는 단 한 줄의 엄청난 반전으로 애초 자신이 이 작품을 통해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건지를 명료하게 밝힙니다. 단순히 뒤통수를 얻어맞은 듯한 충격을 넘어 “AI가 안길 수 있는 최대한의 공포와 딜레마”를 실감하게 만드는 이 반전과 엔딩이야말로 ‘윌리엄’의 가장 큰 미덕이라는 생각입니다.
칼 군무를 추는 로봇과 전쟁에 투입되는 로봇개는 더는 흥미로운 구경거리가 아닙니다. 영원히 SF의 허구 속에 머무를 것 같던 ‘터미네이터’와 ‘블레이드 러너’의 공포 역시 더는 남의 얘기도, 먼 얘기도 아닙니다. 하루가 다르게 진화하는 이 세상이라면 누구라도 헨리가 될 수 있고, 언제라도 윌리엄이 우리 앞에 모습을 드러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아무도 그런 비극을 막아낼 수 없다는 것, 또 헛된 희망이나 낙관론 따위는 아무 쓸모도 없다는 것을 ‘윌리엄’은 단 270여 페이지의 이야기를 통해 너무나도 확실하게 알려주고 있습니다.
사족으로... AI 로봇에 관한 과학적이고 논리적인 이야기지만, 간혹 ‘진짜 판타지’처럼 읽히는 대목들이 있습니다. 정신적으로 불안정한 헨리의 캐릭터가 반영된 경우도 있지만, “윌리엄이 아무리 고성능 AI 로봇이라 해도 어떻게 이런 상황까지 만들어낼 수 있지?”라는 의문이 든 경우도 적지 않습니다. 이런 모호함마저도 ‘윌리엄’의 독특한 매력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다 읽은 뒤에 다소 찜찜함이 남은 것도 사실입니다. 이 찜찜함 때문에라도 다른 독자들의 서평을 찾아볼 생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