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로 속 아이
기욤 뮈소 지음, 양영란 옮김 / 밝은세상 / 202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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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재벌가의 상속녀 오리아나가 프랑스 남부 휴양지의 요트에서 괴한의 습격을 받아 사망합니다. 수사에 나선 니스 경찰청 강력반은 현장에서 아무런 증거를 찾아내지 못했고, 결국 사건은 미궁에 빠집니다. 1년 뒤, 오리아나의 남편이자 유명 재즈피아니스트인 아드리앙의 저택에 범행 흉기가 보관 중이라는 익명의 제보가 들어오고, 감식 결과 흉기에 말라붙은 혈흔과 머리카락의 주인공이 오리아나라는 사실이 밝혀집니다. 수사팀장 쥐스틴은 아드리앙을 취조하지만 철저한 부인과 함구에 전혀 진척을 보지 못합니다. 그러던 중 예상치 못한 제3의 인물, 즉 아드리앙의 숨겨진 연인으로 추정되는 아델이란 여자의 존재가 드러나면서 사건은 걷잡을 수 없는 방향으로 흐릅니다. (출판사 소개글을 일부 수정 후 인용했습니다.)



이 작품까지 고작 다섯 편밖에 읽지 못한 터라 함부로 단정할 순 없지만 유독 한국에서 큰 인기를 누리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기욤 뮈소는 제겐 늘 반반 정도의 만족감을 준 작가입니다. 프랑스 작가답지 않게 쉽고 편하게 읽히는데다 예기치 못한 반전과 긴장감을 품은 장르물 서사가 장점이라면, 무게감이 다소 부족해 보이고 간혹 이해하기 힘든 전개와 결말로 이야기를 끌고 가는 점이 아쉬웠기 때문입니다. ‘미로 속 아이는 살인사건이 등장하는 확실한미스터리 스릴러라서 나름 기대를 갖고 읽었는데, 역시 반쯤은 만족했고 반쯤은 아쉬움이 남은 작품입니다.

 

이야기의 뼈대는 니스 경찰청 강력반의 쥐스틴 팀장이 사건 발생 1년 만에 유력한 용의자로 감치된 오리아나의 남편 아드리앙을 취조하면서 사건의 진상을 파헤치는 과정입니다. 사실 사건 발생 직후부터 경찰은 아드리앙을 의심했지만 여러 가지 정황 상 그를 체포할 근거가 부족했습니다. 그러다가 뜬금없는 익명의 제보 덕분에 결정적 단서를 손에 넣게 된 셈인데, 그래선지 쥐스틴의 취조는 다소 무리하고 억지스러워 보입니다. 재미있는 건 취조가 진행될수록 쥐스틴의 마음속엔 아드리앙에 대한 상반된 심정, 즉 유죄가 분명해 보이지만 왠지 그럴 리 없어 보인다는, 본인도 납득 안 되는 모순이 자라난다는 점입니다. 그리고 아드리앙의 숨겨진 연인 아델의 존재가 밝혀지면서 쥐스틴의 추리는 그 전까지와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치닫기 시작합니다.

 

이야기는 현재와 과거를 오가면서 전개되는데, 특히 사건 발생 18개월 전, 재벌가 상속녀인 오리아나가 가난한 호텔 메이드 아델에게 접근하여 터무니없는 제안 - “내 남편의 연인이 되어줘.” - 을 한 뒤 벌어지는 기이한 상황들 때문에 독자는 두 여자의 관계가 살인사건과 어떻게 접목될지 무척 궁금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또한 미스터리 못잖게 큰 분량과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건 주조연을 막론하고 가족의 문제를 겪고 있는 인물들의 비하인드 스토리입니다. 젊은 여자에게 남편을 빼앗긴 뒤 우울한 나날들을 보내고 있는 40대 중반의 쥐스틴 팀장, 어린 시절 끔찍한 사고를 겪었지만 끝내 주목받는 상속녀로 성장했으며 결혼 후 남편 아드리앙과 크고 작은 트러블을 겪긴 했어도 아이들에 대한 사랑만큼은 진심이었던 오리아나, 평생 손에 넣을 수 없었던 장밋빛 미래가 현실로 다가오자 일그러진 욕망에 사로잡히는 아델, 청소년기에 접어든 뒤 인생을 망쳐버린 아들 때문에 자괴감에 사로잡힌 형사 등 미스터리 자체와는 상관없어 보이는 이야기들이 꽤 비중 있게 그려집니다. 하지만 한 발 떨어져서 큰 그림을 보면 인물과 사건 모두 가족이라는, 가장 가깝고도 먼 관계를 기반으로 설정됐음을 알 수 있어서 굳이 많은 분량과 비중을 들여 비하인드 스토리를 설명한 이유를 납득할 수 있습니다.

 

미로 속 아이는 단 몇 글자만으로 초대형 스포일러를 유발할 수 있는 작품입니다. 몇 글자에 대해 독자들 사이에 호불호가 확실하게 갈릴 것 같은데, 개인적으론 ?”라는 실망감이 먼저 든 게 사실이지만, 기욤 뮈소는 나름 다른 작품들과 차별화되는 설정을 투입함으로써 식상한 결말과는 조금은 거리가 있는 그만의 특별한 엔딩을 이끌어냈습니다. “마지막 한 줄을 다 읽고 나야 모든 의혹이 해소된다.”라는 소개글은 이런 맥락에서 나온 것으로 보입니다. 혹시 저처럼 ?”라는 실망감이 들더라도 마지막 장까지 차분하게 읽다 보면 그만의 특별한 엔딩이 어떤 것인지 확실하게 확인할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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