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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라인드 웨딩
제이슨 르쿨락 지음, 유소영 옮김 / 문학수첩 / 2024년 12월
평점 :
프랭크 저토스키는 3년 간 소식을 끊고 살던 딸 매기가 갑자기 전화를 걸어와선 석 달 후에 결혼한다고 통보하자 반가움을 채 느끼기도 전에 큰 충격에 빠집니다. 프랭크를 더욱 놀라게 한 건 매기의 결혼 상대가 그녀가 재직 중인 재벌그룹 회장의 아들 에이든이란 사실, 그리고 그에게서 풍기는 다분히 불편하고 비밀스런 분위기입니다. 하지만 딸 매기와의 일그러진 관계를 회복하고 싶은 프랭크는 그녀의 선택을 믿고 존중하기로 합니다. 그런데 결혼식 직전, 프랭크는 예비사위 에이든이 돈 태거트라는 여자와 함께 찍은 사진을 우편으로 받곤 다시금 불안감에 휩싸입니다. 더구나 결혼식이 열릴 호화별장 인근에서 만난 한 남자가 “에이든이 내 조카 돈 태거트를 살해했다!”고 주장하자 프랭크의 머릿속은 이내 공포에 잠식됩니다.

‘블라인드 웨딩’은 2024년에 출간된 장르물 가운데 개인적인 베스트 목록에 올린 ‘히든 픽처스’의 작가 제이슨 르쿨락의 신작입니다. 초자연적인 존재가 등장하는 호러 스릴러이자 정교한 미스터리 서사까지 결합된 ‘히든 픽처스’에 홀딱 반한 나머지 그의 신작 소식이 너무 반갑기만 했는데, 이번에는 뜻밖에도(?) 지극히 현실적인 무대에서 벌어지는 가족 스릴러에 살인사건 미스터리가 가미된 이야기를 만날 수 있었습니다.
이야기의 주 무대는 결혼식이 열리는 재벌가의 호화별장입니다. 3일에 걸쳐 연회와 결혼식이 벌어지는 가운데 예비사위 에이든에 대한 의심을 지우지 못한 프랭크는 홀로 별장 곳곳을 돌아다니며 진실 찾기에 나섭니다. 에이든의 뒤를 밟는가 하면, 돈 태거트라는 여자의 가족을 만나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런 행보는 매기의 거센 반발만 불러일으킬 뿐 아무런 성과도 얻어내지 못합니다. 그런 와중에 호화별장에서 참혹한 사건이 벌어지고 프랭크는 이 결혼의 배후에 자신이 상상조차 할 수 없는 불온한 의도가 숨어있다고 확신합니다.
언뜻 줄거리만 보면 악당에게 마음을 빼앗긴 채 ‘눈먼 결혼’을 강행하려는 딸을 구하고 악당을 응징하는 이야기처럼 보이지만 제이슨 르쿨락은 그런 평범한 스토리 대신 독자의 뒤통수를 치는 강렬한 설정을 통해 지금껏 접하지 못한 독특한 가족 스릴러를 선보입니다. 결혼식에 함께 참석한 프랭크의 누나 태미는 매기를 구하려고 분투하는 프랭크를 향해 “이건 영화 〈테이큰〉이 아니고, 너는 리암 니슨이 아니야.”라고 일갈하는데, 다른 맥락에서 나온 대사이긴 하지만 이 작품의 성격을 단적으로 설명해주는 역설적인 대사이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프랭크의 진짜 미션은 뭘까요? 프랭크는 매기의 ‘눈먼 결혼’을 막아낼 수 있을까요? 매기가 감추는 진실은 과연 뭘까요? 중반부를 조금 지나 드러나는 끔찍한 진실 앞에서 독자들은 아마 할 말을 잃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전형적인 가족 스릴러를 이런 식으로 비틀 수도 있구나, 라는 신선한 충격을 받게 될 것입니다.
결혼식을 앞둔 호화별장에서 연이어 죽음이 벌어지고, 에이든을 비롯한 재벌가의 비밀과 매기의 진실이 야금야금 밝혀지는가 하면 프랭크에겐 여러 차례의 위기와 반전이 닥치는 등 마지막까지 눈길을 떼지 못하게 하는 흥미로운 이야기가 전개되지만, 기대가 너무 컸던 탓인지 다소 단선적인 스토리가 무척 아쉽게 느껴졌습니다. 모르는 작가의 작품이었다면 별 5개는 줄 수 있었을 텐데 아무래도 인물이든 사건이든 서사든 여러 면에서 ‘히든 픽처스’와 비교하다 보니 아쉬움이 더 크게 느껴진 것 같습니다. 이 작품으로 제이슨 르쿨락의 스릴러에 호감을 갖게 된 독자라면 꼭 ‘히든 픽처스’를 읽어볼 것을 권하고 싶습니다. ‘초자연적인 존재가 등장하는 호러 스릴러’에 거부감을 가진 독자라도 정말 재미있게 읽을 수 있다고 확신하기 때문입니다.
이런저런 아쉬움이 남긴 했지만 제이슨 르쿨락은 여전히 제 관심목록 상단에 남겨둘 만한 매력적인 작가입니다. 이 작품의 원작 자체가 2024년에 출간됐으니 1년 만에 신작 소식이 들려오기를 바라는 건 과욕일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너무 오래 기다리는 일만은 없기를 사심 가득 담아 기대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