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컬렉터 - 판타스틱 픽션 블랙 BLACK 2-1 링컨 라임 시리즈 1
제프리 디버 지음, 유소영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9년 8월
평점 :
품절


뉴욕시경 과학수사국장이던 3년 반 전, 현장 감식 도중 불의의 사고로 전신마비가 된 링컨 라임은 더는 삶을 이어나갈 의욕을 잃고 안락사를 계획 중입니다. 그런데 절친한 동료였던 강력반 형사 론 셀리토가 찾아와 기이한 납치살인사건의 수사에 협력해줄 것을 부탁합니다. 미량 증거물을 통해 수많은 사건을 해결해 온 라임의 천부적인 능력이 필요한 사건이라는 것입니다. 안락사를 결심했던 라임은 고민 끝에 론의 요청을 수락하곤 현장을 처음 발견한 순찰경관 아멜리아 색스를 호출합니다. 생활안전과로의 전출을 앞두고 마지막 순찰에 나섰다가 생매장당한 남자의 시신을 발견한 색스는 엉겁결에 라임의 손과 발이 되어 끔찍한 연쇄살인마 본 컬렉터를 추적하는 위험천만한 여정에 나서게 됩니다.

 


링컨 라임 시리즈1997년에 출간된 본 컬렉터를 시작으로 2023년까지(미국 기준) 무려 16편을 이어온 범죄스릴러의 대작입니다. 한국에선 2020년에 소개된 12스틸 키스’(미국 2016)를 끝으로 더는 신간 소식이 없어서 내내 아쉬워하고 있었는데, 그래선지 새해가 되자마자 그동안 들쑥날쑥 읽어온 링컨 라임 시리즈를 한번쯤 순서대로 정주행하고 싶다는 욕심이 들었습니다. ‘본 컬렉터41살의 링컨 라임과 31살의 아멜리아 색스가 그야말로 우여곡절을 겪으며 첫 인연을 맺는 작품이라 더욱 각별하게 기억하고 있었는데, 오랜만에 다시 읽어보니 그 이상의 감흥과 재미를 만끽할 수 있었습니다.

 

시리즈물의 첫 편 대부분은 주인공()의 캐릭터와 과거사를 소개하느라 이야기가 좀 처지거나 사건이 조연으로 밀려나는 경우가 많은데, ‘본 컬렉터는 라임과 색스 두 주인공의 운명적인 첫 만남과 충돌은 물론 뼈를 숭배하는 연쇄살인마본 컬렉터가 저지르는 전대미문의 사건까지 한데 잘 버무려내서 540여 페이지를 읽는 내내 단 한 순간도 지루함을 느낄 수 없었습니다.

 

두 주인공은 각자 인생에서 중대한 변곡점을 앞두고 뜻밖의 상황에 직면합니다. 전신마비 상태의 라임이 안락사 실행을 앞두고 다시금 사건 현장에 나서게 됐다면, 모델로 일하다가 아버지의 뒤를 이어 순찰경관이 됐지만 더는 견디지 못하고 생활안전과로 자리를 옮기려던 색스는 자신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현장 감식 일을 떠맡게 된 것입니다.

증인 따위는 절대 믿지 않으며 오직 현장에 남겨진 흙, 먼지, 섬유, 냄새 등 미량의 증거물만 신뢰하는 라임과, 아버지처럼 사람들을 상대하는 경찰이 되고 싶어 늦은 나이에 경찰이 된 색스는 물과 불처럼 정반대의 성질을 가진 사람들입니다. 더구나 한 사람은 사지가 마비된 채 머리와 입으로만 수사를 진행하고, 한 사람은 자신이 원하지도 않은 상황에서 피와 땀을 흘리며 현장을 뛰어다녀야만 합니다. 그야말로 대충돌이 벌어지지 않을 수 없는 관계입니다. 하지만 라임과 색스는 서로에게 독설을 날리고 상처를 주면서도 뉴욕의 오래된 지하를 무대로 끔찍한 범행을 저지르는 본 컬렉터를 수사하는 과정에서 조금씩 상대의 진심과 속내와 과거를 알아가기 시작하고, 끝내는 서로가 서로에게 필요한 파트너로 성장합니다.

 

사건 역시 시리즈 첫 편답게 독자의 눈길을 단번에 사로잡는데, “한니발 렉터가 인육이라면, 본 컬렉터는 뼈라는 출판사 소개글대로 라임과 색스가 상대하는 본 컬렉터는 참혹한 방식으로 살인을 저지르는 것은 물론 희생자의 뼈에 집착하는 역대급 사이코패스라고 할 수 있습니다. 75년 전에 출간된 범죄서적을 탐독하는가 하면, 뉴욕의 역사와 지하구조물에 해박한 지식을 갖고 있으며, 피살자 주변에 다음 살인의 단서를 남겨놓아 라임과 색스를 극도의 초조함 속으로 몰아가곤 합니다. 그리고 막판에 밝혀지는 그의 정체와 범행 동기와 궁극적인 목적은 왜 제프리 디버가 트릭과 반전의 대가로 불리는지를 확실하게 보여줍니다.

 

1997년에 출간된 작품임에도 불구하고 최첨단 법과학 수사의 진수를 맛볼 수 있는데다 제한된 시간 안에 다음 피해자를 구해내야 한다는 긴박감 넘치는 설정 덕분에 사건 자체만으로도 끝내주는 미덕을 갖춘 범죄스릴러지만, 역시 두 주인공 라임과 색스의 강렬한 첫 만남이야말로 본 컬렉터의 가장 큰 매력이라는 생각입니다. 특히 사지마비를 비관하며 안락사를 결심한 라임이 자기도 모르게 색스로 인해 새로운 삶을 꿈꾸게 된 점이라든지 “(현장에는) 범인의 주소와 전화번호, 인상착의, 그자의 소망과 열망이 담겨 있어.”라는 라임의 지시에 반발하던 색스가 어느 새 라임이 시키기도 전에 뭘 해야 할지 판단하고 결정할 줄 알게 되는 모습은 앞으로의 콤비 플레이에 대한 기대감을 한껏 높여주는 대목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2편인 코핀 댄서에서 두 주인공이 펼칠 이야기가 벌써부터 기다려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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