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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과 저녁의 범죄 ㅣ 가노 라이타 시리즈 2
후루타 덴 지음, 문지원 옮김 / 블루홀식스(블루홀6) / 2024년 9월
평점 :
10살 소년 아사히는 피가 섞이지 않은 동생 유히와 함께 아버지의 낡은 차를 타고 전국을 떠돌며 좀도둑으로 살아갑니다. 그러던 중 아버지의 죽음으로 아동보호소에 들어간 두 사람은 다른 집에 입양되며 헤어집니다. 이후 10년 만에 유히와 재회한 아사히는 유히가 꾸민 납치 자작극에 가담하게 되는데, 범행은 계획대로 진행됐지만 뜻밖의 사태에 직면하고 맙니다. 그로부터 8년 후, 가미쿠라에서 엄마가 방치한 어린 남매 중 여동생이 아사하고 오빠가 탈진 상태로 발견되는 사건이 벌어집니다. 가나가와 현경의 가라스마는 체포된 엄마를 취조하지만 그녀의 본명조차 알아내지 못한 채 고전합니다. 남매를 발견했던 파출소 순경 가노 라이타는 수사에 개입할 순 없었지만 관련자들의 언행을 통해 사건의 진상과 이면을 조금씩 눈치 챕니다.
단편집 ‘거짓의 봄’에 이은 ‘가노 라이타 시리즈’ 두 번째 작품입니다. 가노는 미스터리 주인공치곤 독특한 캐릭터를 지녔는데, 그는 가나가와 현경 수사1과에서 ‘자백 전문 가노’라는 별명을 얻을 만큼 탁월한 능력자였지만 불의의 사건으로 인해 지금은 가미쿠라 역전 파출소에서 근무하는 46살의 순경입니다. 그는 단서나 증거보다 면대면 대화를 통해 용의자 스스로 무너지게 하거나 자백하게 만드는 특별한 능력을 갖고 있습니다. (‘거짓의 봄’ 서평에 쓴 내용을 인용하면) 용의자들은 가노의 ‘허허실실 작전’에 휘말려 자기도 모르게 진실과 거짓을 반복하다가 어느새 깊은 함정에 빠졌음을 깨닫게 됩니다. 가노는 표정 하나, 땀방울 하나를 통해 진술의 허점을 파악하면서 코너로 몰아가다가 결정적인 한 방으로 용의자를 무너뜨립니다.
‘가노 라이타 시리즈’의 또 다른 특징은 ‘도서(倒敍)추리’, 즉 처음부터 범인이 공개되는 것은 물론 시점 자체도 범인 입장에서 전개된다는 점입니다. ‘아침과 저녁의 범죄’의 경우 전체가 3인칭 시점이긴 하지만, 1부에서 납치 자작극을 벌인 아사히와 유히의 죄가 2부에서 주인공 가노에 의해 밝혀지는 구조라서 ‘넓은 의미의 도서추리’라고 할 수 있습니다. 독자로선 ‘주인공이 어떻게 범인의 정체와 사건의 진상을 알아내는가?’에 집중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누가 범인?’이 초점인 일반 미스터리보다 훨씬 더 정교하고 빈틈없는 설계가 필요한 장르입니다.
‘아침과 저녁의 범죄’에는 18년에 걸쳐 세 개의 사건이 등장합니다. 간단하게 요약하면,
①2001년. 아버지의 죽음으로 아사히와 유히는 서로 다른 인생을 살게 된다. 단, 아버지의 죽음은 결코 평범하지 않았다.
②2011년. 우연히 재회한 아사히와 유히는 명문가의 딸인 고1 마쓰마 미오리와 함께 납치 자작극을 실행한다. 자작극은 예상치 못한 재앙에 가까운 사태를 초래한다.
③2019년. 남매 사건을 담당한 현경 수사1과 가라스마가 막다른 골목에 부딪힌 사이, 파출소 순경인 가노가 남매 사건의 진상은 물론 과거 사건들과의 접점을 포착한다.
등장인물도 많고, 이야기도 워낙 복잡한데다 도서추리라는 난이도 높은 형식까지 가미돼있어서 읽는 내내 작가의 필력에 여러 번 감탄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모든 사건들이 하나의 지점으로 수렴되는 클라이맥스와 엔딩에선 많은 복선들이 빠짐없이 회수되는 짜릿함을 맛볼 수 있었고, 등장인물들의 복잡하고 불행했던 과거사들과 현재 사건의 연결점 역시 설득력 있게 그려져서 저절로 고개가 끄덕여지곤 했습니다. 그 덕분에 이 작품의 중요한 소재인 아동학대와 가정폭력의 무게감이나 비극성이 더욱 도드라져 보이기도 했습니다.
다 읽은 뒤 아쉽게 느껴진 점들이 대부분 주인공 가노와 관련됐다는 건 무척 아이러니한 일입니다. 우선 도서추리의 특성 상 가노의 역할이 ‘선발투수’보다는 ‘마무리투수’에 가까운 건 당연한 일이지만, 분량과 비중 모두 기대에 못 미친 게 사실입니다. 또한 ‘거짓의 봄’에선 용의자를 스스로 무너지게 하거나 자백하게 만드는 가노의 특별한 능력이 일목요연하고 리얼하게 그려졌지만, 이번에는 다소 작위적이거나 비약적으로 느껴지곤 했습니다. “저걸 한눈에 알아봤다고?”라는 의아함과 함께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천재적인 명탐정으로 갑자기 업그레이드 된 듯한 위화감은 이 작품에서 가장 아쉬운 점이었습니다.
‘아침과 저녁의 범죄’(2021) 이후 아직까진 일본에서도 시리즈 신작 소식이 없습니다. 가노에 관한 아쉬움이 진하게 남긴 했지만 ‘아침과 저녁의 범죄’는 미스터리 자체로는 무척 재미있고 완성도 높은 작품이란 생각입니다. 신작 소식이 들리면 주저하지 않고 찾아 읽을 예정인데, 신작에선 가노의 분량과 비중도 좀 높아지고, 그의 특별한 능력도 의아함이나 위화감 없이 그려지기를 기대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