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뜻한 손
이시모치 아사미 지음, 주자덕 옮김 / 아프로스미디어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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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물학 조교인 히로코와 평범한 회사원 타쿠미는 각각 긴짱, 무짱이라는 파트너와 동거 중입니다. 하지만 긴짱과 무짱은 실은 인간의 생명 에너지를 먹고 사는 미지의 생명체입니다. 손을 맞대는 등의 단순한 스킨십을 통해 상대의 잉여 에너지를 섭취하는 것입니다. 또한 혼란에 빠진 정신 상태를 안정시키기도 하고, 상대방의 영혼이 맑은지 탁한지도 알아낼 수 있습니다. 육체적인 사랑이 불가능함에도 불구하고 두 커플은 애정 이상의 관계를 유지하며 언제 종료될지 알 수 없는 기묘한 동거를 이어갑니다. 그런데 두 커플 주위에서 크고 작은 사건들이 발생합니다. 살인이나 성추행 등 중범죄부터 소소한 트러블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사건들이 벌어지는데, 긴짱과 무짱은 특유의 추리력으로 사건의 진상을 파악해냅니다.

 

무척 독특한 미스터리 작품입니다. 출판사 소개글대로 힐링과 로맨스 코드가 혼재된 것은 물론 주인공들의 캐릭터 때문에 판타지 미스터리로 분류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맛있고 맑은 에너지를 섭취하며 생명을 유지하는 긴짱과 무짱은 말하자면 피 대신 에너지를 갈구하는 평화주의 뱀파이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들을 동거 파트너로 삼은 평범한 인간 히로코와 타쿠미가 처음부터 그 사실을 알았던 건 아니지만, 긴짱과 무짱은 호감으로 시작된 관계가 무르익을 무렵 자신들의 정체를 고백하곤 서로에게 윈윈이 되는(한쪽은 필요한 에너지를 섭취할 수 있고, 또 한쪽은 과잉 섭취한 에너지를 내줌으로써 건강을 유지하는) 기묘한 동거를 시작하게 된 것입니다. 다만 육체적인 사랑도, 미래에 대한 약속도 할 수 없다 보니 남녀로서의 애정이 생길 리 만무하고, 또 언제 이 기묘한 동거가 갑자기 막을 내릴지 알 수 없다는 불안감이 히로코와 다쿠미를 꾸준히 동요하게 만들어서 독자 입장에선 기적(진짜 연인으로 발전?)을 바라거나 안쓰러운 시선으로 지켜볼 수밖에 없습니다.

 

이들 주변에서 크고 작은 사건이 벌어지고, 긴짱과 무짱이 탐정 역할을, 히로코와 타쿠미가 조수 역할을 하며 미스터리를 풀어가는 것이 이야기의 중심축입니다. 모두 7편의 연작단편으로 구성돼있는데, 대부분 살인이나 성추행 등 강력사건을 다루고 있긴 하지만 주인공들의 캐릭터에 걸맞게 무겁고 심각한 분위기보다는 일상 미스터리에 가까운 서사로 포장돼있습니다. 긴짱과 무짱의 특별한 추리능력이 천재탐정의 그것과 비슷하게 발휘되는 경우도 있고, 그들만의 에너지 섭취력만으로 범인을 제압하는 기발한 에피소드도 포함돼있어서 흥미롭게 읽을 수 있습니다.

 

미스터리만큼 관심을 끄는 건 과연 이 커플들이 진짜 연인이 될 수 있겠는가, 라는 점인데, 실은 작가는 중간중간 그럴 가능성이 전혀 없음을 내비쳐서 독자의 궁금증을 더욱 증폭시킵니다. 육체적인 사랑도 불가능하고, 남녀로서의 애정도 생겨나지 않는 관계지만 독자는 왠지 이들에게 그 후로 오랫동안 행복하게 살았습니다.”라는 엔딩이 주어지기를 바라게 되기 때문입니다. 이 궁금증은 결국 마지막 수록작에서 뜻밖의 반전과 함께 해소되는데, 뭉클함과 함께 애틋함까지 느끼게 만들어서 힐링+로맨스+판타지 미스터리에 잘 어울리는 결말이라는 생각입니다.

 

한국에 출간된 이시모치 아사미의 작품은 모두 열 편입니다. 그중 딱 절반을 읽었는데, 제가 준 평점은 다소 극과 극인 게 사실입니다. ‘따뜻한 손은 중간쯤이라고 할 수 있는 작품인데, 재미있게 읽긴 했지만 독한 미스터리를 좋아하는 제겐 조금은 심심하게 느껴졌고, 또한 제 취향과는 거리가 먼 판타지 요소가 깃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궁합이 잘 맞는 독자라면 재미 이상의 감동을 느낄 수도 있으니 다른 독자들의 서평을 참고해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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