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버 1
오쿠다 히데오 지음, 송태욱 옮김 / 은행나무 / 2024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군마현과 도치기현을 흐르는 와타라세강에서 두 구의 젊은 여성 시신이 발견됩니다. 문제는 시신의 상태와 시신을 유기한 장소가 10년 전 벌어진 미제 연쇄살인사건과 판박이처럼 동일하다는 점입니다. 당시 체포된 유력한 용의자 이케다는 증거불충분으로 풀려났고, 이후 10년 동안 그 사건은 군마현경과 도치키현경의 수치이자 숙제로 남아있습니다. 그런데 동일범인지 모방범인지 가늠할 수 없는 사건이 재발하자 두 현경은 남다른 각오로 수사에 임합니다. 그리고 집요한 탐문과 제보 덕분에 세 명의 남자를 용의선상에 올립니다. 하지만 모두 심증만 있을 뿐 확실한 물증이 없다 보니 수사는 좀처럼 앞으로 나아가지 못합니다.

 

“‘양들의 테러리스트’(구판 제목 올림픽의 몸값’)죄의 궤적에 이어 쏘아 올린 홈런이라는 출판사 소개글 때문에 혹시 두 작품의 주인공인 경시청 수사15계의 오치아이 마사오가 등장하는 1960년대 배경의 미스터리가 아닐까, 기대했는데 리버는 경찰소설+범죄미스터리+군상극이라는 큰 틀은 앞선 두 작품과 비슷하지만 주인공도 시대적 배경도 전혀 다른 스탠드얼론입니다.

 

10년 전, 두 시신 모두 동일범의 소행이라 확신한 두 현경은 합동수사본부를 설치했지만, 경쟁심과 경계심이 지나쳤던 탓에 오히려 부작용만 일으켰습니다. 그 와중에 도치기현경이 무리한 수사를 진행하다가 모든 걸 망쳐버리고 말았습니다. 이런 전력 때문에 10년 만에 재발한 사건을 대하는 두 현경의 태도는 말 그대로 죽을 각오그 자체입니다. 무엇보다 동일범의 소행이라면 왜 10년의 공백이 있었으며 굳이 같은 장소에 같은 모양새로 시신을 유기한 이유는 무엇인지, 혹시 모방범의 소행이라면 어떻게 자세한 범행 정황을 알아낼 수 있었는지 등 모든 것이 모호함 투성이라 두 현경의 수사는 각오와 달리 초반부터 지지부진할 따름입니다.

 

리버1~2권 합쳐 800페이지가 넘는 방대한 분량의 작품인데, 사건의 규모에 비해 다소 과한 분량이 필요했던 건 누가 범인?’보다도 사건에 연루된 여러 인물들의 복잡다단한 감정과 태도에 더 주력한 군상극이기 때문입니다. 다만, 비슷한 스케일을 지닌 미야베 미유키의 모방범이 원톱 주인공을 내세워 극적이고 감정적인 스토리를 자아냈다면, ‘리버는 서로 다른 생각과 집념에 사로잡힌 여러 주인공이 이끄는 냉정한 하드보일드 스타일의 군상극이라 할 수 있습니다. 10년 전 사건을 맡았던 전직 형사, 10년 전 사건 피해자의 아버지, 첫 살인사건 취재에 바짝 긴장한 신참 기자, 범죄심리학에 능통한 대학 조교수, 그리고 유력한 용의자로 지목된 세 명의 남자 등 다양한 인물들의 일거수일투족이 두 현경의 수사과정 못잖게 큰 비중을 차지합니다.


 

몰입하며 따라갈 원톱 주인공도 없고, 일찌감치 세 명의 용의자가 대두돼서 누가 범인?’이라는 흥미가 반감된 듯 보이지만, 오쿠다 히데오 범죄미스터리 특유의 집요한 디테일 속에 흐르는 불온한 긴장감은 훨씬 더 강렬한 흡인력을 지니고 있어서 미야베 미유키의 모방범과는 전혀 다른 스타일의 매력을 발산합니다.

집요한 디테일10년 전의 실패를 만회하려는 두 현경의 절박한 수사 과정을 꼼꼼하게 그린 대목뿐 아니라 각기 다른 이유로, 또 각기 다른 용의자에 주목하며 진범 찾기에 집착하는 여러 주인공들의 행적에서도 목격됩니다. 다소 느슨하게 읽힐 여지도 있지만 독자는 페이지를 넘길수록 디테일의 힘에 빠져들게 되고, 그 안에 흐르는 불온한 긴장감에 사로잡히게 됩니다. 그 긴장감의 이유 중 하나는 세 명의 용의자 중 누가 범인이냐에 따라 여러 주인공들이 맞이하게 될 엔딩이 제각각이란 점, 즉 자신이 주목한 용의자가 범인이 아니라면 설령 사건이 해결된다 해도 조금도 만족스럽거나 행복한 엔딩을 맞이하지 못할 인물도 있다는 점 때문입니다. 말하자면 진실보다도 자신의 집착에 더 몰두하는 인물들이 펼치는 군상극이야말로 리버의 가장 큰 미덕이라는 생각입니다.

 

말초적인 재미나 감정에 호소하는 짜릿함을 찾아볼 순 없지만 건조하고 냉정하면서도 묵직하게 밀어붙이는 범죄미스터리의 기본을 맛보고 싶은 독자라면 리버를 비롯한 오쿠다 히데오의 작품들을 꼭 읽어볼 것을 권하고 싶습니다. 1960년대 경시청 수사1과 오치아이 마사오의 세 번째 이야기도 좋고, ‘리버에 등장한 군마현경과 도치기현경의 인물들의 두 번째 활약도 좋으니 머잖아 오쿠다 히데오의 새 범죄 미스터리와 다시 만날 수 있기를 기대해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