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의 끈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김난주 옮김 / 재인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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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대의 카페 여주인 하나즈카 야요이가 피살체로 발견된다. 경찰은 면식범의 소행으로 보고 탐문수사에 들어가지만, 주변 사람들은 하나같이 야요이가 원한을 살 사람이 아니라고 증언한다. 그런 가운데 전 남편 와타누키와 카페 단골손님인 시오미가 용의선상에 떠오른다. 하지만 두 사람 모두 알리바이가 확실한 데다 뚜렷한 살해 동기도 없어 보인다. 그러나 경시청 수사1과 형사 마쓰미야는 두 사람 다 야요이와 관련해 뭔가를 숨기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수사가 교착 상태에 빠진 가운데 마쓰미야는 곤혹스러워 하지만 그가 소속된 팀의 리더인 가가 교이치로는 마쓰미야의 을 믿으라며 격려해준다. 그러던 중 뜻밖의 인물이 자수하면서 경찰은 사건을 종결지으려 하지만, 마쓰미야는 범인이 뭔가 숨기고 있다는 느낌을 지우지 못한다. (출판사 소개글을 일부 수정 후 인용했습니다.)

 

가가 형사 시리즈10편이자 마지막 편인 기도의 막이 내릴 때가 출간된 건 2013(일본 출간)입니다. 그로부터 6년이 지난 2019년에 가가 형사가 등장하는 희망의 끈이 출간됐는데, 이 작품의 주인공은 가가 형사가 아니라 그의 사촌동생이자 경시청 수사1과 형사인 마쓰미야 슈헤이입니다. 그래선지 이 작품을 가가 형사 시리즈11번째 작품으로 볼 것인지 스핀오프로 볼 것인지, 아니면 마쓰미야 슈헤이 시리즈의 첫 편으로 볼 것인지 의견이 분분했다고 합니다. 최근 한국에 출간된 당신이 누군가를 죽였다’(일본 출간 2023)의 출판사 소개글에는 “‘가가 형사 시리즈12번째 작품이라는 카피가 들어있는데, 그건 희망의 끈11번째 작품으로 봤다는 뜻입니다. 독자마다 느낌이 다르긴 하겠지만 개인적으론 가가 형사 시리즈의 스핀오프로 보는 게 타당하다는 생각입니다.

 

희망의 끈가가 형사 시리즈에서 자주 다뤘던 비극적인 가족사를 소재로 삼은 휴먼 미스터리입니다. 카페 여주인이 살해당한 사건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두 가족 간에 얽히고설킨 불행한 과거사, 상상을 초월하는 악연, 돌이킬 수 없는 복잡한 운명이 드러나는 구조입니다. 거기에다 수사를 담당한 마쓰미야 본인의 기가 막힌 가족사와 비밀 이야기까지 병행되면서 단순히 범인 찾기미스터리 이상의 묵직한 감동과 연민을 자아내는 작품입니다.

 

기도의 막이 내릴 때마지막 장면에서 가가는 경시청 수사1과로 복귀했습니다. ‘희망의 끈은 그 이후 3년이 지난 시점이 배경인데, 가가는 주임이란 직책의 관리자가 됐지만 여전히 마쓰미야와 함께 현장을 누비기도 합니다. 또한 이제는 형사로서 제법 관록이 붙은 마쓰미야에게 여전히 피가 되고 살이 되는 충고를 해주는 멘토로서의 역할도 성실히 수행합니다. 마쓰미야는 그런 충고에 툴툴거리면서도 이따금 자신의 성장을 확인할 때마다 가가에게 고마움을 느끼곤 합니다. 또한 결정적인 순간마다 수사에 큰 변곡점을 이끌어내는 가가를 보면서 자신의 부족한 부분을 절감하기도 합니다.

무엇보다 흥미로운 건 마쓰미야가 비극적인 가족사를 수사하는 입장이자 동시에 뒤늦게 자신의 가족사의 비밀을 알게 되는 당사자라는 점입니다. ‘가가 형사 시리즈의 팬이라면 가가 역시 비슷한 경험을 겪었다는 걸 알고 있을 텐데, 그래선지 마치 기시감 같은 것마저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런 이유들 때문에 이 작품을 마쓰미야 슈헤이 시리즈의 첫 편으로 여기는 독자도 꽤 많을 것 같다는 생각입니다.

 

등장인물도 꽤 많고 사소한 설명만으로도 스포일러가 될 여지가 많은 작품이라 내용에 대해선 별로 언급하지 못했는데, 그만큼 허투루 읽어 넘길 페이지가 없을 정도로 재미있다는 반증이기도 합니다. 설정만 보면 막장 가족극으로 폄하하는 독자도 있을 수 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히가시노 게이고 특유의 정교한 미스터리가 탄탄하게 뒷받침하고 있어서 별 거부감 없이 읽어나갈 수 있는 작품입니다.

 

원래 이렇게 급하게 읽을 생각이 없었는데, 가가 형사가 주인공을 맡은 당신이 누군가를 죽였다가 출간되는 바람에, 그 직전 작품인 희망의 끈을 부랴부랴 읽게 됐습니다. 가가 형사와 다시 만난 것도 반가웠고, 마쓰미야의 성장을 지켜보는 것도 흐뭇했습니다. 물론 수시로 눈가를 뜨끈하게 만드는 히가시노 게이고의 휴먼 미스터리는 정말 매력적이었습니다.

요즘 들어 히가시노 게이고의 작품을 여러 편 읽게 됐는데, 새삼 그의 천재적인 이야기꾼 재능에 매번 탄복하곤 했습니다. 아직 못 읽은 그의 작품들이 수두룩하지만 그래서 오히려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물론 그마저도 다 읽고 나면 오래 전에 읽은 명품들을 다시 한 번 찾아 읽어볼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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