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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말에 귀 기울일 것
에이미 틴터라 지음, 이유림 옮김 / 북플라자 / 2025년 1월
평점 :
루시 체이스가 머리에 큰 상처를 입고 피를 뒤집어쓴 채 발견되고, 인근에서 절친인 새비의 시신까지 발견되자 경찰은 누군가 두 사람을 공격한 것으로 추정합니다. 하지만 살해된 새비의 손톱에서 루시의 피부조각이 발견되고, 루시 옷에 묻은 피가 새비의 것으로 밝혀지면서 루시는 살인용의자로 몰립니다. 그러나 증거도, 목격자도, 흉기도 발견되지 않자 수사는 미궁에 빠졌고 루시는 무혐의 처분을 받은 뒤 집을 떠납니다. 5년 뒤, 미제 사건을 해결해 유명해진 한 팟캐스트가 새비 사건을 다루면서 자신을 여전히 유력한 용의자로 언급하자 루시는 큰 충격에 빠집니다. 할머니 생신을 맞아 고향을 찾은 루시는 5년 전 새비의 죽음의 진상과 정면으로 마주하기로 결심합니다.

초반 설정이 무척 흥미로운 작품입니다. 5년 전 살인사건에서 무혐의로 풀려난 루시 체이스가 한 팟캐스트 때문에 다시금 유력 용의자로 대두되고 인터넷은 물론 지인들에게마저 마녀사냥의 대상으로 전락하는데, 공교롭게도 그 팟캐스트를 운영하는 벤 오웬스와 함께 사건의 진상을 찾아 나선다는 이야기입니다.
5년 전 살인용의자로 몰렸지만 무혐의로 풀려난 루시가 지금까지 범인으로 의심받는 가장 큰 이유는 사건 당일의 일을 전혀 기억하지 못한다고 주장했기 때문입니다. 루시 역시 머리에 큰 상처를 입었고 그로 인해 단기 기억상실증에 걸린 건데, 경찰은 물론 가족들조차 그 사실을 의심합니다. 문제는 루시 본인도 혹시 자신이 새비를 죽인 게 아닐까, 스스로 의심한다는 점입니다. 또한 희미하게 떠오르는 기억들 가운데 어떤 게 진짜인지 구별할 수 없었던 탓에 5년 동안 그날의 일들을 떠올리는 것을 포기해왔는데, 그런 그녀가 할머니의 생신을 계기로 5년 만에 고향으로 돌아오면서 이야기는 본론으로 진입합니다. 아직도 자신을 ‘운 좋게 붙잡히지 않은 살인자’로 여기는 인구 15,000명의 소도시 플럼튼의 불온한 공기도 불편했지만, 루시를 가장 놀라게 한 건 갑자기 자신 앞에 모습을 드러낸 팟캐스트 운영자 벤이었습니다.
‘거짓말에 귀 기울일 것’은 기본적으론 살인사건 미스터리로 분류되지만, 좀더 세밀하게 분류하면 심리 스릴러, 도메스틱 스릴러, 커뮤니티 스릴러의 서사를 골고루 갖춘 작품입니다. 살해당한 새비의 환청과 환영에 시달리는데다 자신이 범인일지도 모른다는 압박감 속에 진실 찾기에 나선 루시의 복잡한 심리묘사가 중요한 축을 차지하고 있고, 루시와 가족, 루시와 남편 사이에 상존하는 갈등과 의심과 불륜과 폭력의 문제가 이야기 저변에 깔려있는가 하면, 벤의 팟캐스트에 출연하여 5년 전 사건에 대해 언급하는 플럼튼 사람들의 악의 또는 호의는 한 다리만 건너면 모르는 사람이 없는 소도시를 배경으로 한 스릴러 특유의 불안정한 분위기를 내뿜기 때문입니다.
자신을 유력한 용의자로 여기는 걸 인정하면서도 중립적인 조사를 약속한 팟캐스터 벤과의 협업은 루시에겐 일종의 도박이나 다름없는 선택인데, 그래선지 독자 입장에선 두 사람의 심리전과 케미가 사건 못잖게 흥미진진하게 읽힙니다. 벤을 믿어도 될까? 루시는 정말 아무것도 기억 못하는 걸까? 두 사람의 협력 관계는 언젠가 깨지지 않을까? 호기심과 궁금증을 자아내는 두 사람의 관계는 뜻밖의 행보를 보여서 마지막까지 독자의 눈길을 사로잡습니다.
사실 루시의 기억만 돌아오면 미스터리가 종결되는 구도라서 초반 설정에 비해 긴장감은 그리 팽팽하지 않습니다. 루시와 벤이 탐정 역할을 맡았지만 소극적인 탐문 외에는 달리 할 수 있는 일이 없어서 중반부쯤엔 살짝 지루함이 느껴지기도 합니다. 5년 전의 진실이 드러나는 클라이맥스는 어김없이 반전을 품고 있긴 하지만 충격과 파괴력에 있어선 살짝 기대에 못 미친 게 사실입니다. 이런저런 이유로 별 1개를 빼긴 했지만 그래도 ‘거짓말에 귀 기울일 것’은 독특한 소재와 맛깔나는 문장이 매력적인 미스터리 스릴러입니다. 관심 있는 독자라면 다른 서평들도 참고한 뒤에 읽어보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