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책 식당
하라다 히카 지음, 김영주 옮김 / 문학동네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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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생 독신으로 훗카이도에서 살아온 산고는 어느 날 갑자기 도쿄 진보초의 다카시마 헌책방의 주인이 됩니다. 대학 입학과 함께 도쿄로 가서 홀로 살다가 작고한 작은오빠 지로가 자신이 소유했던 헌책방과 3층짜리 건물을 산고에게 남겼기 때문입니다. 도쿄에서의 생활도, 가게 운영도 처음인 산고를 돕는 건 대학원에서 고전을 전공하는 조카손녀 미키키입니다. 오빠 지로에 대한 그리움, 훗카이도에 살 때 연심을 품었던 히가시야마에 대한 미련, 그리고 모든 것이 서툴 뿐인 헌책방 운영 등 산고의 하루하루는 심란하고 위태로울 뿐이지만, 미키키의 도움 덕분에 조금씩 적응하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헌책방을 찾아오는 손님들과의 교류를 통해 작지만 소중한 보람을 맛봅니다.

 


하라다 히카의 이름은 인터넷서점의 일본소설을 검색할 때마다 자주 발견하곤 했지만, 그동안 그녀의 작품을 읽지 않은 건 낮술’, ‘우선 이것부터 먹고’, ‘도서관의 야식난 음식소설입니다.”라고 노골적으로 정체성을 드러낸 제목 때문이었습니다. 물론 미스터리가 가미된 음식소설은 즐겨 읽는 편이지만 힐링 서사와 섞인 음식 이야기는 제 취향과 맞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을 읽게 된 건 오로지 제목에 들어간 헌책이란 단어 때문입니다. 특히 언젠가 꼭 한 번은 가보고 싶은 도쿄 진보초의 헌책방 거리를 무대로 한 이야기라 더욱 구미가 당겼습니다.

 

어느 날 갑자기 낯선 도쿄 땅에서 오빠 지로에게 물려받은 헌책방을 운영하게 된 할머니 산고, 작은할아버지 지로와 각별한 인연이 있는데다 스스로 고전을 전공하면서 진보초의 헌책방 거리에 익숙한 덕분에 고모할머니 산고를 돕게 된 대학원생 미키키가 헌책과 음식을 소재로 따뜻하면서도 감동적인 이야기를 풀어놓습니다.

 

생각해보면 이 동네가 전부 헌책 식당인 거네요. 거리 전체에 오래된 책들이 넘쳐흐르고, 맛있는 음식도 넘쳐흐르니까요. 참 멋진 동네예요.” (p348)

 

산고와 미키키는 헌책방을 찾은 손님들에게 알맞은 책을 추천하고 그들과 함께 포장해 온 음식을 먹으며, 그들이 헌책방을 찾아오게 된 사연을 듣곤 분에 넘치지 않는 조언을 들려줍니다. 동시에 두 사람은 각자 마음속에 품고 있는 여러 가지 고민들을 헌책방에서의 하루하루를 통해 조금씩 덜어내거나 정리하기도 합니다. 인생 후반기에 낯선 곳에서 낯선 일을 떠맡게 된 산고가 오빠의 유산인 헌책방의 소중함을 절감하면서도 한 남자를 향한 미련 어린 연심 때문에 수심 깊은 나날들을 보낸다면, 논문을 준비 중인 대학원생이면서도 무엇 하나 확실하지 않은 미래 때문에 고민에 빠진 미키키는 산고 할머니에게 털어놓지 못하는 속내 때문에 매일 같이 전전긍긍할 뿐입니다. 서로를 아끼고 존중하면서도 각자의 진심을 드러내지 못하는 두 사람의 이야기가 헌책방을 둘러싼 정감 어린 힐링 서사와 잘 섞여 있어서 자칫 지루한 동어반복이 될 수도 있는 스토리를 입체감 있게 만들어줍니다.

 

워낙 책을 좋아하는데다 막연한 망상이긴 해도 언젠가 작은 서점을 운영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가졌던 터라 헌책 식당은 제겐 각별한 재미와 의미를 준 작품입니다. 다만 헌책만으로는 뭔가 부족하다고 느낀 건지, 아니면 작가의 전공이 음식이라 그랬던 건지 모르겠지만 식당이란 소재가 끼어든 건 개인적으론 무척 아쉬운 대목이었습니다. 뭐랄까, 헌책과 식당의 조합이 자연스럽다기보다는 억지스럽게 꾸며진 느낌이랄까요? 제각각의 사연으로 헌책방을 찾은 손님들에게 치유와도 같은 알맞은 책을 추천하거나 때론 논쟁을 벌이며 서로의 생각을 주고받는 장면들은 무척 인상적이었지만, 그들에게 포장해 온 음식을 권하고 거기에서 다소 뜬금없는 공감대를 이끌어내는 상황은 다분히 작위적으로 보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일본어라고는 그저 어설프게 히라가나와 가타가나를 읽어내는 정도가 전부일 뿐이지만, 언젠가 기회가 되면 하루쯤 통으로 진보초 거리를 걸어보고 싶은 로망을 갖고 있습니다. 한국어로 번역된 제가 좋아하는 일본소설의 원작을 발견한다면 그저 소장하는 게 전부일지라도 한두 권쯤은 사고 말 거라는 욕심도 품고 있습니다. ‘헌책 식당에 소개된 서점과 카페와 식당이 실제 존재하는지는 알 수 없지만, 언젠가 진보초 거리를 걷게 된다면 꼭 찾아가볼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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