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 재능
피터 스완슨 지음, 신솔잎 옮김 / 푸른숲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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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대 후반인 마사는 남편 앨런 때문에 말 못할 두려움에 휩싸입니다. 셔츠에서 의문의 핏자국을 발견한 뒤 뉴스를 검색해보니, 앨런이 출장을 다녀온 곳마다 여성을 상대로 한 끔찍한 살인사건이 벌어졌기 때문입니다. 그런 경우가 무려 다섯 번이 넘었지만, 아무 증거도 없이 오직 심증만으로 남편을 고발할 수도 없는 상황. 결국 마사는 대학원 시절, 자신을 한 남자에게서 구해줬던 릴리 킨트너에게 도움을 청합니다. 마사의 의심에 공감한 릴리는 직접 앨런을 미행하며 그의 행동을 관찰하기로 합니다. 하지만 릴리는 앨런을 미행하는 게 자신만이 아니란 걸 깨닫곤 큰 충격에 빠집니다.

 

살인 재능아홉 명의 목숨등 피터 스완슨의 작품 두 편이 비슷한 시기에 출간돼서 잠시 고민하다가 원조격인 푸른숲에서 출간한 살인 재능을 먼저 읽기로 했습니다. 사실 아무 정보도 없이 읽기 시작했는데, 초반 설정 소개가 끝날 무렵 갑자기 릴리 킨트너라는 이름이 등장해서 깜짝 놀랐습니다. 릴리는 한국 독자에게 피터 스완슨의 이름을 강렬하게 각인시킨 죽여 마땅한 사람들의 주인공이며, 2023년에 출간된 살려 마땅한 사람들로 오랜만에 다시 만났던 매력적인 인물이기 때문입니다. 개인적으론 살인 재능릴리 킨트너 시리즈의 세 번째 작품이라고 부르고 싶은데, 푸른숲에서 이 점을 좀더 홍보했더라면 더 큰 관심을 끌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요약한 줄거리대로 이야기는 마사가 남편 앨런이 연쇄살인마가 아닐까 의심하며 두려움에 휩싸이는 장면들로 시작됩니다. 50페이지가 채 안 되는 분량이지만 초반 장면들은 지금껏 읽은 피터 스완슨의 작품과는 결이 많이 다른 전형적인 심리 스릴러 서사에, 건조하기 짝이 없는 문체라서 다소 낯설게 느껴진 게 사실입니다. 그러다가 릴리의 등장과 함께 피터 스완슨 특유의 속도감 넘치는 서스펜스 스릴러로 탈바꿈합니다. 전작들을 읽지 않은 독자에게 최대한 스포일러 없이 릴리를 소개하자면 이 세상에 존재해선 안 될 것들을 가차 없이 죽이는 똑똑하고 정의로운 연쇄살인마입니다. 13살에 첫 살인을 시작한 릴리는 전작들에서 유감없이 자신의 능력을 발휘하며 독자에게 짜릿한 쾌감을 선사해왔는데, 그래선지 릴리가 등장하는 순간 그 쾌감을 다시 맛볼 수 있다는 기대감이 급상승했습니다.

 

제목에서 연상할 수 있듯 이 작품엔 살인에 관한 한 특별한 재능을 지닌 인물이 등장합니다. 릴리와 비슷한 시기인 11살에 첫 살인을 시작한 그는 지금까지 모두 26명의 목숨을 빼앗는 동안 단 한 번도 경찰의 수사망에 걸려든 적이 없습니다. 같은 방법을 두 번 이상 쓰지 않고 전혀 다른 사건처럼 보이게 조작함으로써 30년 가까이 완전범죄를 저질러 온 것입니다. 그의 유일한 고민은 너무 쉽고 지루한 살인 대신 좀더 짜릿한, 그러니까 아슬아슬한 스릴감 혹은 쾌감과 우월감을 만끽할 수 있는 특별한 살인을 갈망하지만 좀처럼 그런 기회가 찾아오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그런 그가 모처럼 만족감을 느끼며 연쇄살인을 자행하고 있던 중 뜻밖의 인물과 마주칩니다. 바로 15년 전, 첫눈에 자신과 같은 과인 괴물임을 알아봤던, 그리고 유일하게 자신을 겁먹게 만들었던 릴리입니다. 말하자면 살인 재능에 관한 한 천재적이라 할 수 있는 두 사람이 누군가 하나가 죽지 않으면 끝나지 않을 무자비한 게임을 시작하게 된 것입니다.

 

재미있게 읽었지만 가장 아쉬운 건 막 재미있어지려 하는 지점에서 갑자기 이야기가 엔딩으로 치닫는 점입니다. 마치 기승전결 구도에서 이 빠진 채 막바로 에서 로 달려간 느낌이랄까요? ‘릴리 킨트너 시리즈전작 두 편이 450~480페이지였던 반면 살인 재능344페이지에 불과한데, 그래선지 딱 100페이지 정도가 더 길었다면, 그래서 그 자리에 에 해당하는 숨 가쁜 액션 스릴러의 묘미가 채워졌더라면 좋았을 거란 아쉬움이 진하게 남았습니다.

 

한국에 처음 소개된 죽여 마땅한 사람들이 너무 재미있었던 탓에 그 후로 나온 작품들이 독자의 눈높이에 부응하지 못했던 게 사실이지만, 그래도 피터 스완슨은 늘 신작을 기다리게 만드는 작가 중 한 명입니다. 아무 정보 없이 읽다가 뜻밖에 릴리 킨트너를 다시 만나서 반가웠고, 어쩌면 머잖아 그녀의 네 번째 이야기가 나올지도 모른다는 기대감을 품게 됐습니다. 다만 다음 작품은 좀더 두툼한 분량에 풍성하고 볼륨감 넘치는 이야기가 실리기를 바라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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