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의자 X의 헌신 - 제134회 나오키상 수상작 탐정 갈릴레오 시리즈 3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양억관 옮김 / 재인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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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현대문학에서 나온 구판을 읽고 쓴 서평입니다)

 

호스티스 생활을 접고 도시락 가게에서 일하며 중학생 딸 미사토와 살아가던 야스코는 어느 날 갑자기 자신을 찾아온 전 남편 도미가시 때문에 공포에 사로잡힙니다. 돈을 갈취하고 폭력을 휘두르던 그에게서 도망쳤지만 끝내 뒤를 밟히고 만 것입니다. 문제는 그가 집까지 찾아와 의붓딸인 미사토에게까지 음흉한 시선을 보낸 점. 그런데 우발적인 사태가 벌어지고 모녀는 도미가시를 살해하고 맙니다. 그때 모녀에게 구원의 손길을 내민 건 이웃집의 고교 수학교사 이시가미. 그는 시신 처리를 떠맡으며 모녀에게 완벽한 알리바이 전략을 알려줍니다. 다음날 도미가시의 시신이 발견되고 사건을 맡은 경시청의 구사나기는 전처인 야스코를 용의선상에 올립니다. 이어 어딘가 수상한 이웃집 남자 이시가미에게서도 미묘한 위화감을 느낍니다.

 


용의자 X의 헌신갈릴레오 시리즈최고의 작품이자 일본 미스터리를 통틀어 명품으로 꼽히는 히가시노 게이고의 대표작입니다. 일본 미스터리 입문기인 17~18년 전에 처음 읽었을 때 막판 반전에 깜짝 놀란 것은 물론 마지막 장을 덮으며 강렬하고 깊은 여운에 사로잡혔던 기억이 생생한데, 서평을 쓰지 않던 시절에 읽은 탓에 대략의 줄거리만 생각날 뿐 구체적인 내용은 가물가물해서 거의 새로 읽는 기분으로 첫 페이지를 펼쳤습니다.

 

이야기의 구도는 심플합니다. 과거 천재 수학자로 불렸던 이시가미가 야스코 모녀의 살인을 덮기 위해 완벽한 알리바이 전략을 구사하고, 경시청의 구사나기가 모녀의 알리바이를 의심하며 이웃집 남자 이시가미의 공범 가능성을 떠올리는 가운데, 이시가미의 데이도 대학 동창이자 천재 물리학자인 유가와가 지극히 개인적인 이유로 형사 구사나기를 따돌리면서까지 살인사건의 진상을 파악하기 위해 분투합니다.

 

심플한 구도에 비해 독자는 복잡하고도 미묘한 심정으로 페이지를 넘기게 됩니다. 범인과 공범이 일찌감치 공개된 가운데 이시가미-야스코-구사나기-유가와가 벌이는 치열한 두뇌싸움과 미스터리가 가장 먼저 독자의 눈길을 끌지만, 그에 못잖게 이들 사이에 흐르는 갖가지 감정들 때문에 마음이 산란해질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학창 시절 백 년에 한번 나올까 말까 한 천재라는 소리를 들었지만 지금은 수학교사로 초라한 삶을 살고 있는 이시가미가 자신의 인생까지 걸고 옆집 모녀에게 헌신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유도 모른 채 이시가미의 도움을 받는 야스코 모녀는 어떤 엔딩을 맞이하게 될까? 그녀들은 단죄돼야 할까? 아니면 이시가미의 의도대로 완전범죄를 이뤄내야 할까? 구사나기를 통해 거의 20년 만에 이시가미의 근황을 알게 된 유가와는 어떻게 단 한 번 그와의 만남을 통해 살인사건의 진상을 절반쯤 파악할 수 있었을까? 또 구사나기를 따돌리면서까지 사건의 진상을 알아낸 유가와는 마지막에 어떤 선택을 하게 될까?

 

야스코 모녀를 향한 이시가미의 헌신과 진실을 알게 된 유가와의 고뇌가 끝까지 독자의 마음을 흔드는 가운데 아무도 예상 못한 트릭의 진상이 반전과 함께 밝혀지면서 네 인물은 혼란과 충격에 빠집니다. 또한 네 명 모두 자신이 알게 된 진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야 할지 거부해야 할지 판단조차 할 수 없는 기로에 내몰립니다. 독자 역시 왜 이들에게 이렇듯 가혹한 운명이 부여된 건지 안타까워하면서도 어떻게 이야기가 마무리될지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마지막 남은 한 장을 넘기게 됩니다.

 

미스터리로서의 완성도는 말할 것도 없고 사랑과 헌신을 모티브로 한 애틋하면서도 잔인한 비극이 절절하게 그려져서 장르물 독자가 아니더라도 감동과 여운을 만끽할 수 있는 작품입니다. 다만 너무 오랜만에, 그것도 너무 큰 기대를 갖고 읽어서 그런지 처음 읽었을 때만큼의 감흥에는 이르지 못했습니다. 그동안 그 감흥을 간직하고 싶어서 한국과 일본에서 만들어진 영화를 일부러 보지 않았는데, 다시 읽고 보니 이제는 한번쯤 찾아봐도 괜찮겠다는 생각입니다.

 

-사족 하나. ‘다시 읽기중에 갈릴레오 시리즈의 신작(‘침묵의 퍼레이드’)이 출간됐다는 소식이 들려서 무척 반가웠습니다.

 

-사족 둘. 제가 소장한 구판에는 오타가 상당히 많아서 책읽기에 방해가 될 정도였는데, 출판사가 바뀐 개정판에선 모두 수정됐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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