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녀의 구제 탐정 갈릴레오 시리즈 4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김난주 옮김 / 재인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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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기업 사장 요시다카가 자택에서 사체로 발견됩니다. 사인은 맹독성 독극물이 들어간 커피. 수사가 시작되자 경시청 수사1과 구사나기는 요시다카와 불륜관계이던 히로미를 의심하지만, 신참 형사 가오루는 사건 당일 친정인 삿포로에 가있던 아내 아야네를 용의선상에 올립니다. 문제는 구사나기가 아야네에게 각별한 관심과 감정을 품은 탓에 그녀를 의심하는 가오루와 사사건건 충돌한 점. 결국 가오루는 딱 한 번 안면을 텄던 천재 물리학자 유가와를 찾아가 도움을 청합니다. ‘용의자 X의 헌신이후 더는 경찰에 협조하지 않겠다고 단언했던 유가와는 가오루로부터 사건 정황을 듣곤 조건부 협조를 약속합니다. 하지만 유가와는 범인이 이론적으로는 가능하지만 현실적으로는 있을 수 없는 트릭을 사용한 것 같다며 곤혹스러워합니다.

 


난 당신을 진심으로 사랑해. 그런데 지금 당신이 한 말은 내 마음을 죽였어. 그러니까 당신도 죽어줘야겠어.” (p12)

 

갈릴레오 시리즈의 네 번째 작품인 성녀의 구제는 전작인 용의자 X의 헌신과 마찬가지로 시작과 동시에 범인의 정체와 동기를 밝힌 뒤 트릭의 정체를 파헤치는 구도를 취합니다. 독자와 달리 아무 정보도 없는 상태에서 수사를 시작한 구사나기와 가오루는 각기 다른 인물을 용의자로 지목하며 각을 세우지만, 두 사람 모두 어떻게를 입증하지 못해 곤란한 지경에 빠집니다. 더는 경찰에 협조하지 않겠다던 유가와의 관심을 이끌어낼 정도로 범인의 트릭은 허수해(虛數解), 즉 이론적으로는 가능하지만 현실적으로는 불가능한 방법이기 때문입니다.

 

사건의 그늘에 슬픔과 아름다움이 교차하는 인간 드라마를 전개라는 출판사 소개글대로 성녀의 구제는 끔찍한 살인사건 이면에 숨어있는 치정, 시기, 질투, 자기혐오 등 사랑에 관련된 여러 가지 감정을 다룹니다. 결은 전혀 달라도 용의자 X의 헌신에서 맛봤던 여운이 떠오르기도 했는데, 그래선지 유가와마저 허수해라며 두 손을 든 사건이 부디 완전범죄로 마무리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들기도 했습니다.

 

사건만큼이나 흥미로운 건 수사1과 베테랑 구사나기와 신참 가오루의 대충돌입니다. 객관적인 단서와 논리에 근거해 수사를 전개하는 정통파 구사나기와 달리 가오루는 여성적인 직감과 눈썰미가 대단하고 남들이 놓친 단서를 포착하는 능력까지 지녔지만 상상과 고집이 지나친 나머지 물증을 확보하기도 전에 무리한 추리를 펼치는 인물입니다. 전혀 다른 수사 방식을 고집하던 두 사람은 결국 서로 다른 인물을 용의자로 지목하며 감정싸움에 가까운 충돌까지 벌입니다. 특히 가오루가 유력한 용의자로 생각하는 아야네에게 구사나기가 티가 날 정도로 각별한 감정을 품은 탓에 독자는 과연 누가 위너가 될지 무척 궁금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용의자 X의 헌신직후에 나온 작품이라 여러 면에서 비교가 돼서 그런지 인터넷서점의 서평은 대체로 야박하거나 혹평에 가까운 경우가 많았습니다. 생각해 보면 성녀의 구제를 처음 읽었던 2010년 무렵엔 저 역시 작품마다 워낙 편차가 큰 공장장히가시노 게이고의 작품들에 회의적인 눈길을 보냈던 걸로 기억하는데, 그래도 갈릴레오 시리즈는 최소한 그의 명성에 어울리는 수준은 유지해왔다는 생각입니다. 다만 너무 큰 기대를 품고 다시 읽은 탓에 다소 실망했던 용의자 X의 헌신과 달리 성녀의 구제는 눈높이를 낮춘 상태에서 읽었기에 이런 무난한 평점을 준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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