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의 카르테 0 - 새로운 시작 아르테 오리지널 10
나쓰카와 소스케 지음, 백지은 옮김 / arte(아르테) / 2018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신의 카르테 1~3’은 나가노 현의 소도시 마쓰모토에 위치한 혼조병원의 소화기내과 의사 구리하라 이치토가 주인공인 따뜻하고 감동적인 메디컬 소설입니다. 구리하라는 어딘가 4차원 같은 인상이 짙은 인물입니다. 근대 소설가 나쓰메 소세키의 광팬으로 그의 소설을 줄줄 외우고 다니는 것은 물론 말투까지 고풍스럽기 그지없고, 뛰어난 의술과 함께 오직 환자의 미소만 생각하는 선한 능력자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입이 험하고 차림새도 영 허술한데다 자신을 근면성실의 전형이라 자화자찬하기 때문입니다. 더구나 환자를 끌어들이는 구리하라라는 별명을 얻을 정도로 외래든 응급실이든 그가 나타나는 곳엔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많은 환자가 몰려들어서 동료의사와 간호사들로부터 장난기 섞인 조롱을 받기도 합니다.

 

신의 카르테 0’는 구리하라가 아직 의사가 되기 전, 그러니까 시나노 의대 졸업반 시절부터 혼조병원에 레지던트로 들어와 첫 환자를 담당하게 된 무렵까지의 이야기를 담은 프리퀄입니다. 모두 네 편의 단편이 실려 있는데, 비단 구리하라와 그의 절친 동기생들의 과거뿐 아니라 그가 몸담고 있는 혼조병원이 급변하는 의료 환경을 헤쳐 온 이야기, 산악 사진가이자 훗날 구리하라와 결혼하는 하루나의 사연도 함께 실려 있어서 단순한 프리퀄 이상의 재미와 감동을 만끽할 수 있습니다.

 

동틀 무렵

구리하라가 절친인 신도 다쓰야, 스나야마 지로 등과 함께 시나노 의대 기숙사 아리아케에서 보낸 날들을 그린 이야기로, 예비의사로서의 고민과 청춘물의 재미를 함께 맛볼 수 있습니다.

 

약속이 지켜질 때

혼조병원이 ‘24시간 365일 진료간판을 처음 달았던 무렵의 이야기로, 이타가키(왕너구리), 나이토(늙은여우), 이누이 등의 의료진과 수익만 앞세우는 사무장 가나야마가 사사건건 충돌하는 에피소드와 함께 구리하라가 면접을 통해 혼조병원의 일원이 되는 과정이 그려집니다.

 

신의 카르테

레지던트 4개월차를 맞이한 구리하라가 드디어 첫 내시경 진찰과 첫 담당환자를 경험하는 이야기로, 이타가키(왕너구리)의 지도 아래 조금씩 성장해나가는 구리하라를 지켜볼 수 있습니다.

 

겨울 산의 기록

하루나가 겨울 산에서 조난당한 남자를 구한 뒤 오두막에서 만난 부부와 대화를 나누며 자신의 과거를 조금씩 들려줍니다. 구리하라와 사귄 지 1년쯤 된 시절의 하루나의 이야기입니다.

 

전작들을 읽어 온 독자에겐 무척 각별하게 읽힐 만한 이야기들이지만, 프리퀄이란 특성 상 전작들을 안 읽은 경우 이해하기도, 공감하기도 어려운 내용들인 게 사실입니다. 물론 시리즈에 따라 프리퀄을 먼저 읽고 본편을 읽는 것도 괜찮은 경우가 있긴 하지만, ‘신의 카르테 0’는 여러 인물들의 이야기를 단편 형식으로 꾸민 작품이라 아무래도 전작들이 선행필수라는 생각입니다.

 

이 작품 뒤에 이어지는 시리즈 마지막 작품 신의 카르테 4’(일본에서 2019년에 출간됐는데 지금까지 새 작품 소식이 없어서 마지막이라는 표현을 썼습니다)는 혼조병원을 떠나 시나노 대학 의학부에 들어간 구리하라의 이야기를 그립니다. 3년 전쯤 이미 읽은 작품이긴 한데, 1편부터 순서대로 정주행하다 보니 다시 한 번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구리하라가 어떤 인물인지도 제대로 모른 채 읽었을 때와는 달리 새롭고 특별한 감흥을 느낄 수 있을 것 같기 때문입니다.

 

신의 카르테는 비록 현실에 존재하지 않을 것 같은 의사 구리하라가 등장하는 판타지에 가깝지만 재미와 감동을 동시에 맛볼 수 있는 보기 드문 메디컬 소설입니다. 혹시 이 서평을 보고 궁금증을 느낀 독자라면 시리즈 첫 편부터 찬찬히 그 재미와 감동을 느껴볼 것을 추천하고 싶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