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트리플 세븐 ㅣ 킬러 시리즈 3
이사카 고타로 지음, 김은모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4년 9월
평점 :
무당벌레라는 별명을 가진 나나오는 달리는 신칸센에서 벌어진 킬러들의 살육전(‘마리아비틀’) 속에서 살아남은 뒤 업계에서 전설적인 존재로 회자되고 있지만, 실은 뒤로 넘어져도 코가 깨질 정도로 지지리도 운이 없는, 그야말로 머피의 법칙의 산 증인이라 할 수 있는 소심남입니다. 그런 그에게 중개업자 마리아가 아주 쉽고 간단한 임무를 맡깁니다. 호텔 투숙객에게 그림액자 하나를 배달하는 것입니다. 자신에게 들러붙은 불운에 치를 떨던 나나오도 이번 임무만큼은 마음 편하게 마칠 수 있으리라 기대했지만, 호텔 20층 객실의 문을 여는 순간 불운은 또다시 나나오에게 큰 시련을 안깁니다. 그리고 그로부터 몇 시간동안 호텔엔 수많은 시체들이 수북이 쌓이고, 나나오는 영문도 모른 채 숱한 죽음의 위기를 겪게 됩니다.
시속 200km로 달리는 모리오카 행 신칸센을 시체열차로 만든 전현직 킬러들의 희대의 살육극을 그린 ‘마리아비틀’의 후속작이자 ‘킬러 시리즈’의 네 번째 작품입니다. 피범벅이 된 열차에서 유일하게 살아남아 전설이 된 나나오가 이번에는 그림액자 배달 차 들렀던 고급호텔에서 벌어지는 킬러들의 대결에 휘말립니다. 객실만 제대로 찾아갔다면, 또 로비로 내려가는 엘리베이터만 제대로 탔다면 아무 문제없이 평온한 하루를 보냈겠지만, 불운과 악운의 신이 나나오를 다시 한 번 구렁텅이로 몰아넣었기 때문입니다.
외형만 보면 냉혹한 킬러들이 벌이는 피비린내 진동하는 하드코어 액션물 같지만, 이사카 고타로의 ‘킬러 시리즈’는 아이러니하게도 코믹한 요소가 훨씬 더 강한 독특한 작품입니다. 나나오의 별명인 무당벌레를 비롯하여 ‘트리플 세븐’에는 콜라, 소다, 베개, 담요, 코코 등 특이한 별명과 함께 별난 캐릭터를 지닌 킬러들이 등장합니다. 무자비한 폭탄 전문가였지만 예기치 못한 식중독 사고 후 자기계발서에 빠져든 인물도 있고, 어려서부터 내내 외모지상주의에 억눌렸다가 특별한 계기를 통해 재치 있는 킬러 콤비가 된 여성이나 60대지만 뛰어난 해킹 실력을 지닌 할머니 업자도 있습니다. 그야말로 킬러 같지 않은 킬러들이 종횡무진 활약을 펼친다고 할까요?
물론 이들의 대척점에는 그야말로 전형적인 하드코어 액션물에 어울리는 킬러들도 등장합니다. 바람총을 이용하는 가학적인 6인조, 어깨를 탈구시킨 뒤 잔인한 고문 끝에 사람을 죽이는 킬러, 전신마취 상태의 피해자를 산 채로 해부하는 사이코패스 등이 그들인데, 독자 입장에선 주인공 나나오가 뜻하지 않게 휘말린 이 무시무시한 킬러들과의 대결에서 어떻게 살아남게 될지 웃음과 긴장감을 번갈아 느끼며 페이지를 넘기게 됩니다.
‘마리아비틀’이 무작위로 상대를 죽이는 킬러들의 풀 리그 게임이었다면, ‘트리플 세븐’은 비교적 적과 아군이 명료하게 구분되는 구도를 지닙니다. 치명적인 비밀번호를 알고 있는 탓에 목숨을 잃을 위기에 빠진 가미노 유카라는 한 여성을 사이에 두고 ‘나나오 팀’과 ‘6인조 팀’이 벌이는 살육극이 기본 뼈대입니다. 엉겁결에 가미노의 보호자가 된 나나오가 사방에서 등장하는 킬러들의 틈바구니에서 숱한 사선을 넘나드는 한편 저주와도 같은 불운과도 싸워야 하는 이중고에 시달리는 장면은 말 그대로 웃을 수도, 울 수도 없는 아이러니 그 자체입니다. 마지막 반전에 이르기까지 한시도 마음을 놓을 수 없는 격전이 벌어지는데, 그래선지 360페이지라는, 안 그래도 짧아 보이는 분량이 더 짧게 느껴질 수밖에 없습니다.
이사카 고타로의 ‘킬러 시리즈’는 ‘그래스호퍼’ - ‘마리아비틀’ - ‘악스’ - ‘트리플 세븐’으로 이어지는데, 재미있는 건 각 작품의 일본 출간연도가 2004년, 2010년, 2017년, 2023년이란 점입니다. 거의 6~7년에 한 편씩 나온 셈인데, 나나오가 주인공을 맡은 ‘마리아비틀’과 ‘트리플 세븐’은 내용 상으론 대략 1년 사이에 벌어진 일이지만, 출간연도 기준으로는 무려 13년이란 간격이 있습니다. 조연들의 경우 네 작품에 걸쳐 직접 등장하거나 간접적으로 언급되는 경우도 종종 있어서 마치 불로불사의 존재로 보이기도 하는데, 이 역시 시리즈를 이어 읽다 보면 맛볼 수 있는 소소한 재미이기도 합니다. 물론 이런 설정은 굳이 시대적 배경이나 문명의 발전을 이야기에 녹여 넣을 필요 없는, 순수한 킬러들의 이야기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일 것입니다.
‘킬러 시리즈’의 다음 작품이 언제 출간될지는 알 수 없는 일이지만, 이사카 고타로 특유의 유쾌한 킬러 이야기가 너무 오랜 공백 없이 독자들을 찾아와주기를 바랄 뿐입니다. 한 가지 더 바람이 있다면 다음 편의 주인공 역시 불운의 화신인 나나오가 맡아줬으면 하는 점인데, ‘마리아비틀’과 ‘트리플 세븐’을 뛰어넘는 참신하고 새로운 설정과 함께 ‘제대로 폼 나는 킬러 나나오’로 컴백해주기를 기대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