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한 살인 계획
김서진 지음 / 나무옆의자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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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서평을 쓸 때 7~8줄 정도의 줄거리를 먼저 소개한 뒤 소감이나 감상을 쓰곤 하는데, ‘달콤한 살인 계획은 아무리 고민을 해도 제대로 된 줄거리 정리가 불가능해서 결국 포기하고 말았습니다. 캐릭터와 사건 모두 한두 줄로 요약할 수 없을 정도로 깊이와 두께가 상당하고, ‘악몽환시를 겪는 두 주인공의 복잡다단한 심리 역시 표피적인 설명만으로는 제대로 전달하기가 어렵기 때문입니다. “이 소설을 설명하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로 시작되는 김호연의 추천글 역시 이런 맥락에서 나온 거라고 생각합니다.

 

주인공 남홍진은 (거칠게 요약하면) ‘세상 물정에 어둡고 귀신과 대화를 나누며 정신병을 앓고 있는 중년 여자입니다. 20년 전, 남편이 휘두른 칼에 어린 아들은 목숨을 잃었고 자신은 중상을 입은 뒤 정신병원에 수용됐는데, 이후 절에서 허드렛일을 하며 세상과 단절된 채 살아오던 남홍진은 우연한 계기로 15살 가출소녀 강소명과 잠시 함께 지내게 됩니다. 조금도 곁을 내주지 않을 정도로 냉랭하게 대했지만 정작 강소명이 산속 저수지에서 자살한 사체로 발견되자 남홍진은 타살이라는 확신을 갖고 직접 범인을 응징하기로 결심합니다. 그리고 그때부터 죽은 강소명의 귀신을 볼 수 있게 됩니다. 사소한 단서를 통해 이지하라는 남자가 범인이라고 믿게 된 남홍진은 절을 떠나 허름한 상가에 정육점을 차리고 살인을 준비하기 시작합니다.

 

서화인은 50대를 바라보는 중년 경찰로 과학수사계 계장입니다. 가출소녀 강소명의 죽음이 자살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의심을 품게 된 서화인은 18년 전 여중생을 살해한 혐의로 체포된 뒤 교도소에서 자살한 윤장호를 떠올리며 그가 무죄였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사로잡힙니다. 감식반 첫 출동이었던 그 사건에서 증거가 조작된 걸 인지했지만 서화인은 재판이 끝날 때까지 입을 다물었기 때문입니다. 지금도 그 사건에 관한 악몽을 꾸는 서화인은 그때 잡히지 않은 진범이 강소명을 죽였을지도 모른다는 추정에 사로잡혀 상부 몰래 단독 조사하기로 합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딴 세상에서 온 것 같은 이상한 여자남홍진을 만나게 됩니다.

 

살인범이라고 확신하는 남자를 죽이기 위해 갖은 방법을 동원하는 이상한 여자남홍진과 오래 전 원죄(冤罪) 사건에 대한 죄책감에 시달리다가 진범을 잡을 기회를 포착한 악몽을 꾸는 형사서화인의 이야기는 평범한 진범 찾기 미스터리와는 거리가 먼 형태로 전개됩니다. 심리 서스펜스로 분류해도 될 만큼 두 사람의 들끓는 내면이 디테일하게 묘사되는가 하면, 어느 지점인가부터는 진범이 누구인지보다 두 사람 사이의 기이한 관계가 더 부각되기 때문입니다. 또한 살인범이라고 확신한 남자를 납치한 남홍진이 벌이는 잔혹하면서도 기괴한 고문극은 마치 한 편의 사이코 연극 같은 인상을 던져줘서 달콤한 살인 계획이라는 역설적인 제목의 섬뜩함을 더욱 강렬하게 만듭니다. 남홍진과 서화인의 행각을 저마다의 방법으로 인생을 망친 자들의 발광이 행간을 뒤흔든다.”라고 표현한 김호연의 추천글에 100% 공감하게 되는 건 당연한 일일 수밖에 없습니다.

 

각기 다른 사정과 출발점을 지닌 두 사람이 같은 범인을 쫓는다는 공식은 전혀 낯설지 않지만, 남홍진과 서화인의 캐릭터는 이 익숙한 공식을 있는 힘껏 비틀어 지금껏 만나보지 못한 생소한 이야기로 독자들을 끌고 갑니다. 스티븐 킹의 호러 판타지 캐릭터를 연상시키는 남홍진과 정통 미스터리 캐릭터인 서화인의 조합은 묘한 긴장감과 함께 이들이 어떤 엔딩을 맞이하게 될지 사뭇 궁금하게 만들어서 가장 눈길을 끌었는데, 재미있는 건 바로 이 대목에서 독자들의 호불호가 극적으로 갈릴 수도 있다는 점입니다. 특히 남홍진의 캐릭터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독자라면 340페이지라는 평범한 분량조차 버겁게 느껴질 텐데, 그래선지 이 작품이 독자들에게 어떤 반응을 얻었을지 무척 궁금해졌습니다.

 

2014년에 출간된 ‘230일생을 읽고 김서진의 팬이 됐는데, 고백하자면 이번 신작 소식을 듣자마자 ‘230일생에서 맛봤던 묵직하고 거대한 서사가 기대돼서 한껏 들떴던 게 사실입니다. ‘달콤한 살인 계획은 뜻밖의 장르에 그보다 더 뜻밖인 이야기를 담고 있어서 다소 당황했지만, 김서진의 탄탄한 필력을 재확인한 건 역시 반가운 일이었습니다. 다만 작가의 말을 읽어보니 김서진 스스로 많은 미련이 남은 작품 같아서 살짝 안타까운 마음이 들기도 했습니다. 마지막 장을 덮었을 때 김서진에게 남은 미련이 어떤 건지 아주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달콤한 살인 계획이 나오기까지 너무 오랜 공백이 있었는데, 다음 작품은 그리 머지않은 미래에 만날 수 있기를 바라봅니다. 이왕이면 ‘230일생같은 굵직한 서사의 작품이라면 더욱 바랄 나위가 없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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