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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의 끝
히가시야마 아키라 지음, 민경욱 옮김 / 해피북스투유 / 2024년 11월
평점 :
2173년, 소행성 파편과의 충돌로 지구는 초토화된다. 미국 정부는 피해가 미약한 동부지역을 보호하기 위해 900km에 달하는 경계선을 긋고 외부와 차단한다. 그로 인해 경계선 밖에선 동사와 아사가 속출하고, 결국 생존을 위한 ‘식인’이 횡행한다. 하지만 식인은 죄의식을 야기했고, 경계선 밖 사람들은 어떻게든 구원받길 기도했다. 그때 소년 너새니얼 헤일런이 나타나 온갖 기적을 행하며 ‘식인의 신’으로 불리게 된다. 한편 백성서파 교회는 경계선 밖의 범죄자들을 없애기 위해 킬러를 파견한다. 특히 식인을 심각한 중범죄로 여긴다. 킬러 중 한 명인 네이선 발라드는 식인 현장을 목격하곤 충격에 빠지지만 동시에 너새니얼이 왜 신으로 추앙받는지도 알게 되면서 심각한 고민에 빠지고 만다. 과연 너새니얼은 식인을 조장한 죄인일까? 아니면 진정 신 혹은 구원자일까? (출판사 소개글을 일부 수정 후 인용했습니다.)

대만에서 태어난 일본인 작가 히가시야마 아키라는 1970~80년대 대만을 배경 삼아 미스터리와 역사와 성장스토리를 절묘하게 배합시킨 나오키 상 수상작 ‘류’를 통해 처음 알게 됐습니다. 굉장히 독특한 작품인데다 미묘한 필력이 눈길을 끌어서 후속작을 기대하고 있었는데, 고백하자면 ‘죄의 끝’은 서평을 써야 되나 말아야 되나 고민이 될 정도로 저에겐 다소 어렵고 이해하기 쉽지 않은 작품이었습니다. 파멸에 이른 지구, 생존을 위한 식인, 선악의 경계가 모호해진 황폐한 세상, 그리고 그런 상황에 내몰린 자들이 갈망한 진정한 구원 등 대재앙 이후 살아남은 자들이 겪는 지독한 비극에 신화와 종교와 도덕의 서사를 가미한 이야기였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어렵고 이해하기 쉽지 않았다는 것 역시 독서의 결과 중 하나라는 생각에, 읽으면서 느꼈던 바를 몇 마디 적어보려고 합니다.
전쟁 혹은 조난을 다룬 픽션 가운데 ‘생존을 위한 식인’을 그린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불가피한 상황이긴 해도 사람을 먹은 사람들은 구토 등 육체적인 거부감은 말할 것도 없고 끝없는 죄책감과 죄의식에 시달리게 됩니다. ‘죄의 끝’에 등장하는 경계선 바깥의 사람들처럼 말입니다. 그런 그들에게 용서와 구원이 된 소년 너새니얼의 한마디는 의외로 간결하고 단순합니다. “한 사람을 먹었으면 두 사람을 구하라.” 자기합리화에 불과한 궤변처럼 들리기도 하지만, ‘죄의식에 사로잡힌 식인종’들에겐 그야말로 눈물 나는 구원의 한마디가 아닐 수 없습니다.
하지만 동사와 아사의 걱정이 없는 경계선 내부 사람들에게 있어 식인을 조장하고 살인을 일삼는다고 소문난 너새니얼은 반드시 제거해야 할 잔혹한 범죄자에 불과합니다. 그런 너새니얼을 제거하기 위해 파견된 네이선은, 말하자면 경계선의 중간쯤에 선 채 이 모든 혼란의 양면을 동시에 목도하는 인물입니다. 식인도, 살인도 용납할 수 없는 그였지만 생존의 한계에 몰린 인류가 어떤 식으로 새로운 가치관을 만들어내고 또 어떤 식으로 자신들의 구원자를 찾아내는지를 낱낱이 지켜보면서 고민과 갈등에 사로잡히기 때문입니다.
‘죄의 끝’은 독자의 감정이입을 차단하고 객관적인 시점에 머물게 하는 구성을 취합니다. 즉 ‘너새니얼 제거작전’은 현재가 아니라 20년 전에 벌어진 일이며, ‘죄의 끝’은 실은 자료수집과 인터뷰를 거쳐 너새니얼의 일생을 조사한 네이선이 제거작전 과정의 전말까지 가미하여 펴낸 책의 내용입니다. 네이선도, 너새니얼도 주인공이라 할 수 없습니다. 감정과 시점을 이끄는 주인공이 없는 상태에서 멸망한 세계와 인류가 맞닥뜨린 참극을 중립적인 눈으로 바라보도록 만들었다는 뜻입니다. 물론 너새니얼을 추격하는 네이선의 여정을 읽으면서 독자는 어쩔 수 없이 잠시의 감정이입을 경험하게 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지막까지 담담한 마음을 견지하며 페이지를 넘길 수 있었던 건 이런 구성 덕분입니다.
식인을 소재로 한 흥미진진한 SF 스릴러도 아니고, 빠른 속도로 읽어선 안 될 쉽지 않은 작품이지만, 포스트 아포칼립스, 즉 종말 혹은 대재앙 이후의 픽션을 좋아하는 독자라면 큰 매력을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제 경우 아쉽게도 그쪽 취향이 아니라서 더 어렵게 읽은 것 같은데, 그래선지 언젠가 시간이 좀 흐른 뒤에 꼭 한 번 다시 읽어보고 싶은 욕심이 드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렇다면 너새니얼과 네이선의 이야기를 이번보다는 조금은 더 깊고 진중하게 읽어낼 수 있을 것 같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