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재의 모든 것을
시오타 타케시 지음, 이현주 옮김 / 리드비 / 202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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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1, 가나가와현과 도쿄에 걸쳐 전대미문의 아동 동시 유괴사건이 벌어집니다. 수사력이 분산된 경찰은 혼란에 빠졌고, 유괴범에게 돈 전달을 맡은 가족이 뜻밖의 폭주를 벌이는 바람에 범인이 자취를 감추면서 사건은 미궁에 빠집니다. 다행히 유괴된 소년 중 한 명은 발견됐지만 나머지 한 명인 4살 나이토 료의 행방은 알 수 없게 됩니다. 그런데 3년이 지난 뒤 7살이 된 료가 집으로 돌아옵니다. 문제는 지난 3년에 대해 료가 아무 말도 안 한다는 점입니다.

그렇게 30년이 흘렀고, 당시 2년차 경찰 출입기자였던 몬덴 지로는 자신과 각별했던 사이이자 유괴사건 수사에서 중책을 맡았던 형사 나카자와의 장례식에서 뜻밖의 상황과 마주합니다. 한 주간지에 지금은 다른 이름을 사용하는 화가가 된 료의 사진이 실렸고, 그걸 발견한 나카자와의 후배 형사들이 몬덴에게 마지막이 될지도 모를 추가 조사를 부탁했기 때문입니다.

 


표지와 제목 모두 평범한 미스터리와는 거리가 먼, 마치 인문과 철학의 향기가 깃든 묵직한 순문학을 연상시켜서 읽기 전부터 남다른 관심을 가졌던 작품입니다. 아주 간략하게 요약하면, 30년 전의 기이한 유괴사건의 진상을 밝히는 한 노회한 기자의 분투기라고 할 수 있지만, 이 작품의 핵심이자 주인공 몬덴 지로의 목표는 범인의 정체나 사건의 진상을 밝히는 것이라기보다는 유괴됐던 소년 나이토 료가 과연 3년 동안 무슨 일을 겪었던 건지, 왜 료는 그 시간에 대해 입을 다물었던 건지, 그리고 오랜 시간동안 잠적한 채 다른 이름을 사용하는 화가로 성장하게 된 사연은 무엇인지 등을 파악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물론 몬덴의 조사는 유괴사건의 진상과 범인 찾기로 시작되지만, 그의 손에 들어오는 정보들이 하나같이 놀라운 우연과 적잖은 위화감으로 포장돼있다는 걸 깨닫자 몬덴은 료가 감췄던 3년의 공백 속에 상상조차 할 수 없는 놀라운 사연이 숨어있을 거라고 짐작합니다.

 

기자와 형사의 역할을 동시에 수행하는 몬덴의 지난한 여정은 범죄 미스터리 못잖게 저널리즘 미스터리의 진수를 맛보여줍니다. 평생 기자로 살아왔지만 만족감보다는 자괴감이 더 깊게 남은 54세의 몬덴이 결국 자네는 왜 신문기자를 하는 건가?”라는 나카자와 형사의 질문을 가슴에 품은 채 마지막 현장 취재라는 각오로 진심을 다해 분투하는 모습은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저널리즘 휴먼 소설 클라이머즈 하이’(요코야마 히데오)를 떠올리게 할 정도로 진정성 있게 다가왔습니다. 전국을 떠돌며 희미한 단서들의 고리를 찾아내고 관련자들의 진술을 이끌어내며 한걸음씩 목표에 다가가는 모습은 기자로서도, 형사로서도 흠뻑 빠져들 수밖에 없는 매력을 지니고 있습니다. 모든 진상을 알아낸 그가 “‘살아 있다는 묵직함, 그리고 살아왔다는 대단함을쓰고 싶다는 의지를 밝히며 저는 인간을 쓰겠습니다.”라고 일성을 내뱉을 때의 감동은 서평을 쓰는 지금까지도 진한 여운으로 남아있습니다.

 

한편 이 작품은 미술, 특히 사실화(寫實畫)를 중요한 소재이자 소품으로 다루는데, 방대한 자료조사의 흔적이 역력한데다 그림 하나하나에 대한 시오타 타케시의 깊고 은은한 문장들까지 더해져서 “(사진처럼) 비슷하다는 차원을 넘어 혼의 일부를 빨아들여 캔버스에 증식시킨 듯한사실화의 진수를 마치 눈으로 직접 보는 듯 만끽할 수 있었습니다. 이 작품에서 사실화는 단순히 등장인물의 캐릭터를 꾸미기 위한 설정이 아니라 미스터리 자체에도 결정적인 영향을 끼쳐서 읽는 내내 눈길이 끌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550페이지에 육박하는 두툼한 분량 속엔 표지와 제목에 걸맞게 묵직하고 비범한 이야기들이 담겨있습니다. 그저 미스터리로만 분류해서는 안 되는, 즉 애틋한 휴먼드라마와 운명적인 비극과 미술 이야기가 혼재된 아주 특별한 작품이라고 할까요? 읽기 전엔 그 의미를 이해하기 어려웠던 존재의 모든 것을이라는 제목이 마지막 장을 덮을 무렵 희미하게나마 마음에 와 닿은 것은 아마도 그 특별함이 독자인 제게 제대로 소구했기 때문이 아닌가, 짐작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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