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정 없는 검사의 사투 표정 없는 검사 시리즈
나카야마 시치리 지음, 문지원 옮김 / 블루홀식스(블루홀6)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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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근시간대의 기시와다 역 앞에서 끔찍한 묻지마 살인사건이 벌어집니다. 30대 남자 사사키요가 차로 세 명을 치어죽인 뒤 칼로 네 명을 살해한 것입니다. 대학 졸업 후 열심히 노력했음에도 아무것도 손에 쥘 수 없었던 잃어버린 세대라 주장하며 사회에 복수하려 했다는 그에게선 후회나 뉘우침이라곤 전혀 찾아볼 수 없습니다. 그런데 사사키요를 지지하는 목소리가 인터넷에서 심심찮게 흘러나오는 가운데 사건을 담당한 오사카지검에서 우편물을 이용한 폭탄테러가 벌어지고, 곧이어 로스트 르상티망이란 자가 사사키요를 석방하라!”는 범행성명을 내는 일이 벌어집니다. 오사카지검 에이스 후와 슌타로가 두 사건을 모두 맡지만, 폭탄테러는 사방에서 빈발하고 잃어버린 세대를 지지하는 목소리도 점점 더 커져만 갑니다.


 

표정 없는 검사후와 슌타로의 세 번째 이야기입니다. 전작의 서평에 썼던 두 주인공에 대한 소개를 인용하면... 후와 슌타로는 이른바 能面’, 즉 일본 전통극 ’()에 쓰이는 가면을 쓴 듯 그 표정에 전혀 변화가 없는 기계와도 같은 얼굴을 지니고 있습니다. 뛰어난 능력 덕분에 오사카지검의 에이스라 불리면서도 상대를 가리지 않는 무표정한 얼굴과 차가운 말투 때문에 사방이 적으로 둘러싸인 인물입니다. 그와 반대로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기분은 어떤지, 좀 전에 뭘 했는지 등 그야말로 머릿속의 모든 것이 얼굴에 고스란히 드러나는 사무관 소료 미하루가 후와의 곁을 지킵니다.

 

시리즈 1편에서 후와는 오사카부경(府警)의 치명적인 비리를 밝혀냄으로써 경찰은 물론 검찰 내부에서도 지탄을 받은 바 있습니다. 2편에서는 자신이 몸담고 있는 오사카지검 특수부의 비리를 조사하는 역할을 맡아 역시 내부의 적들과 힘겨운 싸움을 벌여야만 했습니다. 반면 표정 없는 검사의 사투에서는 검사라기보다는 현장을 뛰며 탐문과 단서 찾기에 전력을 다하는 형사 주인공에 가까운 활약을 펼칩니다. 물론 오사카부경과의 악연과 긴장은 계속 이어지지만 전작들에 비해선 배경정도로만 설정돼있습니다. ‘묻지마 살인사건과 연쇄 폭발물사건의 진상을 밝히는 형사에 가까운 검사후와의 사투가 독자의 눈길을 사로잡으면서 전작들과는 살짝 결이 다른 미스터리를 선보입니다.

 

일곱 명을 살해한 묻지마 살인범과 전대미문의 연쇄폭탄범의 만행은 개인의 문제냐? 국가와 사회의 책임이냐?”라는 뜻밖의 공방전을 초래합니다. ‘잃어버린 세대의 자포자기에 가까운 복수 살인극이 일부에게 공감을 일으킨 결과입니다. 또한 테러와는 거리가 멀었던 일본사회를 큰 충격에 빠뜨리기도 합니다. 하지만 언제나처럼 감정 없는 사법기계후와는 냉정하고 차가운 시선으로 사건에 골몰할 뿐입니다. 그에게 있어 근거 없는 추측과 추상적인 공방전은 아무런 의미도 없기 때문입니다. 사사키요의 기소는 별 문제가 없어 보이지만, 연쇄폭탄범에 대한 수사가 좀처럼 진척을 보이지 않자 상부의 압박과 언론의 비난이 거세지고, 2년 전 후와에게 호되게 당했던 오사카부경 역시 전방위적으로 그를 몰아세우지만 그런 것들은 그에겐 티끌만큼의 영향도 못 미칩니다.

사무관 미하루는 2년 가까이 후와의 그림자처럼 일한 덕분에 누구보다 그를 잘 안다고 여겼지만, 이번엔 그의 표정 없는 얼굴과 오로지 앞만 보고 수사하는 태도가 너무나도 강경해서 오히려 불안하게 느껴질 정도입니다. 그런 와중에 후와가 치명적인 위기에 빠지고 오사카부경이 어이없는 실수를 저지르면서 사태는 급변합니다. 미하루는 말할 것도 없고 오사카지검 전체가 동요하는 상황에 이르게 된 것입니다.

 

나카야마 시치리의 흡인력 높은 필력과 속도감 있는 전개도 좋았고, 사건들 역시 사이즈와 파괴력 모두 커서 재미있게 읽긴 했지만, 전작들에 비해 미스터리의 맛은 다소 싱겁게 느껴졌습니다. 얼개 자체가 단선적이기도 했고, ‘형사에 가까운 검사로서 열심히 분투하긴 했지만 후와가 딱히 일궈낸 성과도 눈에 띄지 않았으며, 비약에 가까운 추리가 등장하여 진범을 밝혀내는 반전 대목은 조금은 억지스럽게 읽혔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후와 슌타로는 히가시노 게이고가 창조한 가가 형사나 나쓰카와 소스케가 창조한 의사 구리하라 이치토처럼 이런 사람이 한 명쯤 실제로 존재한다면 좋겠다.”라는 열망을 품게 만드는 주인공으로서의 매력과 품격이 대단한 인물임에 분명합니다. 나카야마 시치리의 여러 시리즈 가운데 출간된 작품 수가 가장 적긴 하지만 앞으로 가장 기대되는 시리즈로 여기는 이유는 오로지 표정 없는 사법기계후와 슌타로의 캐릭터 때문입니다. 아직 일본에서도 출간소식이 없는 걸 보면 한국에선 빨라야 2026년에나 신작이 나올 것 같은데, 하루라도 빨리 후와 슌타로와 소료 미하루의 네 번째 이야기를 만날 수 있기를 기대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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