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프트 - 고통을 옮기는 자, 개정판
조예은 지음 / 북다 / 2025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출판사에서 제공받은 도서입니다.

 

해변의 폐건물에서 기이한 살인사건이 벌어집니다. 한 남자가 피 웅덩이에 잠긴 채 살해됐고, 어린 소년이 납치됐던 흔적까지 발견됐는데, 문제는 흉기와 바닥을 물들인 피가 피살자의 것이 아니라는 점, 또 남자의 몸에서 갑자기 발병한 듯한 말기 피부암 증상이 발견된 점입니다. 불치병에 걸린 조카 채린을 돌보기 위해 일부러 지방경찰서로 내려온 이창은 살해된 남자를 조사하던 중 어쩌면 자신이 오랫동안 찾아 헤맨 사람이 이 사건에 연루됐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전율합니다.

 


시프트2017년에 출간된 조예은의 첫 장편소설입니다. 최근 꽤 많은 작품이 출간됐음에도 불구하고 작년(2024)적산가옥의 유령을 통해 처음 만난 작가인데, 기대 이상의 재미와 만족을 느낀 덕분에 그녀의 첫 장편소설 개정판을 반가운 마음으로 읽게 됐습니다.

 

“(고통과 질병을) 옮기기만 할 뿐 없앨 수는 없어요. 누군가를 살리려면 누군가가 죽어야만 해요. 그래서 저는 제 능력이 저주스러워요.” (p95)

 

굳이 장르를 분류한다면 판타지 스릴러라고 할 수 있는데, 주인공인 란에게 고통을 옮기는 기이한 능력이 있기 때문입니다. 란이 고통과 병에 시달리는 환자와 그것을 옮겨 받을 그릇이 될 사람의 손을 양손에 쥐고 있으면 그를 매개로 하여 환자의 고통과 병이 그릇에게 옮겨가는 것입니다. 누군가의 고통과 병을 제거해준다는 점에서 기적이라고도 할 수 있지만 문제는 누군가 그 고통과 병을 받아내야 한다는 점, 즉 대신 죽어야만 한다는 사실입니다.

 

어린 시절 형 찬과 함께 인신매매범이자 사이비교주에게 납치됐던 란은 찬이 그 기이한 능력 때문에 비극적인 최후를 맞이하는 걸 눈앞에서 목격했습니다. 그리고 바로 그 순간 죽어가던 찬이 그 능력을 자신에게 물려준 걸 깨달았습니다. 저주받은 능력이지만 란은 찬의 복수를 위해 오랜 시간을 기다려왔는데, 누구에게도 밝히지 않았던 자신의 능력을 꿰뚫어 본 자가 나타나면서 그에게 위험천만한 위기가 닥칩니다.

사고로 숨진 누나 부부가 남긴 조카 채린이 불치병에 걸리자 이창은 어린 시절 직접 목격했던 기적을 떠올리곤 그 능력자를 찾기 위해 전력을 다합니다. 그리고 선술집 직원인 란을 주목하기 시작합니다. 하지만 란에게서 알아낸 기적의 진상은 너무나도 참혹해서 이창으로 하여금 어떤 선택을 해야 할지 알 수 없는 딜레마에 빠지게 만듭니다.

 

지금껏 읽은 그 어떤 판타지나 호러에서도 본 적 없는 특별한 능력을 소재로 삼았지만 그 작동원리가 너무나도 단순명쾌해서 조금의 위화감이나 거부감 없이 읽을 수 있었습니다. 저주받은 능력을 품은 채 복수에 나선 란과 그 능력이 너무나도 간절하지만 조카를 살리려면 누군가가 그릇이 돼야 한다는 사실에 절망하는 이창의 이야기는 적절한 비율로 배합된 판타지와 미스터리와 복수 스릴러 서사 속에서 마지막 장까지 긴장감을 유지하며 독자의 눈길을 사로잡습니다. (두 주인공의 첫 만남이 너무 쉽고 안이하게 설정된 건 아쉬웠지만, 그 점만 빼면 란과 이창의 이야기는 충분히 재미있었습니다)

 

찬과 란의 능력을 악용하는 악당들의 캐릭터와 역할도 잘 설정돼서 끝까지 두 주인공과 엎치락뒤치락하며 롤러코스터 같은 흥미진진함을 유발합니다. 징악(懲惡)의 짜릿함을 만끽하려면 그만큼 악당이 탄탄하게 설정돼야 하는데, ‘시프트에 등장하는 여러 악당은 뚜렷한 동기와 무자비한 잔혹함에다 개연성 있는 캐릭터까지 품고 있어서 주인공들의 분투를 더욱 매력적으로 만들어줍니다.

 

적산가옥의 유령이후 두 번째로 만난 시프트역시 만족스러운 책읽기를 선사했습니다. 이제 그동안 관심만 갖고 있던 조예은의 다른 작품들을 찾아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독자들의 서평을 훑어보며 어떤 작품을 가장 먼저 장바구니에 담을지 고민해보려 합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