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없는 집 율리아 스타르크 시리즈 1
알렉스 안도릴 지음, 유혜인 옮김 / 필름(Feelm)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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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정 율리아 스타르크는 50대 남자 페르 귄터 모트(일명 PG)로부터 기이한 의뢰를 받습니다. 간밤에 기억을 잃을 정도로 술에 취했다가 아침에 일어나보니 자신의 휴대폰에 자루를 뒤집어쓴 채 살해당한 한 남자의 사진이 들어있었다는 것입니다. 자신이 남자를 살해하고 사진을 찍은 건지, 이미 살해된 남자를 자기도 모르게 찍은 건지 확신하지 못하는 PG는 경찰에 신고하기 전에 사진의 경위를 알아내기 위해 탐정인 율리아를 찾아온 것입니다. 자루를 뒤집어쓴 탓에 사진 속 남자의 정체를 알 수 없는 상태에서 전남편이자 경찰인 시드니와 함께 PG가 사는 숲속의 저택을 찾은 율리아는 유서 깊은 목재 재벌로 한때 큰 부와 명예를 누렸지만 지금은 쇠락의 길을 걷고 있는 모트 집안에 감도는 불온한 기운을 감지합니다.


 

오랜만에 접한 스웨덴 범죄 스릴러로 율리아 스타르크 시리즈의 첫 번째 작품입니다. 알렉스 안도릴은 라르스 케플레르라는 이름으로 활동했던 부부 작가로 한국에는 최면전문의스토커등이 소개됐는데, 실은 두 작품 모두 모두 읽다가 중도 포기했던 터라 이 작품 역시 살짝 고민하다가 도전하게 됐습니다.

 

주인공 율리아 스타르크는 무척 독특한 캐릭터입니다. 지방법원 서기 출신으로 탐정이 된 33세의 여성인데, 어릴 적 겪은 끔찍한 사고 때문에 몸과 마음에 큰 상처가 남아있습니다. 얼굴에는 큰 흉터가 있고, 걸을 때는 지팡이의 도움을 받아야만 합니다. 타인과의 아주 사소한 접촉에도 공황장애에 빠지곤 해서 누군가 가까이 다가오기만 해도 극도의 공포에 사로잡히곤 합니다. 이 모든 건 어릴 적 사고의 악몽이 남긴, 그리고 평생을 안고 가야할 율리아의 숙명입니다. 한 가지 특이한 건, 그 사고의 후유증이 율리아에게 탐정으로서 특별한 능력을 부여했다는 점입니다.

 

율리아의 시간이 서서히 멈추는 순간들이 있었다. 마치 사고를 당할 때처럼 1000분의 1초 단위로 모든 순간이 기억에 새겨졌다. PTSD의 한 증상에 불과했지만 율리아는 그 덕에 사람들의 표정과 말에 숨은 뜻을 포착하고 디테일을 볼 수 있었다.” (p194)

 

즉 수사 과정에서 결정적인 순간이 다가오면 시간이 멈춘 듯 모든 것이 느리게 보이기 시작하고 율리아는 그 순간을 이용하여 사람들의 일거수일투족을 면밀히 관찰할 수 있습니다. 물증과 단서도 중요하지만 율리아는 사람들의 미세한 표정 변화와 몸짓에서 진위를 더욱 확실하게 가려낼 수 있다고 믿습니다. 물론 율리아가 오직 이 재능만으로 탐정 역할을 수행하는 것은 아닙니다. 추리와 탐문 등 명탐정으로서의 능력도 겸비하고 있는데, 그녀의 부족한 부분을 채워주는 건 전남편이자 유일하게 율리아가 공황장애 없이 신체적 접촉을 받아들일 수 있는 현직 경찰 시드니입니다.

 

의뢰인 PG가 죽은 남자의 사진을 찍은 날은 목재회사의 지분을 가진 모트 집안사람들이 저택에 모여 주주총회를 연 날입니다. 말하자면 PG가 범인이 아니라면 그의 휴대폰을 손에 넣어 죽은 남자의 사진을 찍을 수 있었던 건 그날 저택에 있던 사람 중 한 명이란 뜻입니다. PG를 포함한 네 명의 육촌, PG의 아내, 저택의 가정부 등 여섯 명을 상대로 율리아는 집요한 심문과 함께 자신만의 방식으로 면밀한 관찰을 이어갑니다. 그러던 중 사진 속 죽은 남자의 신원이 밝혀지자 율리아는 단순한 살인사건이 아니라 모트 집안의 어두운 과거와 현재가 복잡하게 뒤얽힌 계획된 살인임을 확신합니다.

 

저택에 모인 인물 중에 범인이 있으며, 탐정은 그들과 함께 지내며 진범을 밝혀낸다는 다소 고전적인 구도를 지녔지만, 율리아의 캐릭터가 워낙 특이한데다 누구 하나 정상적으로보이지 않는 모트 집안사람들의 비밀과 거짓말 때문에 고전미 이상의 새로움을 맛볼 수 있습니다. 특히 작가는 집안사람 모두가 사진 속 죽은 자와 오랫동안 일그러지고 비틀린 관계를 이어왔다는 설정을 통해 율리아가 특별한 재능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도록 판을 깔아놓았습니다. 즉 물증이나 단서보다 용의자의 표정과 말투를 통해 진실과 거짓말을 가늠할 수 있는 사건으로 설정했다는 뜻입니다.

 

재미있게 읽긴 했지만 이어질 시리즈에 대한 기대감보다는 아쉬움이 더 많이 남았는데, 가장 큰 이유는 공교롭게도 주인공 율리아의 탐정으로서의 캐릭터 때문입니다. 지금껏 본 적 없는 독특한 탐정인 건 맞지만, 역동성과는 거리가 먼 그녀의 특별한 재능이 오히려 미스터리의 긴장감을 느슨하게 만든 게 사실입니다. 발로 뛰며 추리와 탐문과 단서 찾기를 거듭하는 탐정 본연의 자세라기보다는 마치 심리탐정이란 타이틀이 더 어울려 보였는데 이 때문에 탐정 주인공에게 기대되는 미덕들이 제대로 발휘되지 못했다는 생각입니다. ‘율리아 스타르크 시리즈가 독자의 호응을 얻으려면 그녀만의 특별한 재능에 못잖게 탐정이라면 갖춰야 할 당연한 매력이 좀더 풍성하게 그려져야 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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