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리
스티븐 킹 지음, 이은선 옮김 / 황금가지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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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의 기세가 최고조에 이른 2021년 여름. 파인더스 키퍼스 탐정사무소의 홀리 기브니는 실종된 딸 보니를 찾아달라는 한 어머니의 의뢰를 받습니다. 파트너인 피트 헌틀리는 코로나로 입원중이고, 비공식 조수로 도움을 주던 제롬과 바버라 남매는 작가의 꿈을 이루기 위해 바쁜 중이라 오롯이 홀리 홀로 수사에 나서게 됩니다. 보니의 실종은 당초 가출 혹은 평범한 사건처럼 보였지만, 홀리는 단서를 모으면서 연쇄 납치사건의 기미를 느꼈고 집요한 탐문과 조사 끝에 희미한 실마리를 찾아냅니다. 하지만 9년에 걸쳐 벌어진 여러 건의 납치가 은퇴한 유명 노교수 부부의 소행으로 추정되자 홀리는 혼란에 빠집니다. 동기와 목적이 무엇인지 가늠조차 되지 않는 상태에서 홀리는 노교수 부부 배후에 진짜 범인이 있다고 확신합니다.

 

홀리라는 제목에서 연상할 수 있듯 이 작품은 홀리의, 홀리에 의한, 홀리를 위한이야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녀는 원래 미스터 메르세데스에서 특이한 단역에 그칠 예정이었다. 그런데 내 심장을 훔쳐버렸다고 술회할 정도로 홀리 기브니라는 캐릭터에게 깊은 애정을 가진 스티븐 킹이 그녀의 모든 것을 그린 작품이기 때문입니다. 엽기적이고 끔찍한 연쇄 납치사건의 진상을 밝혀내는 집념 덩어리 탐정으로서, 또 어머니의 통제와 속박에서 벗어나 독립적인 삶을 추구해온 한 여성으로서 홀리의 과거와 현재를 심도 깊게 그린 이 작품에 홀리라는 제목이 붙은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여느 명탐정이나 그렇듯이) 홀리 기브니의 이력은 그야말로 숱한 고비와 사선을 넘어온 산전수전 그 자체입니다. ‘빌 호지스 3부작에서 조연으로 등장한 홀리는 상상을 초월하는 괴물들과 사투를 벌이며 존재감을 드러냈습니다. 이후 스승이자 동업자인 빌 호지스가 암으로 사망한 뒤 아웃사이더 1~2’에서 세컨드 주인공으로 처음 독립했고, ‘피가 흐르는 곳에’(동명의 중단편집 표제작)서는 처음으로 단독 주인공에 올랐습니다. 그리고 홀리는 오롯이 그녀에게만 스포트라이트를 맞춘 첫 장편소설입니다. 미스터리 주인공으로서의 미덕이나 매력이라곤 조금도 찾아보기 힘들었던 중년 아줌마홀리가 스티븐 킹의 전폭적인 애정을 받게 된 과정이 궁금하다면 전작들을 미리 읽어볼 것을 추천합니다. 작품 수가 많아 모두 읽기 힘들다면 데뷔작인 미스터 메르세데스와 중단편집 피가 흐르는 곳에정도만 읽어도 충분합니다.

 

시작과 함께 범인의 정체와 범행방법 및 목적이 모두 공개됩니다. 생물학과 영문학을 전공하고 지금은 현역에서 은퇴한 유명 노교수 부부 에밀리와 로드니 해리스가 그들입니다. 그들은 9년 전부터 휠체어가 실린 밴을 이용하여 사전에 점찍어둔 인물들을 납치한 뒤 방음시설과 온갖 도구들을 갖춘 지하실에 감금합니다. 출판사 소개글을 인용하자면 해리스 부부는 자신들의 신체 수명을 늘리기 위해 젊은이들을 납치해 살해하는 살인마입니다. 스포일러가 될 수 있어 더 자세한 설명은 할 수 없지만, 소개글만 봐도 어떤 종류의 엽기적인 범행이 벌어지는지 대략 짐작할 수 있을 것입니다. , 스티븐 킹이 그려낸 80대 부부 살인마의 소행은 그 어떤 짐작도 무색하게 만들 게 확실하며, 독자에 따라 지독한 거부감을 느낄 수도 있다는 점을 미리 알려드립니다.

 

600페이지에 육박하는 분량이지만, 사건과 미스터리의 사이즈는 평범합니다. 한 젊은 여성의 실종사건을 조사하던 홀리가 오래 전부터 비슷한 정황에서 실종된 사람들이 있음을 파악한 뒤 지독하고 집요한 탐문을 벌이기 시작하고, 우연과 행운이 전해준 정보들까지 조합하여 유력한 용의자를 특정하는 것이 큰 얼개입니다. 하지만 스티븐 킹 특유의 구수하면서도 냉소적이고 흥겨우면서도 정곡을 찌르는 문장들 덕분에 이 심플한 얼개는 풍성한 볼륨감을 얻게 됩니다. 거기에다 홀리의 안쓰럽고 처연한 개인사(주로 어머니와 관련된)가 병행되어 이전부터 홀리의 산전수전을 읽어온 독자들에겐 미스터리와는 별개의 애틋한 감흥을 선사합니다. 더불어 그동안 홀리와 함께 괴물들과 맞서 싸워온 제롬-바버라 남매가 자신들의 꿈을 이루기 위해 분투하는 이야기도 부록처럼 전개돼서 엽기적인 미스터리의 중화제 역할을 하기도 합니다.

 

홀리 기브니의 이야기 가운데 아웃사이더만 유일하게 못 읽었는데, 1~2권 합쳐 800페이지에 이르는 막대한 분량이 가장 큰 이유였습니다. ‘홀리를 읽고 나니 왠지 아웃사이더를 읽어야만 된다는 의무감에 사로잡히게 됐는데, 언젠가 기회가 되면 홀리 기브니가 맞닥뜨린 또 다른 엄청난 괴물 이야기(한 사람이 동시에 각기 다른 장소에 존재하는 이야기)를 꼭 읽어보려고 합니다. 물론 괴물 자체보다 홀리 기브니가 어떤 시련을 통해 얼마만큼 성장했는지가 더 궁금하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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