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는 무서운 꿈을 꾼다
우사미 마코토 지음, 이연승 옮김 / 블루홀식스(블루홀6)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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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책임한 엄마 때문에 사이비 종교시설에 얹혀살며 학교에서도 극심한 괴롭힘에 시달리던 8살 소년 와타루에겐 곧 태어날 엄마 뱃속의 동생과 학교에서 유일한 친구라 할 수 있는 아오토만이 희망이었습니다. 하지만 동생 마리나가 태어나고 얼마 후 끔찍한 비극이 벌어졌고 와타루는 모두와 헤어진 채 보육시설에서 홀로 자라야만 했습니다. 그리고 22년이 흐른 현재, 반찬가게 직원으로 외롭게 살아가던 와타루에게 뜻하지 않은 일이 벌어집니다. 엄청난 자산을 가진 제이슨 가오라는 투자자로부터 함께 일하자는 터무니없는 제안을 받은 것도 놀라웠지만 그의 사무실에서 어릴 적 헤어진 동생 마리나를 발견하자 와타루는 그대로 얼어붙고 맙니다.


 

소녀들은 밤을 걷는다’, ‘어리석은 자의 독’, ‘전망탑의 라푼젤’, ‘밤의 소리를 듣다에 이어 다섯 번째로 만난 우사미 마코토의 작품입니다. 다섯 편 모두 미스터리로 분류되긴 하지만 (‘밤의 소리를 듣다서평에 썼던 것처럼) 우사미 마코토의 작품은 정통 미스터리는 아니지만 어둡고 불길하면서도 애틋함이 녹아있는 독특한 분위기를 지니고 있어서 매번 새로운 장르를 접하는 듯한 특별한 경험을 만끽하게 됩니다.

 

아이는 무서운 꿈을 꾼다는 소재나 서사 면에서 지금껏 읽은 우사미 마코토의 그 어떤 작품과도 유사점이 없는 특이한 이야기를 다룹니다. 신비로운 능력을 지닌 마족(魔族)이 등장하고 코로나19를 연상시키는 치명적인 바이러스로 인해 전 인류가 위기에 빠지는 상황이 전개됩니다. 하지만 이야기의 핵심은 가족에 관한 것입니다. 가족 중 누군가는 무한한 그리움과 애정의 대상이지만, 또 다른 누군가는 증오와 살의의 대상이기도 합니다. 그들은 오랜 시간에 걸쳐 쉽사리 잊을 수도 또는 용서할 수도 없는 애증을 품어왔는데, 우연과 필연이 뒤섞인 가운데 한 자리에 모이게 되면서 더는 미룰 수 없는 가혹한 상황에 처하고 맙니다.

어떻게 궁리해 봐도 도저히 하나의 이야기로 엮기 어려워 보이는 소재들이지만, 우사미 마코토는 특유의 어둡고 불길하면서도 애틋함이 녹아있는서사를 통해 한 편의 독특한 판타지 미스터리를 창조해냈습니다.

 

사이비 종교시설과 학교에서 끔찍한 악몽에 시달리던 8살 소년 와타루에게 유일하게 손을 내민 건 파란 눈의 전학생 아오토였습니다. 그리고 와타루는 뜻밖의 사건들을 통해 아오토와 그의 가족이 이능력을 가진 기이한 종족임을 알아챕니다. 아오토 덕분에 난생 처음 가족의 온기와 훈훈함을 맛보기도 했지만, 와타루는 얼마 후 닥친 엄청난 비극 탓에 가족은 물론 아오토 일족과도 헤어지게 됩니다. 그리고 22년이 지난 어느 날, 와타루는 증오의 대상이던 어머니, 그리움의 대상이던 여동생 마리나는 물론 아오토 일족과도 재회합니다. 하지만 와타루는 얼마 안 가 이 재회가 결코 우연이 아니었음을 깨닫곤 큰 충격에 빠집니다. 또한 아오토 일족의 오랜 비극과 비밀을 알게 되면서 말할 수 없는 복잡한 감정에 휩싸입니다.

 

사실 등장인물들의 사연 많은 관계, 마족의 정체와 비밀, 치명적인 바이러스 창궐의 이유 등이 미스터리 서사의 핵심이긴 하지만 동시에 초대형 스포일러이기도 해서 이 작품을 읽지 않은 독자에겐 저의 서평이 뜬구름 잡는 이야기처럼 읽힐 수도 있습니다. 다만 우사미 마코토의 전작들을 통해 그녀의 팬이 된 독자라면 일단 믿고읽을 것을 추천하고 싶고, 혹시 이 작품으로 우사미 마코토를 처음 만난 뒤 다소 당황한 독자라면 그녀의 전작 가운데 어리석은 자의 독을 꼭 읽어볼 것을 권하고 싶습니다. (다소 취향을 탈 수 있긴 하지만 소녀들은 밤을 걷는다도 추천하고 싶습니다) 그 어느 미스터리 작가보다 개성 강한 세계관을 지니고 있어서 모든 작품이 특별하긴 하지만 일단 그녀의 필력을 제대로 맛보려면 어리석은 자의 독이 적절한 텍스트라 생각되기 때문입니다.

 

개인적인 바람이라면 매번 새로운 장르와 독특한 이야기를 접하는 것도 괜찮은 일이지만, 가능하다면 미스터리 색채가 진한 우사미 마코토의 작품을 읽어보고 싶다는 점입니다. 일본 출간작 가운데 그런 작품이 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혹시 없다면 어리석은 자의 독과 비슷한 톤의 작품이라도 두 손 들고 환영하고 싶은 마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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